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경우이다. 그런 상황은 그것이 내포하는 심리적인 만족감이나 그 파생 작용에 의해 내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사랑받지 못한 채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서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 불행의 몸짓조차 되찾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이 불행의 능동적인 행위자는 바로 나 자신이며, 그리하여 나는 동시에 자신이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173p 동일시 현상

 이 한 구절을 적어놓고 한 달이 지났다. 다시 책을 뒤에서부터 읽기 시작해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었나 싶게 새로운 구절을 마주할 때마다 이 책을 감히 도서모임의 선정도서 후보로 올린 똥배짱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럼에도 읽어내려가는 구절마다 다시 생생하게 다가오는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쓴다,
이건 곧 사랑한다란 말과 같다.
나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견디니까.

 자기 계발서의 변종인 연애 계발서의 최대 장점은 공감 능력이다. 그 이상은 없고 그 이하의 경계 아래에서 발버둥치는 것 뿐이다. 가끔씩 주는 위로 말고는 연애 계발서는 왜 내가 사랑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는지, 대체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연애의 잔기술과 어떻게 하면 케이스별로 연애 강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식의 것들이 먹힐 수 있는지에 대한 지루하고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생생한 날것 그대로의 싱싱함까지 바라는건 무리지만 레토르트 식품의 겉봉을 뜯어놓은 채 판매하는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처음 구절로 돌아가자면 아마도 일반적인 연애서라면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선택해야한다는 둥의 흰소리를 늘어놓을게 뻔하다. 하지만 바르트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게 나를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의 맘 덕분에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의 질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피해자인 다른 누군가의 처참한 모습이 곧 나이고, 그런 면에서 자신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모든 입장에서 고통을 받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책 속에 자신을 대입시켜 자신의 일인 것처럼 환호하는 작자들을 무지하다고 했지만, 난 이 구절에서 정녕 내가 봐버린, 사랑이란 권력관계의 모순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건 공감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정확한 인식이었고, 전부는 아니었지만 전부일 것처럼 번들거리는 예민함이었다.

 살갗이 벗겨진, 지극히 가벼운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는 사랑하는 사람의 특이한 감수성. ... 사랑에 관한 한 그것은 살갗이 벗겨진 사람이지, 깃털로 감싸인 사람이 아니다. 127p 
  나를 감싸고 있는 깃털들은 나를 따뜻하게 보호할망정 날 수 있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차라리 살갗이 벗겨진대로 고통에 찢겨지고, 상처가 아물새도 없이 다시 살갗이 벗겨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데도 애무를 받을 때면 되살아나는 살갗에 환호한다. 그 짧은, 마약 같은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을 쓰라린채로 지내야한다. 살갗이 벗겨진 상태는 곧 익숙해져 이젠 자신이 그토록 각성없이 무감각하다는 것조차 느끼질 못한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61p 기다림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으면 기다리기를 멈춰야하는데도 나는 붙박힌 듯 의자에 파묻혀 그를 기다린다. 그를 기다리며 바르트처럼 걱정과 슬픔 분노와 좌절을 경험한다. 나는 기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걸 알았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능동적으로 기다림을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게 아니다. 아, 이런 단언조차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약간의 금지와 많은 유희, 욕망을 가르쳐주고 그 다음에는 내버려두는. 마치 당신에게 길은 가리켜주지만, 같이 따라나서겠다고 고집부리지 않는 저 친절한 원주민들처럼. 184p "누구를 원해야 할지 가르쳐 주세요"
 그는 나를 가만히 놔둔다. 그는 자신의 일상의 테두리를 지키며 나를 만난다. 그는 나에게 관계의 중독성을 심어준 후 마치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우리 사이를 관망한다. 그는 저 친절한 원주민들처럼 계속 친절하기만 할 것이다.

