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짓는 건축가 이야기 - 사무엘 막비와 루럴스튜디오
안드레아 오펜하이머 딘 지음, 티머시 허슬리 사진, 이상림 옮김 / 공간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나의 전공과, 나의 삶과 아무 관계도 없는 '건축'이라는 분야에 자꾸 관심을 두는 것일까. 조금의 희망을 걸고 아들에게, 건축을 공부해 보면 어떻겠니, 라고 말해 보았지만 한동안 장래 희망에 '건축가'라고 적곤 하던 녀석이 엄마, 수학을 잘해야 건축가가 된대, 그래서 안 할래, 라는 말로 싱겁게 그 꿈을 접어 버렸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영락없이 적성검사마다 문과가 나와 버리는 고로 건축학은 꿈도 못 꾸었던 기억이 새삼 났다. 아마 그 때도 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긴 했나 보다.

집 꿈을 자주 꾼다. 꿈 속의 집은 매우 복잡하지만 아름답고 구조적이고 기능적이다. 지금도 아파트의 삶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좀더 복잡하고 좀더 아름다운 어떤 '집'의 형태가 분명 가능할 것만 같아서, 월간지의 잘 지은 집 사진을 꼼꼼 들여다 본다. 그러나 거기에 '돈'은 있고 '실험'은 있고 '세련미'는 있을지언정 국적도 인간미도 찾아보기 어렵다. 고등학교 시절 찾아뵌 은사님(강요배 화백)의, 가구도 없이 한지로 벽을 바르고 커다란 통나무로 그림책상을 짜고 머리 위로 드리우는 커다란 등갓으로 노란 불을 밝히던 작업실의 미감과 같은 집, 그런 것을 아마 자꾸 찾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내가 건축에 관한 책을 자꾸 찾아 읽는 것은 내 맘에 꼭 맞는 집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가끔 나는 미술관들에서 그런 공간적 친밀감을 자주 느낀다.

사무엘의 건축은 정서적으로 너무나 미국적이고(뭐랄까 초기 미국의 청교도 정신과 사회주의 정신이 결합된 느낌이니까 지금의 헐리웃적인 미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감에서도 나의 것과 거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흥분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 책을 읽을까 싶게 별로 우리 삶과 관련성도 없는 이 책에서 나는 많은 힌트를 얻었다.

싼 재료로 아름답게 집을 짓는다, 이것은 참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태껏 우리나라 농촌의 집들이 싸구려같이 보이는 이유는 슬레이트, 시멘트, 양철 따위가 주는 싸구려 질감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에 디자인의 문제를 결합해 생각해 보면, 재료들이 싸구려라고 아름답지 말란 법은 없다 싶다.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다.

사무엘이란 사람, 버려질 것 같은 재료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명품족들 눈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건축물에 당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랑  비슷한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고급스럽고 세련된 건축물, 구조물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개개인이 누리는 공간은 좀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패션도 그렇다. 비싼 옷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참신하게 자기와 어울리는, 디자인으로서 멋스러운 그런 패션이 진정 값지다고, 압구정 거리에는 진정한 멋쟁이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어차피 땅넓은 미국에서나 가능한 널찍한 마당의 집, 높은 천장과 잡풀이 우거진 마당이 정서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사무엘과 그의 제자들의 실험정신과 진정성이 담긴 집들에 그다지 감사해 하지 않는 듯 보이는 미국의 빈민들도 불편하다. 그래도 나는 사진 속 집들의 살림살이 어우러진 노란 불빛의 집들이 고마웠다. 건축학은 비싼 학문이라 생각하는데 누구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예술적으로','실천적으로' 건축을 하고 있는 사무엘 막비에게 존경을 보낸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은 힌트들

- 아들 방에 벽화 그리기

-회벽으로 무언가를 해 보기

-청소년 문화센터 구상하기

-부직포 그림을 그리는 나의 노년의 작업실

이 중 하나는 완성이 되었다. 아들 방에는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커다랗게 침대 머리 위로 나뭇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중3 짜리 아들은 일주일에 걸쳐 180cm 넘는 자기 키보다 더 큰 초록 나무를 아크릴로 열심히 그렸다. 지금 나뭇가지가 살랑 그의 잠든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7-3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선생님 안녕하셨지요? 더위에 어찌 지내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사실 아는 여자분께서도 건축쪽에 너무 관심이 많으셔서요. 그분도 책도 시도 너무 좋아하시는 분인데.. 풀꽃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그분이 생각났어요.. 뜬금없이 시와 건축이 통하는게 있지 않을까..아름다움 균형..그런 단어들도 떠올랐습니다..

싼재료로 아름다운 집을 지울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정신이 있어서 가능한 것일 듯 싶어요..옷도 싸지만 아름답게 입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내면이 그것들을 추구해서일꺼라 저도 믿습니다..
더운 여름 ..태양의 위력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 .. 건강하시길..빌어요.. 풀꽃선생님!!!


강병국 2013-04-1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건축가입니다
6년전 글에 덧글을 다는 저도 참....
그동안 전 세상 자본주의 논리속에서 무감각하게 건축을 해온거 같군요...
부디 생각하시는 소망이 이루어지시길...
저도 좀 다른 건축을 생각해 봐야할 때인것 같군요... 덕분에...!!

풀꽃선생 2013-04-12 18:42   좋아요 0 | URL
제가 동경하던 일을 하고 계시다니...
또, 6년 지난 글에 답을 달아주시는 걸 보면 결코 돈의 노예가 되는 집을 지을 분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덕분에, 이 봄날이 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