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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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이것은 청소년 소설이 아니었던가?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표지와 제목에 끌려 학생들에게 읽힐 요량으로 책을 사서 휘리릭 읽으려고 외출할 때 챙겨갔다. 첫 번째 장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잃어버린 파우치로 만나는 것을 보고, 어머, 이거 우리 남중딩들도 재미있게 읽겠네, 게다가 훈훈한 내용이기까지... 라 생각하고 올해 처음 중1 한학기 한 권 읽기 책바구니 중 따뜻한 책상자목록에 이 책을 넣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웬걸? 읽다 보니 청소년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공시생, 자식 때문에 고민하는 중년 아줌마 혹은 할머니, 노숙자 등등 청소년의 삶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들만 등장한다. ‘사람 좋아 보이는할머니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또 하나의 주인공인 독고 씨를 발탁한 염할머니는 퇴임한 역사 교사다. 교사에게 악역을 부여하면 청소년 소설은 재미있어진다는 규칙을 깨고 사람이 좋다네. 그러면 뭐하나, 현직일 때 일탈학생깨나 바로잡았을 뿐 아니라 알콜성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독고 씨를 갱생의 길로 이끈 이 멋진 할머니는 정작 자기 자식 교육에 실패했는걸. 천하에 나쁜 이 아들은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편의점마저 빼앗으려 했으니, 염할머니의 선행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여간 결론은 이 책이 청소년 소설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청소년들이라도 다 청소년 소설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에 초등 중저학년 여학생들은 분홍색과 인형 캐릭터를 좋아할 거라는 게 있다. 많은 여자 어린이들이 이미 분홍색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어른들은 모른다. 그처럼 청소년 소설, 억지로 읽으라니까 읽을 뿐일 수도 있다. <나미야 잡화점>이 인기가 있는 게 거기 자기들 닮은 불량한 젊은 남자들이 등장해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책 상자에 담아 가 열심히 책소개를 해 볼 요량이다.

 

현실은 냉혹하지만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을 사랑한다. 이렇게 현실감각이 없어서야, 싶으면서도 덜 까칠하고 덜 냉소적이고 덜 위악적인 소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이 소설도 그런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해시태그를 달아보자면 #역설의 미학 #맥주의 미학 #익숙한 것과 낯섦 #있을 법하고 있기 힘든 #예측가능한 인기 대 실패의 기시감 정도 되겠다.

 

책 속에는 꼭 저자의 아이콘일 듯한 인물이 하나 등장한다. 책 속에서 자기 책 이야기를 한다. 쓰면서 성공을 예감했나 보다. 요즘 많이 팔리는 소설의 공통점들을 생각해 본다. 청소년 소설만도 아니지만 청소년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 <아몬드>가 그랬고 <구미호 식당>이 그랬으며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그랬다.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을 반영하지만 훈훈해야 한다. 미래는 절망적일 거야...는 현실이 충분히 이야기해주니까 소설만은 다른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들인데 낯섦과의 배율을 잘 맞춰줘야 한다. 개과천선하는 착한 노숙자는 있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서 흐믓하다.

 

사실 이 소설은 맥주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썼나 싶다. 맥주 맛 좀 아는 사람이 쓴 게 분명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소백산 맥주(사 먹어 볼까 하고 검색해 봤는데 그런 맥주는 없었다) 이야기며 수제 맥주 이야기 따위가 알알이 박혀 있다. 인류에게 술이 없었다면 싸움도 자살도 연애도 헤어짐도 실수도 예술도 없었을 것이다. 맛있는 맥주는 인류의 동반자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주나 와인이 그 역할을 하겠지. 아니면 옥수수 수염차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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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오디세이 - 클래식 음악과 함께하는 문화 여행
진회숙 지음 / 청아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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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부중이라 이런저런 에세이를 뒤적이고 있다. 이 책도 입체적인 공부를 위해 집어들었을 뿐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고 읽었다. 그런데 재미있다!. 저자의 경험담과 음악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더 재미있다. 물론, 저자가 나보다 열 살쯤 위로 어린 시절 이야기나 대학 시절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긴 할 거다. 젊은 세대가 본다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독특하게도 그 엄혹한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에 대학을 다니며 운동권의 사고방식을, 그것도 음악을 공부한 학생이 경험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독특한 경험이 더 독특한 에세이를 낳았다고 본다.