 기호: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려거나, 혹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을 때면, 어떤 확실한 기호 체계도 수중에 갖지 못한다. 기호의 불확실성 286p
 그는 말하지 않는다. 사랑을 말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도 않는다. 나는 그의 행동이나 표정, 어투, 그가 하는 말을 죄다 도마에 올려놓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말은 처참하게 해지고 너저분해지지만 내가 원하는 어떤 기호도 발견할 수가 없다. 오로지 나를 향해 웃어주는 순간에 감격해 기호들을 내려놓고 잠시 동안 안정을 취한다. 잠시 후 나는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맹렬함으로 기호를 분석하고, 나를 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바르트의 단상들은 나와, 나의 경험, 내가 했던 연애와 하고 있는 연애, 앞으로 할 연애, '어쩌면 사랑'에 대한 풍부한 담론을 제공한다. 사랑의 단상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텍스트를 바탕으로 바르트가 강연했던 것을 묶은 책이다. 하지만 베르테르의 소스에서 시작해 바르트의 시각을 풀어놓았다는 편이 책에 대한 설명에 더 근접할 것이다. 바르트의 단상을 바탕으로 나 역시 서툰 해석을 시도해보았다. 이건 순전히 사랑의 단상의 저열한 리뷰에 불과하다는걸 아마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리뷰는 책을 위한 한편의 헌사가 아닌, 이런 너저분한 리뷰를 읽느라 버린 눈을 책으로 보상해버리고 싶은, 정말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동기부여의 목적이 큰 리뷰가 되겠다.(갖다 붙이기는)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내 경우에는 바르트의 유머가 한몫 했다고 본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피로, 사랑하는 사람의 피로는 어떤 문학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사랑을 하는데 피로하다니. 그런데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피로 앞에서 이토록 무기력해지는건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것에서부터 사랑의 광기에 빠진 사람을 그 누구도 구해줄 생각이 없다는 것, 난 널 사랑해란 말에 대응하는 대답없음에서 느껴지는 절망까지. 절망스럽지만 그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유머로 봐버리는건 잔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텍스트일 뿐인 책을 비통하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의 내면화라는 과오를 저질러버리는걸. 유머 코드는 책의 진도뿐 아니라 책과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대안이 아닌 필수였다.

 바르트는 고통을 예감하고 그보다 더한건 없을거란걸 느끼지만 자신이 광기에서 벗어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찰나적인 감각이 자신에게 주는 최대치의 도취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아직까지는 내 것만이 아닌 다정함에도 명랑한 강아지처럼 급하게 꼬리를 흔들거란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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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6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6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7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7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래도 처음은 손잡기.


 섹스보다 손잡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건 이게 첫 접촉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의 독특한 떨림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접촉면이 넓은 섹스가 전면적이라면 약간의 망설임 끝에 손을 잡는 건 그것대로 감질맛이 나니까. 사실 손잡는 것만큼 설레임을 주는 행위가 또 있을까.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있긴해. 왜 맛있는걸 눈 앞에 놓고 봤을 때가 있잖아.

 섹스는 설레임보다는 상징적으로 정욕에 바탕을 두고, 일체감도 사실 섹스에 담긴 함의만큼이나 다양해서 어느 지점의 행위인지를 정의내리기 어렵잖아. 하지만 손잡는건 그 자체로 유연한 시작을 의미해. 시작 후 뭘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구강으로 모스 부호를 두드려대던 사이에서 '자, 이제 시작이에요'를 알리는 기호로서 손잡기만한게 있을까란 생각도 들어. 다만, '어쩌면 섹스'가 확정된 후 잡는 손은 좀 민망하지만.


 그런 다음엔 포옹이 있을테고. 포옹겸 키스, 살갗을 어루만짐. 손으로 톡톡 주물주물. 민감한 부위에 집중된 자극 행위. 인터코스가 최종은 아니겠지만 통상적인 성적인 행위에 비춰볼 때 제일 마지막을 차지하는걸로 볼 수도 있겠지. 처음에 한번도 섹스를 해보지 않았을 때는 수순의 개념도 없이 '어쩌면 섹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는데 지금은 아냐. 오히려 이렇게 순서를 밟는 것이 좀 어색해지더라.. 앞서 말했듯이 섹스를 하기로 한 후 이제껏 옷깃 한번 스치지도 않았는데 덥석, 이게 뭐야 싶게 손을 잡는 것 만큼이나.


