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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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

 

  

과학과 문학의 접점을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이 둘이 구분되지 않던 시대도 있었지 않았을까. 문학은 과학과 상상력을 공유하는 형제이다. 조리가 닿아야 세상을 납득하는 이과생과 감성이 없이 세상을 견뎌낼 수 없는 문과생은, 사실은 형제란 말이다. 나는 문학을 정신적, 육체적 양식으로 여기고 이를 통해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지만 과학을 좋아한다. 치밀한 이론을 이해하고 계산을 행하는 것은 제쳐놓고라도 과학이 세상에 미친 영향, 소통하는 방식, 과학자들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상상력에 경탄한다. 그중에서도 우주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학 이야기가 너무 좋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중 하나이다. 지금도 <코스모스>의 여운을 찾아 앤 드루얀이 쓴 같은 제목을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의 우주적 상상력을 좇아가고 싶어 그의 또다른 책 <창백한 푸른 점>을 영어책과 함께 읽고 있다. 그냥 읽는 순간 우주 어딘가로 함께 유영을 하는 것 같은 그 거대한 정신적 체험이 좋아서 읽는 것뿐이다. 정말 순수하게 독서 그 자체를 즐기며.

 

김초엽이 유명한 줄은 알고 있지만 한국의 90년대 이후 소설을 거의 읽지 않고 있어 그의 소설 역시 읽을 염을 내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중학생들에게 읽힐 만한 책일까 싶어 집어들었을 뿐이다. 결론은, ‘중학생에게도 당연히 읽히고 싶다’, 이다.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모호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러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마저도 이과생들은 비논리적이라고 싫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도 감성과 상상력마저도 거부하면서 과학을 공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과학 선생님은 이 소설의 과학적 오류 혹은 느슨함에 대해 조금은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다. 과학도의 눈으로 볼 때 이 책 속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기초적인 이론에 기대어 쓰였단다. 가끔 치밀한 과학 이론에 기반한 헐리우드 스페이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지적 희열에는 못 미치나 보다. 세상에는 (내가 읽어본 적은 없지만) 더 치밀한 SF 소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으니 김초엽의 소설을 그런 소설에 견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알못인 내가 봐도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싶은 장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령,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모래반짝임 현상을 찍는 우주 여행 이야기 같은 경우, 그런 반짝임이 공기 중에 포착이 된다면 인간들이 숨을 쉴 수 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설명하지 않으므로 생략된 무엇이 있다고 너그러이 넘어가면 그뿐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이들은 그게 아쉬웠으려나 싶지만.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얼마나 오래 후일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매우 가까운 미래가 될지도 모를 우주적 존재들과의 만남, 네트워크의 발달, 인간이 자연의 영물 혹은 유령과 같은 존재에게서 느꼈을 경이와 공포와 신비와 매혹을 대신할 발달된 AI 존재 등 이야기 속에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국민학교 때(한글 워드는 자꾸 오타라고 수정해주지만 나는 분명 초등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를 나왔다) 친구 집에 가서 시리즈로 읽은 미국 번역서가 생각난다. 그 역시 SF 소설이었다. 어떤 이야기는 무섭기 짝이 없었지만 상상의 세계가 주는 매혹을 헤어나올 수 없어서 하염없이 읽고 또 읽었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지금, 이미 실현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고작 40여 년 흘렀을 뿐인데 공중을 나는 작은 비행 물체(드론)며 자율주행 차, 작은 단말기로 온 세상과 소통하는 개개인들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상상 속 이야기보다 세상은 더 앞서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김초엽의 이야기들은 그리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이의 소설을 SF라는 장르에 묶어둘 수만은 없다. 그저 상상력을 과학적으로 풀어 쓴 이야기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번역기를 돌릴 수 있다 하더라도 소통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지구에서만 사는 지금의 삶이나 행성 간 만남이 가능해지는 소설 속 시대나 다를 바가 없다. AI는 우리가 스스로의 자아에 대해 궁금해하듯 자신에 대한 철학적 고뇌로 괴로워한다. 늪지대의 이상한 물질들은 소년의 안위를 걱정하며 잠식하듯 자신을 정당화하던 네트워킹 방식에 대해 반성한다. 서서히 생활에 침잠해 와 가스라이팅을 해버린 우주물질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인류발전사에 내내 있어왔던 문명적 발전 혹은 타 문화 침탈에 대한 고민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인간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중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그런 주제의식에 바로 접근한다는 보장은 없다. 문학은 꼭 그럴 필요도 없다. 이게 뭐야, 혹은 음, 쫌 재밌네, 이렇게 읽었다가도 먼 훗날 그들은 어린 날 읽었던 이 소설이 갑자기 떠오를 것이다. 그때 그 소설 속 이야기가 이제는 생활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 이 책을 찾아 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나처럼, 헌책방에 가서도, 아니 디지털라이징된 도서관에 가서도 이 책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이 책이 없어질 거라서가 아니라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아서. 원래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그렇게 모호한 법. 문학은 또 그런 데서 출발하기도 하니까. 그 책을 다시 찾고 싶어 안달이 난 늙어가는 소년은 어쩌면 자신만의 <행성어 서점>을 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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