 

아마도 저자는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공부한 서양 음악은 뿌리가 귀족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약자와 함께 하는 것일 터. 이 간극을 어찌할까. 삶 곳곳에 그 가치관은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도 그런 갈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클래식을 듣는 데 마음의 빗장을 풀 수 있었던 것은 국악은 촌스럽고 서양 고전음악은 고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음악의 영역에 상관없이 감성에 닿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나이가 들면서 클래식을 만나고 싶되 어떻게 접근할지 몰라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삶의 이력이 결코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은 아닌데도 겸허하고 따뜻하고 소박한 품성이 글에 깃들어 읽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는 클래식이라고 해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고 음악에 대한 해박함을 풀어놓아 독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언니, 나 클래식 좀 들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해?”라고 잘 아는 이에게 묻듯이 이 책에 접근하면 그는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하루에 한 곡 정도씩, 책에 언급된 곡들을 들으며 이 책을 읽어 보자. 나는 구판으로 읽어서 하나씩 유튜브에 검색에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지만 개정판에는 큐알코드가 있다 하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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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모든 언어가 멈췄을 때- 음악 한 줄기가 남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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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분에 40년 만에 클래식의 세계에 들어갔다. 너무 재미있고 다정해서 아껴 읽었다. 중간에 친절하게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코드를 넣어두었기에 글 조금 읽고 음악 듣고, 이렇게 책을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에 베토벤 전기를 읽기도 했고. 방학을 틈타 2, 3분짜리 주요 부분만 듣는 방식이 아닌 전곡 감상을 도전해 본다. 팟캐스트 <월말 김어준>에도 마침 클래식 코너가 있어 그와 더불어 입체적으로. 방학마다 주제를 정해놓고 자가 연찬을 하는데 이번에는 클래식과 팟캐스트를 들으며 책을 읽거나 그림 연습을 하면서 보낸다.

 

베토벤은 내게 신세계였는데 발랄함보다 묵직함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 때문에 모차르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야말로 편견이었음을 이번에 발견한다. 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에 폭 빠졌다. 쇼팽이 자신의 장례 때 써달라고 했던, 나의 사랑하던 친구이자 강원도 선배가 젊은 날 하염없이 듣던 그의 <레퀴엠>만은 뒤로 미룬다. 브람스와 드보르작이 좋았고 호불호가 갈린다 하는 말러의 교향곡들 또한 내게는 참으로 좋았다. 책은 순서 없이 읽었는데 어쩌다 보니 쇼팽을 맨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쇼팽을 듣고 있다. 2월에는 그리그와 드보르작을 연주한다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공연에 혼자 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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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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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학생용으로 주문했는데, 어머, 이렇게 두꺼울 줄이야. 두꺼운 책은 일단 학생들이 집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안에 졸라맨 그림이 풍성하다. 남학생들은 수학을 엄청 싫어하면서도 엄청 좋아한다. 국어나 영어나 수학이나 다 염증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학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남성성이 강한 교과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은 수학에 관심은 있지만 높은 경지에 나아가는 게 힘든 학생들에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 수준을 생각하면 이과적 성향이 뚜렷하고 수학을 좀 잘하면서 인문 과목도 싫어하지 않는 학생들이어야 권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남중생들은 전반적으로 학업성취가 떨어지다가 뒤늦게 고양되는 편이다). 게다가 미국문화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지만 수학과 과학을 문학적으로 기술해 놓은 책들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독서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 내 책장에는 가벼운 물리학, 천문학, 수학, 과학 일반 에세이들도 있다. 그리고 뭐, 그 책들 전부를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재미있는 부분을 재미있게 읽고 관심 없는 분야는 적당이 후루룩 읽어줄 수도 있다. 이 책은 어떤 학생에게 어떻게 권할까. 독서 시간에 어떻게 책소개를 할까에 초점을 두고 읽긴 했지만 복권의 통계학이나 세금 부분은 꽤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지난 겨울 기말고사 수학 시험 감독에 들어갔을 때, 평소에도 질문이 많던 한 학생이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에서 삼각형 빗변의 길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가 이상하다며 인쇄 오류가 아니냐고 내게 질문을 했다. 교과목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감독 교사가 답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보통은 질문이나 이상이 없는지 출제교사가 교실 순회를 하기 때문에 그때 질문을 하도록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궁금해졌다. 그 학생이 문제를 풀어보니 도저히 그런 빗변의 길이로는 문제를 풀 수 없었기에 이상하다고 느꼈던 거 아닐까? 내가 한 번 풀어볼까? 내가 대답을 해줄 수는 없어도 오류인지 아닌지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피타고라스 정리 수주의 중2 수학 문제가 왜 이리 어려운 건지... 루트 계산법도 생각나지 않고... 겨우 그 문제를 풀었는가 싶어 다음 문제에 도전해 봤지만 역시 허걱, 이었다. 그러다가 종이 쳤다. 감독교사는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걷고, 감독 날인하는 시간 외에는 내내 학생들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해보련다. 그래도 두 문제라니!! 아무리 대학 입학 이후 수학문제 풀 일이 거의 없었다지만 말이다.