 뻔하잖아.


 으슥한 곳을 찾는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차에 좀 더 있자고 한다, 볼만한 영화가 없는데도 굳이 DVD방을 가자고 한다, 멀쩡하게 잘 걷고 있는데 술에 취한 것 같다며 부축을 해준다, 그만 먹겠다는대도 굳이 또 술을 먹자 등등. 이런 행위 속에 담겨있는 스킨쉽의 의지는 사실 좀 낯 뜨거워. 정말, 순전히 부축과 별다른 의미 없는 영화감상에 불과할 경우도 물론 있지. 하지만 대개의 경우, 30살이 넘도록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 쑥맥이 아니고서야 알게 모르게 체득해온 것들이 속속 배어나오는 상투성은 그냥 섹스나 하죠란 말만큼 충분히 멋이 없어.


 섹스가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란 물음 근처에서 그동안 꽤 여러 가지 생각을 해온게 사실이야.


 야야툰에 보면 많이들 하는 체위로 섹스를 하다가 여자가 위에서, 페티쉬를 강조하는 장면, SM 역할극, 2:1등등 소위 말하는 변태적인 것의 범위를 넘나들다 평범한 체위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와. 섹스보다는 손잡기, 쌉싸름한 키스, 가슴팍의 온도까지 전해지는 포옹.

 어쩌면 순서는 정하기 나름이고, 특별한 룰은 없는건지도 모르겠어. 모든건 그렇게 돌고 도는거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의 섹스가 너무 좋다고, 진도가 느리다고, 혹은 이런저런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직경을 포함한 감정 문제에 대해.


 한때 '그 포옹'이 너무 좋아 만나던 친구에게 으스러지게 안아봐란 부탁을 한적이 있어. 한동안 등뼈가 흐물거려 반쯤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없이 웃어보일 정도로 그 느낌, 꽤 괜찮았어. 이젠 등뼈가 의자에 기댈 때나 '저, 여기 있어요.'라며 생각지도 않은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지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뽀뽀가 하고 싶은 당신에게 내 입술에선 츄파춥스 바닐라 냄새가 난단걸 알려주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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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뽀뽀가 하고 싶은 당신, 누구일까? ^^
어디를 가도 자가용 타고 휭~ 가는 세상이라, 어제밤 남편과 영화보고 내려오며 잡은 손은 황홀한 느낌이었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2-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첫사랑과 처음 손을 잡은 날인거 같아요.. 늘 친구로 있다 열몇이 서로 되어서 처음으로 남자로 여자로 손을 꼭 잡았을때.. 가슴이 터질 것 같았죠.. 아 연애를 해야할 거 같은데요 이포스트를 보니~

Arch 2009-02-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비밀비밀^^!!
다들 스킨쉽의 추억이 있는거였어요. 게다가 황홀까지야~

휘모리님, 저도 굳이 최초의 짜릿을 대라면 손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구름다리할때였어요. 그건 아주 나중에 얘기할 것 같아요. 으음~ 꼬옥 연애를 하세요! 나한테 하는 소리였나? 잘 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09-02-08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금 느렸어요.
사실 저는 뭐든 남들보다 느리긴 해요.
어쨌든.

스물두살때 처음으로 남자와 손을 잡아 보았어요. 아주 뻔하게. 저를 집으로 바래다주던 차 안에서.
떨리는 마음에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샤워를 하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요. 손 잡았던걸 생각하자 허벅지가 후들후들 떨리고, 온 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리더라구요. 손을 잡는 행위에는 섹스보다 더 강한 떨림이 있는 것 같아요.


