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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김선우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멋진 여성에게 끌린다고, 시인이 고백했는데, 동감한다. 한때는, 세상엔 왜 이리 멋진 여자들이 많은 거야,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건 뭐랄까, 영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뜻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좀더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삶을 살고 음악이나 바람이나 별이 주는 메시지에 둔감하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대체로 ^^).
이 책 속의 글들은 그냥 그랬다. 그런데 나는 마치 사랑하는 친구의 삶의 흔적을 보려고 그의 편지를 열심히 읽는 여고생이 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문장력에 감탄하고 진정성에 공감하기로는 김선우가 한겨레 신문에 실었던 칼럼들이 더 강했다. 사랑에 대한 편지라니, 최근 들어 그녀의 새 시집을 놓고 관능의 시인 김선우의 새 시집이라고 선전하는 것을 보고 아, 그런가? 그랬나? 싶었던 나라 오히려 그녀가 '사랑의 편지'를 썼다는 게 의외다. 이 책이 그런 내용이었으면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김선우, 라는 이름만 보고 샀다.
나에게 김선우는 굉장히 깊은 어떤 사람이다. 아마 곁에 만날 수 있는 친구라면 말이 참 없을 것 같은. 문인들 모인 자리에서 당돌하게 수상을 거부하고 여행을 떠났다거나 정치적 발언도 거칠 것이 없는 그녀, 관능적인 시를 얼굴 붉히지 않고 쓸 수 있는 그녀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거칠지 않고 야하지 않은 이유는 그 사람이 깊은 사람이라서, 여기서, 혹은 자기의 영혼을 멀리 띄워놓고 지구별(그 사람의 표현으로는)을 고즈넉히 바라보는 영적 거리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그런 친구를 하나 알고, 그 속이 궁금해서 자꾸 그의 글을 (말은 별로 하지 않으니까) 찾아 읽는 사람의 심정이 된다. 여고시절 새벽같이 학교에 오면 서랍 속에 낯선 아이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누군지 모르나 참한 영혼을 지닌 그녀가 간밤의 끓어오르는 성숙을 어딘가에 토하고 싶어서 나를 택해 밤새 편지를 썼다. 나에 대한 애정과 학교생활, 고민, 이런 것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알 수 없이 자기를 흔드는 음악, 자기를 이끌어대는 달의 기운,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자아의 분열과 합일 따위, 사춘기 소녀들만이 겪을 수 있는 신비한 정신적 흔들림의 고백들이었다.
책에서 나는, 김선우가 찾아 읽는 시, 음악, 그의 집 베란다. 찾아가는 곳 들을 따라 읽었다. 이렇게 혼자 고즈넉하게... 그런데 외로워 보이진 않으며... 강원도에 살 때 이렇게 혼자 잘 자기를 여물게 하던 많은 여자들을 만났었다. 방 벽 하나를 온통 시집으로 채웠으되 월세를 옮겨 다니던 그녀들은 책장도 없이 벽돌과 송판으로 책들을 괴었고 가진 것 중 가장 비싼 것은 고작해야 공들여 산 레코드 플레이어였던. 물론 세월이 흘러 그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아내, 엄마들이 되었을 것이고 여전히 혼자 살아도 그 동안 모은 월급으로 쾌적한 아파트 한 채와 경차 한 대를 가진 멋스러운 싱글로 살아갈 것이겠지만 아무튼, 자기 세계가 아름다웠던 사람들이었다. 그 영혼에 고인 물이 김선우처럼 글이 되고 시가 되진 않았지만 혼자서는 그렇게 음악을 듣고 홀로 그림을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을 활짝 두 팔 벌려 안아주곤 하던 그녀들, 그녀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김선우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 나보다 몇 살 어린 그녀는 참으로 살갑고 친근하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