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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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이 잘 어울렸다. 그러나 그것이 이 책을 산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동물들의 저 오묘한 표정이 말이 통하고도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나의 사랑하는 이, 나의 어린 아들, 나의 악동들, 밉고 싫은 동료나 상사... 들과 어찌나 닮았는지 싶어진다. 그래, 말을 나눌 수 있거나 없거나 영혼과 생명을 가진 것들은 '알 수 없는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말을 뛰어넘는 표정과 몸짓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작년 내 반에 한 아이가 전학 왔다. 곱상하게 생겼지만 길고 고운 손가락에서 담배냄새가 나던 아이. 나중에 안 것이지만 오토바이 절도와 사회봉사의 전과(?)가 있던 아이. 그 아이에게 전학 온 초기에 이 책을 주었다. 마음 속으로는 주문을 외웠다. 난 널 꼭 졸업시킨다. 꼭... 그 아이에게 이건, 비밀인데, 그 책으로 독후감 수행평가를 해도 좋아. 이렇게 말하자 여자아이처럼 예쁜 글씨로 독후감을 써왔다. 난 우울할 때 자주 이 책을 읽는다, 아니 본다, 라고..

우여곡절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그 아이는 통학 시간만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를 마다 않고 1년 잘 다니고 졸업을 하였다. 하필 그 아이가 전학 왔을 때 내 책꽂이에 꽂혀 있어 준 이 책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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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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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셀러를 무조건 미워하지는 말자고 애써 마음 잡은 후 이제는 좀 잘 팔리는 것들 중에서도 좋은 것을 가려낼 수 있게 되어 얻은 책 중에 <나무>도 들어간다.

일단 재미있다.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다. 기발한 상상력과 만만찮은 지적 토대 위에서 출발하는 재미이다. 게다가 메시지가 있다. 여기 실린 단편들은 한결같이 이 드넓은 우주 속에서, 지식과 진리의 광활함 속에서, 인간이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사회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한낱 인간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일깨운다.

가령,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온 우주생성 장난감이나 어린신들이 자기가 맡은 세상을 조작하는 이야기에서는 이 지구를 이 우주를 비웃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일필휘지, 종횡무진, 어찌 보면 참 잘난 척하는 듯이 보이는 작가 베르베르가 그 자신이 속한 인간이라는 종을 비웃는 것이 아이러니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읽는 발걸음마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

미약한 한 존재,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애완동물'이라는 시선을 받을지도 모르고 겨우 10을 알고 천하의 지식을 가진 듯 오만한 우스운 존재인지도 모를 우리 인간,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인간이란 존재라서 이 삶이 비천하고 허약하다고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비록 생성과정에서 실패해 버린 버려진 우주의 한 모퉁이에서 아름답지 않은 신의 지배하에 살지라도 아직도 무궁무진 생각하고 깨닫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즐거운 삶이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유쾌한 낙천주의자이다.

가벼운 재생지, 너무 예술적이지도 않은 삽화, 빨리 읽을 수 있는 속도감... 내 어린 친구들에게 권할 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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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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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나 <창가의 토토>처럼 교사들이 읽으면 좋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한 여교사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 땅의 많은 교사들도 <내 생애의 아이들>을 몇 개, 몇 수십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가브리엘 루아만큼의 고운 문장력을 지니지 못했을 뿐이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두 장 넘어가면서, 아마도 드미트리오프 가의 아이들 이야기를 읽을 때쯤이었나, 이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교사였거나 단지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니고 참 애들은 이뻐, 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동자를 넘어 그 아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깊이 바라보며 생각하는 연민으로 가득찬 시선. 아마도 다른 교사를 만났더라면 미처 발견되지 않았을 그 아이만의 능력,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던 혜안. 그것이 있었다.

모든 것에서 뒤처진 드미트리오프에게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맘껏 자기를 표현하게 하는 이야기나 종달새라 불리는 소년의 아름다운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행복을 전하는 장면은 자기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책 속의 한 장면 장면들이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 건, 그녀가 바로 갓 소녀를 벗어난 그 젊은 여선생일 때가 아닌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간 후 인생을 되돌이켜 생각하면서 쓴 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도 같다.

가브리엘 루아, 스키를 타고 눈 덮인 언덕을 넘어 머나먼 길을 찾아가는 젊은 여선생, 막 사춘기를 맞이하는 야생마 같은 메데릭과 함께 험산을 넘나들고 논보라를 헤치며 난 여기서 생을 마치지 않으면 아주 많은 여행을 다닐 거야, 라며 열망을 태우는 저 열정적인 젊은 여인...