자리에 돌아와 이 책 앞 부분의 실수, 허수, 무리수, 유리수 부분을 다시 읽어 보고 루트 부분도 보았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수학의 정석스러운 유형의 수학책이 아니다. 공식이 많고 수학 풀이에 도움이 되는 수학책을 보고 싶은 학생이나 학부모라면 이 책의 수다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난 문과인개벼, 한국에서 문과는 죄송한 일이라는데, 어쩌지? 이런 학생들에게 숨어있는 수학 1센티미터를 찾아주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수학이란 수학은 다 너무 좋아. 이런 학생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을 터이고. 나에게는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남성성을 통계로 정리한 부분과 린데그린의 세금 이야기가 신기했다. 이 사람, 수학교사라면서 도대체 정치 문화 경제 모르는 게 뭐야? 그걸 다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게 더 신기했고.

 

그리고 사족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도 요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중학생들이 국어를 재미있게 생각할 수 있게 책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쓰지는 않을 거다. 그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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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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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에는 그야말로 감각에 관한 모든 지식이 집대성되어 있다. 삶에 필요한 잡다한 지식을 얻는 재미가 있는데 문장 또한 원문을 찾아 읽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아예 필사를 하기 위해 따로 테이프를 붙여둔 페이지도 여럿이다.

 

나는 노안이 오기 전까지 굉장히 좋은 시력을 가지고 40여 년을 살았지만 반면 왼쪽 청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그보다 긴 세월을 살아야 했다. 감각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나빠질 때야 비로소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청력은 너무 오래라 그만 익숙해져 버렸지만 눈이 불편해지자 세상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이 없는 존재는 귀신이나 천사뿐이라고 말하면서 감각으로부터의 자유는 긍정적인 어떤 것, 초월적 평정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좋은 감각이 늘 우리를 행복하게만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인공 이소골 수술을 하고 나서 처음엔 잡음과 소음이 너무 선명하게 들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적응을 하고 난 후엔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음악을 입체적으로 듣게 된 기쁨을 맛본다. ‘죽음과 강렬한 감각은 공포인 동시에 특권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감각은 그로 인해 행복하든 불편하든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준다. 하긴, 살아있다는 것 역시 공포이자 특권 아닌가.

 

책은 맨 처음 후각을 다룬다. 다른 감각과 달리 후각과 미각은 공통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너무나 궁금하다. 아무리 멋지게 묘사를 한들 알 수가 있나. 가령 제비꽃 향기 같은 것.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그건지 몰랐을 것이다. 무슨 향수를 사야 할지 몰라서 제비꽃 향의 바디 워시를 샀지만 분명 나폴레옹을 행복하게 했다던 조세핀의 향이 이런 냄새는 아닐 것 같더라.

