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건 아니니 야한걸 기대했거나 그래도 설마 성인인데 안 야하겠어라고 생각하신 분은 조기 위쪽에 보이는 뒤로가기 화살표를 필히 누질러주셔야 향후 이런, 속았군이란 잽싼 깨달음으로 인한 뒷목 땡김 현상과 아노미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성인동화 시작!
아치는 벌써 며칠째 같이 일하는 분에게 쪼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을 못하는데다 고민을 하지 않고, 가끔 보면 알라딘인가 뭔가를 한다고 혼자 히죽대기 일쑤니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릅니다. 하도 쪼임을 당한지라 그 많던 뱃살이 자취를 감추진 못했고, 약간 풀이 죽은 상태가 어언 몇 주. 아치는 다시 이를 악물고 근무 중 알라딘 안 보기와 모니터 보다가 실실 웃는 고질병을 고치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제출 서류에 커피 자국과 코피 자국 비슷한 것, 심한 구김 등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지 가시적으로 보여주려고 애를 썼답니다. 결국, 사수로부터 이렇게 드럽게 하려거든 차라리 파일로 보내라는 말로 치밀했던 잔꾀를 반납해야했습니다.
물론 아치도 할말이 있답니다. 이 분야의 일을 처음 시작하는데다 처음부터 '아치가 알아서'를 하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란 소리 말입니다. 그런데도 맨날 자기 기분대로 이랬다 저랬다 마치 수족을 부리듯 사람을 긴장시켰다 눈치를 보게 하는 사수에게도 버벅대기 선수인 아치도 한마디쯤은 해줄 수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일을 하면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한데다 말 역시 청산유수인 사수에게 당해낼 재간이 있어야 말이죠. 뭘 배우려니 그간 겉치레로 둘러쓴 자아감이 고생이고, 머릴 안 쓰니 손발이 고생인 것처럼 내가 못나서 그렇지란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사수의 맘에 흡족한 결과물을 내놓을지 고심, 또 고심을 했더랬습니다. 눈뜨자마자 회사에 나가 별이 뜰 때 집에 들어오니 나날히 야근이요, 점심도 도시락으로 해치우니 느느니 허기인지라 여차저차 요새 통 기운을 못내고 근근히 지내고 있었더랬죠.
그러던 어느 날, 아치네 팀은 다른 팀과 뭉쳐서 회의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 팀에 아치와 같은 업무를 맡아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치는 반가운 맘에 그동안의 주눅도 잊고 즐거이 그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더랬습니다. 차마 말을 못건건 입만 열면 사수에게 지적을 당하는지라 평소에 꼼짝마 자세로 눈알만 굴려야하는 초긴장 상태를 항시 유지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그분은 자신이 맡은 일을 착착 진행하더군요. 아치에게는 손톱만큼도 발견되지 않던 자신감이었죠. 그러다 옆사람이랑 뭐라고 궁시렁대기도 하고, 혼자 씩씩대기도 하다가 그만, 갑자기, 아주 서슴없이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진행하기 곤란하단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그건 마치 꽝꽝 얼린 과일 샤베트를 쉬지도 않고 꿀꺽꿀꺽 삼킬 때처럼 머릿 속을 하얗게 만드는 일이었죠.
사수의 실수도, 사수의 기분이 나쁜 것도 다 아치의 책임이었던지라 아치로선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을 벌인 그 친구의 안위가 단단히 궁금해져 숨죽인채 상황이 돌아가는걸 지켜봤습니다. 짐작했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친구가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친구를 두고 버럭돌이라며 우스개소리를 주고 받았습니다. 순간, 아치의 눈에선 아무도 눈치못챌 정도의 이슬이 비췄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슬은 자신이 난데없이 튀어나온 이유를 잘 모릅니다. 아치가 셀프 플레임을 하고 자신의 모든 상황을 기정사실화하는 동안 그 친구는 주변의 지지를 받으며 자기 일을 해나갈거란 생각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건 참으로 고되구나란, 그런데 이런 분위기라면 참, 좋겠다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사수 역시 그 친구처럼 서슴없이 파고드는 스타일을 아치에게서 원할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좀 부럽더군요. 적어도 아치가 뭔가를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모든 발언이 차단된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 친구가 아치보다 월등히 일을 잘해서 그런 대우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뭐랄까, 해볼테면 해봐라가 아니라 우리 으쌰으쌰 잘해볼까란게 느껴졌죠. 분위기로 일하고 밥벌어 먹는건 아닐지라도 회가 동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김훈처럼 밥벌이의 지겨움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입구멍에 밥을 넣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숙명처럼 고된 삶도 떠올랐습니다. 그건 동화 속 아치의 알고보면 푸념인, 그러다 볕좋은 날의 공기처럼 가끔은 코미디인 상황도 아니겠죠.
역시나 아치는 말미에 뭔가 교훈을 심으려는 강박이 있단 생각이 퍼뜩! 교훈은 저 산 위에 심거라~ (유머야! 유머니까 웃어야지... 미안해요 흑흑)
우야됐든 공장의 시계는 돌고 돌아 아치는 퇴근을 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옆에서 괜찮아, 잘 하고 있어. 에구 애쓴다며 말해준다면 아치는 그 분에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뱃살의 비밀을 알려줄 수 있을텐데란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습니다. 그런건 알 필요 없다고 하신다면 배게에 얼굴을 처박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어리석은 애교를 부릴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