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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ㅣ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한다.
책을 별로 많이 읽지 않은 아이도 어려워하지 않고 읽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공감한다.
나는 처음에 제목만 보고 주인공이 자살을 하거나 시도하는가 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보고 좋을 때다! 그런 말을 쉽게 하지만 나는 10대 때 좋은 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날 뿐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나의 아들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것이 입시와 성적에 찌들은 지금의 세태, 억압투성이인 학교의 틀,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다. 열여섯 쯤의 나이는 불안과 열정과 이상이 기묘하게 얽히는 시기이다. 하고픈 것이 많아 그것을 누가 가로막든 아니든 그 열정만으로도 몸살이 난다. 천상의 세계도 궁금하고 친구의 머리 속도 궁금하고 무엇보다도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의 나이이다. 도대체 뭐가 내가 도달하고 싶은 세상인지조차 몰라 하면서도 거기 닿아보려고 교회도 나가보고 연극도 보고 책에도 빠져보고 나쁜 짓도 해보고 싶은 때이다.
그리고,
자살을 꿈꾸던, 아니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시기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혹시 이 책이 그런 10대의 심리를 섬세히 보여주고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제목이 너무 불길해서 좋은 책이란 것을 알고도 먼저 권하지는 못했다. 내가 먼저 읽으면서도 나는 솔직히 무서웠다. 이렇게 과감히 선언할 수 있는 아이는 누구일까. 그는 과연 어떻게 된 걸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는 물론 재준이가 죽음놀이를 하면서 쓰는 일기장의 구절이다. 맞다, 자기를 죽음의 세계, 피안에 놓고 객관화시켜 놓고 바라보고 싶은 나이다. 죽음놀이를 하는 재준이는 어쩐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작은나무를 연상하게 한다. 고아원에서 모진 학대를 받을 때 자신의 몸을 객관화 시키는 마음의 훈련을 하던 그 아이.. 재준이는 평범해 보이지만 많은 평범한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어른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이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별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그저 헤헤거리는 태평하고 천진한 어린아이인 줄 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정말 그래 보인다기보다 그렇다고 믿고 싶어서 아이들을 그야말로 '아이 취급'한다는 게 더 맞는 거 같다) 나의 아들은 자신의 연애에 대해 "어른들은 다 아는 듯이 말하지, 엄마도 마치 우리들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지, 엄마가 모르는 게 있어", 라고 말하더라. 맞다. 나도 초등학교 6학년 이후 나의 엄마는 나의 세계를 단 10%도 몰랐다. 그 뻔한 걸, 도저히 알 리가 없는 그 속을 어른들은 왜 알고 싶어하고, 좀 안다고 착각하는 걸까.
재준이는 사고로 죽었지만 그것은 주변 사람들과 재준이의 친구 유미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제자들과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읽었을까. 나의 죽음, 그리고 친구의 죽음이 주는 무게를 이 책에서 읽었을까. 언제나 이야기 자체보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감정의 흔들림을 주목하는데 작가는 어떻게 이 무렵 아이들의 마음을 그럴 듯하게 재현해냈을까 궁금해졌다. 아마 많은 취재가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그 무렵을 되돌이켰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쉽진 않았을텐데. 무엇보다도 아이들에 관한 많은 고민과 문제들에 주목하던 이들도 차마 언급 못하던 '죽음'이란 주제를 만지작거릴 수 있던 그 용기에 박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