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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감각의 박물학>에는 그야말로 감각에 관한 모든 지식이 집대성되어 있다. 삶에 필요한 잡다한 지식을 얻는 재미가 있는데 문장 또한 원문을 찾아 읽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아예 필사를 하기 위해 따로 테이프를 붙여둔 페이지도 여럿이다.
나는 노안이 오기 전까지 굉장히 좋은 시력을 가지고 40여 년을 살았지만 반면 왼쪽 청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그보다 긴 세월을 살아야 했다. 감각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나빠질 때야 비로소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청력은 너무 오래라 그만 익숙해져 버렸지만 눈이 불편해지자 세상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이 없는 존재는 귀신이나 천사뿐’이라고 말하면서 ‘감각으로부터의 자유’는 긍정적인 어떤 것, 초월적 평정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좋은 감각이 늘 우리를 행복하게만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인공 이소골 수술을 하고 나서 처음엔 잡음과 소음이 너무 선명하게 들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적응을 하고 난 후엔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음악을 입체적으로 듣게 된 기쁨을 맛본다. ‘죽음과 강렬한 감각은 공포인 동시에 특권’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감각은 그로 인해 행복하든 불편하든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준다. 하긴, 살아있다는 것 역시 공포이자 특권 아닌가.
책은 맨 처음 후각을 다룬다. 다른 감각과 달리 후각과 미각은 공통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너무나 궁금하다. 아무리 멋지게 묘사를 한들 알 수가 있나. 가령 제비꽃 향기 같은 것.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그건지 몰랐을 것이다. 무슨 향수를 사야 할지 몰라서 제비꽃 향의 바디 워시를 샀지만 분명 나폴레옹을 행복하게 했다던 조세핀의 향이 이런 냄새는 아닐 것 같더라.
혁명의 열정을 담은 신경림 절창 <돌아가리라>에는 ‘그이의 몸에서는 신살구 내음/취할 듯 진한 살구꽃 내음’이란 구절이 나온다. 시적 화자는 땅을 잃어버려 반역과 혁명의 열기에 젊은 혈기를 싣는 젊은 농노인 듯 하며 그의 연인 ‘연이’의 몸에서 살구향을 맡았다는 것이다. 젊은 날, 좋아하는 여자에게서 살구향이 나더라는 이야기는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보았다. 나 역시 스무 살 시절, 남자친구 몸에서 항상 똑같은 비누냄새가 난다고 느꼈더랬다(결혼하고 그 향기가 사라졌다.) 가장 아름답고 열정적인 시절에만 만x을 수 있는 페로몬의 향기일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레 미제라블>의 마리우스가 그랬듯, 80년대 거리의 우리들이 그랬듯, 혁명의 열정은 늘 사랑의 열정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다.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만이 누군가를 미칠 듯이 사랑하여 없는 향기도 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또 그런 이들만이 혁명을 꿈꿀 수 있는 것이리라.
향기는, 냄새는 그 실체는 묘사하기도 어렵고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는 면에서 허망하고, 아름답다. 저자 역시 ‘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냄새는 수수께끼이고 이름 없는 권력이며 성스러움이다.’라고 표현했듯이. 학생들과 문학적 글쓰기 공부할 때 ‘익숙한 냄새 설명(묘사)하는 글 써보기’로 시작해 볼까 한다. 누구나 냄새에 대한 경험은 있으니까.
향수 이름에는 그 편안한 향과 반대로 강렬한 이름이 많단다. 데카당스(타락, 쇠퇴, 퇴폐), 포이즌, My sin, 오퓸Opium(아편) Indiscretion(무분별, 경솔) 옵세션(집착), 터부....
그걸 저자는 ‘향수는 충격을 주는 동시에 우릴 사로잡고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면서 ‘기쁨을 주는 불안’이라고 표현했다. 그래, 그런 걸 ‘매혹’이라고 하겠지. 비 오기 전, 혹은 비 온 후의 바람 냄새를 좋아하는 데 그게 습기가 후각 능력을 높여주고 저기압이 휘발성을 만들어서 그렇단다. 예민한 감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문학을 하게 만들거나 과학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전자에 해당하고 내 동생은 후자에 해당한다. 다른 요소와 결합하면 달리 발현이 되겠지만 나의 예민한 후각은 나를 더 감성적으로 만드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였나 보다. 인간의 후각은 점점 약화되며 중년일 때 가장 그러하단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비의 냄새, 숲의 냄새, 내 아이들의 냄새에 둔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마를 받은 아기들은 그렇지 않은 아기들에 비해 체중 증가 속도가 50% 빠르단다. 사랑의 손길이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실험으로도 입증되었지만 과학이 아니어도 그냥 이해가 되는 대목 아닌가?
나의 자녀들은 지금도 부모나 조부모에게 스킨십을 아끼지 않는다. 그애들이 어렸을 때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느낌이다. 그게 아이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그리고 만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자주 만지고 안아주고 주물러주며 키웠지만 그렇게 키운 것이 늙어가는 우리에게 돌아온다. 참 감사한 일이다.
작년에 학부모 상담연수 대신 전교생 가정에 보낸 ‘내 자녀 이해하기’ 편지 시리즈에 ‘당신은 오늘 당신의 자녀를 안아주었습니까?’ 질문을 던지며 하루 한 번 이상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 주거나 악수를 하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행동을 하시라고, 체크리스트를 보내 보았다. 답신은 의무가 아니었는데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1/5이 넘는 학부모님이 한달 간 열심히 쓰다듬어주고 다정한 말을 건넸던 체크리스트를 빼곡하게 작성해 보내왔다. 아이들이 가정통신문이나 학교에서 보내는 발신물들을 거의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고 한 달 내내 그리 하는 ‘부모님의 과제’를 만나본 일 많지 않으실 학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놀라운 분량이었다. 늙어서 다 돌려받으실 거다.
책 속에서 본 내용 중 ‘촉각은 시각과 더불어 우리가 삼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부분, 그리고 ‘실험에 따르면 손이나 팔을 잡아주기만 해도 혈압이 떨어진다’, ‘염주 돌리기 같은 것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뇌파의 패턴을 바꿔놓는다.’, ‘기혼이냐 독신이냐의 차이 없이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생존’한다는 내용이 참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경계가 애매해진 가치관들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다정하게 다가가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며 학교에 다니고 싶다. 옷깃을 살짝 잡으면 ‘선생님?’ 하고 다가오는 아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책 이야기, 공부 아이기 친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