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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와인과 삶에 자연을 담는 프랑스인 남편과 소설가 신이현의 장밋빛 인생, 그 유쾌한 이야기
신이현.레돔 씨 지음 / 더숲 / 2022년 5월
평점 :
일단 그림이 있는 책을 좋아한다. 물론 이 책 속 그림은 표지에서 나를 끌어당긴 만큼 많지도 않고 저자가 그린 그림도 아니긴 하다. 그래도 레돔과 신이현의 포도밭을 상상하게 도와주긴 했다. 프랑스 남자와 한국 여자의 조합이 왜 매력적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프랑스 남자와 살 만큼의 분방함을 지닌 한국 여자는 분명 멋질 것이다. 한국 여자와 결혼한 프랑스 남자는, 그녀만의 매력을 알아 볼 만큼 안목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라고 생각해 본다.
그림, 두 이국적인 만남이라는 매력 요소 말고도 농사를 준비하는 남편 때문에 나 역시 그쪽 분야에 관심도 있어 더더욱 이 책이 끌렸다. 그리고 과수원을 마련하고 포도 농사를 지어 가는 그 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소설가인 저자의 필력 덕에 소소한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게 읽혔다.
무엇보다 레돔 씨가 가지고 있는 농업과 자연에 대한 가치관이 배울 점이 참 많다. 나의 남편도 자연을 살리고 농약을 쓰지 않는 농업에 대해 동무들과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옆에서 귀동냥으로 듣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도 나온다. 땅을 트랙터로 깊이 갈지 말아야 하는 이유, 농약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 잡초를 무작정 뽑거나 제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모두 자연에 대한 존중에서 온다. 사람만이 좋은 것을 먹자고 농사를 짓는다면, 팔아서 이윤을 남길 목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면 위의 일들이 다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 말대로 꼭 이윤을 남기고 대박이 나야만 하느냐고, 그저 먹고 살 만큼만 농사를 짓고 싶을 뿐인데, 라는 생각을 한다면 와서 과일을 쪼아먹는 새도 두더지도 고라니도 그저 친구일 뿐이다.
물론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 퇴직을 하고 나면 남편 옆에서 그의 농사를 도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남편에게 평생 직장과 살림의 노동으로 지친 내게 농사는 가당치도 않다, 나는 마당에 꽃을 심고 텃밭 정도를 돌볼지언정 당신의 농사를 돕지는 않겠노라 선언을 해놓았다. 그러나 작가가 그 어려운 농사를 왜 짓느냐고 투덜거리면서도 결코 그 일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나 역시 만약 남편이 농사를 짓는다면 혼자만 손에 흙 안 묻히고 살 수는 없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남편이 정말 그가 원하는 대로 참외 농사를 짓고 하우스를 만들고 내다 팔 궁리를 한다면, 글쓴이가 말한 대로 사업자 등록이며 납품이며, 무엇보다도 넌덜머리 나는 세금 신고 등등을 어찌 감당하랴 싶다. 농담 삼아 아들에게, 나중에 아버지에게 와서 농사를 지으라 했다(나는 진심으로 농업이 좋은 직업이라 생각한다.). 땅을 얻고 조촐한 집을 짓고 아들네 딸네와 함께 농사를 짓고 골치 아픈 세간의 일은 젊은 애들에게 맡기고 남편은 알고 있는 농사 지식으로 이래라저래라 하고 나는 적당히 거드는 척 하면서 손주들이랑 개들이랑 저녁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상상을 해본다. 빚 걱정 돈 걱정 없이 적당한 노동을 감당할 건강을 가진 흙냄새 나는 노후는 한국 중장년들의 일반적인 로망일지도 모른다. 그런 거 아니면 나도 사양하겠다. 물론 상상과 달리 현실은 신이현 씨처럼 에고, 내가 왜 이 고생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새벽의 흙냄새는 너무 좋고나~! 이러면서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땅 살 돈은 언제 벌며 주변에 축사도 없고 교통도 적당하며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고 남편의 동무들과 농사동아리들도 활용할 수 있되 나의 사생활도 보장할 수 있는, 화려하지 않으나 불편하지도 않은 농가를 품고 있는 그런 땅은 또 언제 구할지, 퇴직은 멀지 않았고 남편은 땅을 갈망하는데 현실은 역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신이현이 전해준 말 중 기분 좋은 말이 있어 여기 옮긴다. 우리 학교 상담실에서도 가을에 ‘사과데이(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상담실에서 사과 한 알과 카드를 받아 편지와 함께 전하게 한 행사이다)’를 했는데 그때 사람들에게 이 문구를 전했다.
사과는 과일 중에 가장 오래 매달려 있는, 태양 에너지를 가장 많이 빨아들이는 과일이다. 그래서 사과는 명랑하게 반짝인다. 우울을 참지 못하는 과일이다. 올겨울이 슬프다면 우선 사과를 잔뜩 책상에 올려놓으시길. 당신이 잠든 사이 껍질에 살고 있는 명랑한 효모들이 날아가 온몸에 백 번 천 번 뽀뽀를 해줄 것이다. 다음날이면 ‘어, 오늘 기분이 괜찮네.’ 하고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 신이현<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