 

혁명의 열정을 담은 신경림 절창 <돌아가리라>에는 그이의 몸에서는 신살구 내음/취할 듯 진한 살구꽃 내음이란 구절이 나온다. 시적 화자는 땅을 잃어버려 반역과 혁명의 열기에 젊은 혈기를 싣는 젊은 농노인 듯 하며 그의 연인 연이의 몸에서 살구향을 맡았다는 것이다. 젊은 날, 좋아하는 여자에게서 살구향이 나더라는 이야기는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보았다. 나 역시 스무 살 시절, 남자친구 몸에서 항상 똑같은 비누냄새가 난다고 느꼈더랬다(결혼하고 그 향기가 사라졌다.) 가장 아름답고 열정적인 시절에만 만x을 수 있는 페로몬의 향기일 것이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레 미제라블>의 마리우스가 그랬듯, 80년대 거리의 우리들이 그랬듯, 혁명의 열정은 늘 사랑의 열정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다.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만이 누군가를 미칠 듯이 사랑하여 없는 향기도 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또 그런 이들만이 혁명을 꿈꿀 수 있는 것이리라.

향기는, 냄새는 그 실체는 묘사하기도 어렵고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는 면에서 허망하고, 아름답다. 저자 역시 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냄새는 수수께끼이고 이름 없는 권력이며 성스러움이다.’라고 표현했듯이. 학생들과 문학적 글쓰기 공부할 때 익숙한 냄새 설명(묘사)하는 글 써보기로 시작해 볼까 한다. 누구나 냄새에 대한 경험은 있으니까.

 

향수 이름에는 그 편안한 향과 반대로 강렬한 이름이 많단다. 데카당스(타락, 쇠퇴, 퇴폐), 포이즌, My sin, 오퓸Opium(아편) Indiscretion(무분별, 경솔) 옵세션(집착), 터부....

그걸 저자는 향수는 충격을 주는 동시에 우릴 사로잡고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면서 기쁨을 주는 불안이라고 표현했다. 그래, 그런 걸 매혹이라고 하겠지. 비 오기 전, 혹은 비 온 후의 바람 냄새를 좋아하는 데 그게 습기가 후각 능력을 높여주고 저기압이 휘발성을 만들어서 그렇단다. 예민한 감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문학을 하게 만들거나 과학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전자에 해당하고 내 동생은 후자에 해당한다. 다른 요소와 결합하면 달리 발현이 되겠지만 나의 예민한 후각은 나를 더 감성적으로 만드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였나 보다. 인간의 후각은 점점 약화되며 중년일 때 가장 그러하단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비의 냄새, 숲의 냄새, 내 아이들의 냄새에 둔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마를 받은 아기들은 그렇지 않은 아기들에 비해 체중 증가 속도가 50% 빠르단다. 사랑의 손길이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실험으로도 입증되었지만 과학이 아니어도 그냥 이해가 되는 대목 아닌가?

나의 자녀들은 지금도 부모나 조부모에게 스킨십을 아끼지 않는다. 그애들이 어렸을 때 받은 것을 돌려준다는 느낌이다. 그게 아이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그리고 만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자주 만지고 안아주고 주물러주며 키웠지만 그렇게 키운 것이 늙어가는 우리에게 돌아온다. 참 감사한 일이다.

작년에 학부모 상담연수 대신 전교생 가정에 보낸 내 자녀 이해하기편지 시리즈에 당신은 오늘 당신의 자녀를 안아주었습니까?’ 질문을 던지며 하루 한 번 이상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 주거나 악수를 하거나 등을 토닥여주는 행동을 하시라고, 체크리스트를 보내 보았다. 답신은 의무가 아니었는데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1/5이 넘는 학부모님이 한달 간 열심히 쓰다듬어주고 다정한 말을 건넸던 체크리스트를 빼곡하게 작성해 보내왔다. 아이들이 가정통신문이나 학교에서 보내는 발신물들을 거의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고 한 달 내내 그리 하는 부모님의 과제를 만나본 일 많지 않으실 학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놀라운 분량이었다. 늙어서 다 돌려받으실 거다.

 

책 속에서 본 내용 중 촉각은 시각과 더불어 우리가 삼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부분, 그리고 실험에 따르면 손이나 팔을 잡아주기만 해도 혈압이 떨어진다’, ‘염주 돌리기 같은 것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뇌파의 패턴을 바꿔놓는다.’, ‘기혼이냐 독신이냐의 차이 없이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생존한다는 내용이 참 좋았다.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경계가 애매해진 가치관들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다정하게 다가가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며 학교에 다니고 싶다. 옷깃을 살짝 잡으면 선생님?’ 하고 다가오는 아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책 이야기, 공부 아이기 친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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