처음엔 이렇게 놀라운 교사가 끊임없이 자기가 시골 여선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것이 난 안타까웠다. 그러나 용서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인생의 규모가 자꾸 그녀를 넓은 세상으로 불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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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왜 하지? - 꼼꼼하게 들여다본 아홉 개의 수업 장면
서근원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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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아마도) 실명으로, 실제의 학교 수업을 비디오나 오디오로 기록하듯이 고스란히 담아놓아 남의 수업을 들여다 보는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다른 이의 수업을(가능하면 날것으로 보는 게 더 좋지만) 들여다 보면 이만저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연구수업이 아니더라도 동료의 양해를 얻어 자주 수업참관을 한다. 대개는 아이, 별거 없는데, 그러면서 쑥스러워 하지만 사실은 그 별거 없는 수업, 자습도 시키고 학습활동도 풀고 이 단원에서 저 단원으로 어설피 넘어가는 그 순간을 보아도 그 교사의 아이들 대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다.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얼마나 아이들을 존중하는지, 유머감각과 융통성이 있는지, 자기 교과에 능통한지, 아이들을 잘 다루는지, 정말 사랑하는지...

물론 이 책은 초등학교 현장을 다루고 있어서 내 입장에선 좀 아쉽기도 했지만 어쨌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필자가 어떤 경로로 섭외한 수업인지는 몰라도 잘 꾸며진 수업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잘 꾸며진 연구수업, 공개수업은 참으로 많이 보아왔다. 평소에 쓰지 않던 경어를 쓰고, 평소에 쓰지 않던 학습목표를 칠판 왼쪽 위에 적어두고,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모둠 수업, 멀티미디어 수업도 하고, 심지어는 한 번 리허설도 하는 그런, 그런 수업을 보고 얻는 것은 별로 없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걸 안다.

우리는 '쌩쑈'를 통해 다른 동료들도 나만큼 애들과 씨름한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난장판 교실에서 아이들을 정돈하고 차분히 수업을 이끌어가는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들 만하다가도 의문이 드는 건, 그렇다고 일부러 때로는 느슨하고 때로는 안이한 수업조차를 취재에 넣은 것인지 하는 거다. 꼼꼼히 들여다본 아홉 장면의 수업이라며, 책 한 권에 고작 아홉 장면이라면 유형화가 되어서 엄선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 물론 그들 중 유창한 수업과 늘어지는 수업, 아이들이 움직이는 수업과 교사의 카리스마로 살아남는 수업, 많은 교재와 도구를 현란하리만큼 사용하는 수업과 교과서 하나로 감동을 주는 수업을 횡으로 종으로 잘 짜면 더 좋을 터이겠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홉'이라고 선정되려면 어떤 '이유'가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체계화가 되지 않았더라도, 아홉 아니라 열아홉 장면의 수업이, 장면 그대로 실렸더라면 난 더 재미나게 읽고 얻는 바가 많았을 것 같다. 필자는 어떤 소명을 느끼며, 전문가적 안목으로(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입장에서) 각 수업에 대한 평가를 달아준다. 그 평가들이 나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는 거부감. 차라리 그냥 수업만 보여주었더라면,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와 교사의 자질 및 교육관에 대한 문제제기는 무엇이 선이고 후인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성심껏 쓴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문제라는 것인지, 아니면 교사의 자질이 문제라는 것인지, 그러니까 교사가 줏대와 가치관을 세워 수업을 잘 하라는 것인지 교육부보러 교육과정을 잘 세우라는 것인지, 교사에게 잘못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내가 보기엔 아홉 교사는 각기 단점 못지 않게 흔히 볼 수없는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걸 칭찬해 주었더라면 지금쯤 그 교사들, 더 뿌듯해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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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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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깊은 사람은 평생 마음이 가난하다. 내가 그러했는데, 내 아들이 또 그러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슬픔이 저의 것이요(윤동주)... 슬픔이 곁에 있어 슬픔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네가 고맙다. 네가 있어서 고마웠는데 너로 인해 슬퍼서 또, 네가 고맙다.

나는 공지영이 부럽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시절을 보낸 그녀는 글재주와 미모와 예민한 감수성과 자의식과...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일찌감치 성공하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이상한 충만감과 이상한 부족감을 느낀다. 혹시 그 부족감에는 그녀에 대한 시기심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곤 하였다. 그러나 신현림이나 신경숙, 한비야 등등에게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나는 글쓰는 이들에게 좀더 겸손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기자랑의 다름 아니라고 믿는 이상한 습관 탓인지도...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수도원 이야기라는 것, 또 하나는 책 속의 스산하고도 어여쁜 수도원들의 사진들 때문이었다. 사진 속의 수도원을 그리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바라보고 싶었다. 어쩌면 공지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녀의 글을 읽고 18년 만에 다시 영성체를 받았다는 종교적 체험에 의심도 가졌다. 한때 같이 근무했던 사람 중에 감수성의 과잉으로 종교적 편력이 심했던 어떤 여교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나, 어쨌든 그녀의 감수성의 깊이가 어쨌든지 간에 여행 중에 한없이 들여다보이는 자기자신의 모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 많은 공감을 했고 감정이입도 했다. 결혼, 출산, 글쓰기, 자기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회한, 그 사람이 까발리고 울었던 자기 고민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을 읽은지 1년이 지난 이번 가을에 다시 한 번 책 속의 수도원들을 그림으로 옮겨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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