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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1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전에 어쩌다가 몇 편을 본 적이 있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언급되던, 그리고 나는 오늘 꽃을 받았습니다 등. 이건 뭐지 싶었었다. 그리고 잊었다. 워낙 TV를 안 보기에 볼 기회도 거의 없었다.
제자가 권해서 국회의원 보좌관이 되어 있는 제자가 이 프로그램을 꼭 보라고 여러 번 권했다. 그러고도 미루고 있었는데 북하우스에서 책을 보내온다. 하루 밤 사이 책 한권을 다 읽고 나는 또 머리 속 지구가 시속 수천 마일의 속도로 도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당장 다음 날부터 수업에 활용한다.
첫수업- 어버이 날 전 우리 학교는 부모님께 '사랑의 편지'를 쓰게 한다. 어버이닐 드리고 답을 받아와 내면 우수작품을 시상하기도 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를 먼저 보여주었다. 말이 필요할까. 아이들 뒤에서 빔 프로젝터로 확대되어 흐릿한 영상을 함께 본다. 나야 이미 본 부분인데,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40개 가까운 어깨는 미동도 않는다. 저 표정을 안다. 집중, 감동, 서늘한, 충격... 그럴 때의 표정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미래와 자신의 다짐을 생각하며 편지를 쓴다. 어느 해보다 길게...
두 번째 - 국어 교과서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실렸다. 그래서 '부끄러운 기록'을 보았다. 이 책의 200쇄는 문학사적 성취가 아니라 불평등 대한민국의, 아직도 진행중인 철거와 노동자 농민 억압과 불평등의 현실을 반영한 부끄러운 기록이라는, 그런데 이 모든 메시지가 다큐멘터리 같은 자료화면으로 이어진 - 조세희 씨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귀하기도 한 - 영상자료이다.
세 번째 - 양성평등 글짓기를 하면서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를 보고 시작했다. 가정폭력은 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양성불평등의 논제이지만 '이갈리아의 딸들'과 여러가지 남녀평등사의 기록들과 함께 아이들의 글쓰기를 촉발하는 데 매우 적절했다.
네 번째 - 이육사의 평전을 공부하는 수업 시간 제일 마지막,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의 삶과 시세계를 비교하여 조사하는 수업을 마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부'를 본다. 아이들은 세 사람의 시집을 뒤적거리다가 '서시''별헤는 밤''참회록' 따위의 시들을 더러더러 만났다. 그것을 (승화된) 영상으로 만나면서 '독립운동'과 무관한 듯 보이는데도 왜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 부르는지 100% 공감한다.
지식채널e에는 떠오르는 몇 개의 키워드가 있다. 지성, 감성, 자막과 음악의 미학, 그리고 죽음.
객관적인 자료화면과 통계수치들이라는 아주 '지적인' 재료들을 감성적으로 버무리는 데에 자막 - 말을 아끼는 간결함, 적절한 문장, 핵심어 먼저 띄우기, 마치 내레이션을 하듯, 말하는 호흡과 같은 속도로 등장하거나 명멸하는 자막의 호흡, 그리고 그림자까지 - 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숨결 같다는 것. 그리고 음악 선정이 뛰어나다는 것. 같은 노래라도 반주 없이, 음향 없이 또 장면에 딱 맞는 노래의 바로 그 구절을 넣어주는 솜씨가 대단하다.
그리고 죽음이 있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 쓸데없이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여운을 남기는 영화처럼 서늘하게 명료화된 죽음이 있어서 겉으로는 참으로 건조하면서 안으로 습기가 차오르는 감동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만의 색깔이 보인다.
책으로도 참 잘 만들었다. 영상이 주는 충격과 감동이 책으로는 채워지지 않을까봐 설명을 덧붙인 부분은 논술자료로 매우 훌륭하다. 처음엔 출판사의 선물로 (되돌려진 것을 다시 보내주는 배려까지) 받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제자들을 위해 여러 권을 한꺼번에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