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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사랑하기
빌헬름 게나찌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최근에 유럽의 연애소설 두 권을 연이어 읽는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산 것은 내 문학적 취향의 편협성을 극복해 보자는(끈적이지 않는 유럽문학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져보리라는 건전한 자세 ^^)의도와 문체와 지적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 서평이 이유였다. 거기다 직후 이 책을 읽게 되면서 하나는 영국 또 하나는 독일이라는 전혀 다른 문화적 공간의 연애 이야기를 거의 '섭취' 수준으로 만난 것이다.
여기 주인공이 유럽인 특유의 약간 음울하고 시니컬한 쿨함이 없진 않아도 거짓된 사랑을 하는 것 같진 않다. 두 여자 혹은 두 남자를 사랑하는 게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옳으냐 그르냐 괜찮으냐 안되냐의 문제를 떠나 한 개인의 고뇌와 사유의 문제로 다가간다. 가끔은 너무 거리를 두는 소설들의 쿨함이 짜증날 때가 있다. 아니다. 나는 전혀 '안 쿨'한 사람으로서 쿨한 소설 싫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의 미세한 고뇌를 따라가고 있는 기법이 오히려 난 맘에 든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 하지만 세상 어떤 부도덕한 사랑도 사랑은 사랑이다. 입방아에 올려놓고 씹을 땐 재밌을지 모르지만 그런 남들의 스캔들을 들으면서 혹은 씹으면서 아니,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의 껌 노릇이나 하고 있는게 아닐까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다.
한국에서 결혼생활이란 특히 여자에겐 얼마나 큰 무게인가. 한때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면 참 잘 살았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맘껏 나의 삶을 살리라. 그리고 거기 사랑이란 이름이 끼어들어도 사랑이 결혼에 의해 진절넌더리 나는 것이 되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보라, 주인공은 겨우 50대 초반에 아이없는 허전함과 불안한 연금과 신물나는 자기 일에 대해 고민한다. 어쩌면 그 모든 삶의 환멸을 이겨낼 수 있게 했던 마약같이 달콤했을 섹스마저도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간다. 한 여자를 선택하는 일이 삶의 마무리의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결혼을 했기에 거쳐야 했던 젊은 날의 터널이 거칠었을지 몰라도 서서히 늙음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나는 주인공과 같은 고민은 하지 않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거친 젊은 날도 결혼이 아니었으면 알콜중독이나 외로움 중독으로 지금쯤 여기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핵심은 그게 아니지 않냐고? 두 여자를 사랑해도 되는지,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라고?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늙고 초라해져야 비로소 보이게 되는 삶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젊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적나라하게 벗겨지는 인생의 외로운 본질. 아마 그에게 두 여자가 있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 사람과의 약조를 지키며 아이 둘쯤 낳고 살며 적당히 흰터럭을 발견하는 또 다른 삶의 이 사람에게도 그 본질은 똑 같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