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담실에서 학생용으로 주문했는데, 어머, 이렇게 두꺼울 줄이야. 두꺼운 책은 일단 학생들이 집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안에 졸라맨 그림이 풍성하다. 남학생들은 수학을 엄청 싫어하면서도 엄청 좋아한다. 국어나 영어나 수학이나 다 염증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학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남성성이 강한 교과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책은 수학에 관심은 있지만 높은 경지에 나아가는 게 힘든 학생들에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 수준을 생각하면 이과적 성향이 뚜렷하고 수학을 좀 잘하면서 인문 과목도 싫어하지 않는 학생들이어야 권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남중생들은 전반적으로 학업성취가 떨어지다가 뒤늦게 고양되는 편이다). 게다가 미국문화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지만 수학과 과학을 문학적으로 기술해 놓은 책들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독서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나 자신도 그런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 내 책장에는 가벼운 물리학, 천문학, 수학, 과학 일반 에세이들도 있다. 그리고 뭐, 그 책들 전부를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재미있는 부분을 재미있게 읽고 관심 없는 분야는 적당이 후루룩 읽어줄 수도 있다. 이 책은 어떤 학생에게 어떻게 권할까. 독서 시간에 어떻게 책소개를 할까에 초점을 두고 읽긴 했지만 복권의 통계학이나 세금 부분은 꽤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지난 겨울 기말고사 수학 시험 감독에 들어갔을 때, 평소에도 질문이 많던 한 학생이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에서 삼각형 빗변의 길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가 이상하다며 인쇄 오류가 아니냐고 내게 질문을 했다. 교과목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감독 교사가 답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보통은 질문이나 이상이 없는지 출제교사가 교실 순회를 하기 때문에 그때 질문을 하도록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궁금해졌다. 그 학생이 문제를 풀어보니 도저히 그런 빗변의 길이로는 문제를 풀 수 없었기에 이상하다고 느꼈던 거 아닐까? 내가 한 번 풀어볼까? 내가 대답을 해줄 수는 없어도 오류인지 아닌지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피타고라스 정리 수주의 중2 수학 문제가 왜 이리 어려운 건지... 루트 계산법도 생각나지 않고... 겨우 그 문제를 풀었는가 싶어 다음 문제에 도전해 봤지만 역시 허걱, 이었다. 그러다가 종이 쳤다. 감독교사는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걷고, 감독 날인하는 시간 외에는 내내 학생들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해보련다. 그래도 두 문제라니!! 아무리 대학 입학 이후 수학문제 풀 일이 거의 없었다지만 말이다.

자리에 돌아와 이 책 앞 부분의 실수, 허수, 무리수, 유리수 부분을 다시 읽어 보고 루트 부분도 보았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수학의 정석스러운 유형의 수학책이 아니다. 공식이 많고 수학 풀이에 도움이 되는 수학책을 보고 싶은 학생이나 학부모라면 이 책의 수다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난 문과인개벼, 한국에서 문과는 죄송한 일이라는데, 어쩌지? 이런 학생들에게 숨어있는 수학 1센티미터를 찾아주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수학이란 수학은 다 너무 좋아. 이런 학생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을 터이고. 나에게는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남성성을 통계로 정리한 부분과 린데그린의 세금 이야기가 신기했다. 이 사람, 수학교사라면서 도대체 정치 문화 경제 모르는 게 뭐야? 그걸 다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게 더 신기했고.

 

그리고 사족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도 요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중학생들이 국어를 재미있게 생각할 수 있게 책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쓰지는 않을 거다. 그저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