손 잡고 싶어지는 밤이에요. Arch님의 페이퍼 때문에.

Arch 2009-02-08 00:39   좋아요 0 | URL
덥석, 주물주물.
뻔한거 아닌데, 아차차 내가 뻔하다고 했구나. ㅋ 미안!
그런데 뻔한거 아니에요. 뻔하다고 쓴건 별 수 없는 거라서...

으응, 본격적인 처음같은 것? 손잡는건 아직 그래요.

다락방 2009-02-08 00:44   좋아요 0 | URL
Arch님이 뻔하다고 한게 아니라 제가 뻔하다고 생각한거예요. 그땐 내가 너무 순진해서 뻔한 수법에 넘어갔어, 하고 말이죠. 하핫.

어떻게 잡았냐고 하면 너무 뻔하고 뻔해서 말하기가 부끄럽거든요. ㅎㅎ

Arch 2009-02-08 01:03   좋아요 0 | URL
뭐 얼마나 특별한 방식이 있겠어요. 저는 여전히 순진해서 뻔한 수법을 즐겨 사용하며 즐거히 응한답니다. 제 자랑은 아니고 제가 좀 순진하다는게 흠이랄까.
아, 미안미안. 나 내일 후회할 댓글 달고 있어!!

그런데도 집요하게 과연 '어떻게' 잡았느냐가 궁금해지는 밤이어요.
실은 궁금하지 않았는데 굳이 말 안한다고 하니 금지가 금지를 낳는 태고적 얘기처럼 사정없이 급궁금해졌어요.

다락방 2009-02-09 08:41   좋아요 0 | URL
뒤늦게,

스물두살때 처음으로 남자와 손을 잡아보았다는 저 위의 제 고백(?)을 보니 급 부끄러워지네요. -.-
 

 얼마 전에 사무실에 합류하게 된 분은 해비스모커이다. 어련히 알아서 분위기 타겠구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시국선언을 하듯 '아, 어떻게 비흡연자가 있는데 담배를 펴.' 이러면서 담배를 필 때마다 밖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다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뭐 굳이 본인 의지가 그렇다면 그래라 싶어 들락날락 대는걸 보길 며칠째.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칭찬하지도 않고, 내가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자, 그는 은근슬쩍 사무실에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따뜻한 사무실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는게 오죽 좋아? 맞은편에 앉은 나한테 연기를 안 가게 한다며 손을 휘젓고 그야말로 쌩쑈를 부리긴 하지만 차라리 말이라도 말지 싶었다. 멀쩡한 사람이 실없어 지는건 순간이라네, 영영 영원이라네.

 비흡연자가 있는 곳에서의 흡연을 문제삼으려는 페이퍼는 아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 역시 내가 담배 냄새 안 맡고 싶은 권리를 무기력하게 내놓았던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굳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건 새로 온 그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만 상황을 바꾸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이 바라고 희망하는대로 움직이고 살기에는 너무 많은 유혹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서재에 들락날락대며 알라디너가 쏟아내는 글을 보고, 그들의 분노와 슬픔과 희망을 본다. 혼자 힘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몇번씩 고민하게 되는 것도 서재에서 말을 내뱉는 순간, 서재 의무감이 발동돼 기어코 해내게 되고, 머릿 속이 띵한채 이건 좀 피하고 싶단 생각이 뭉글뭉글대다 고민을 거듭해 입장을 정할때까지 서재는 내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누군가가 속닥거리며 충동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분위기를 정치적인 의제로 몰고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나은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서재 종교 선포인 듯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서재의 모든 사람이 다 선하고, 다른 곳보다 온순하고 논쟁에 있어서 유달리 진정성을 보이고, 감성이 남다르다는 얘기는 아니다.(물론 그런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굳이 흠집내려고 아득아득 말을 늘어놓거나(그랬던 분이 있긴 했다.) 나, 이렇게 멋진 사람인데 부럽지라며 허풍을 떨거나(내가 가끔 이러긴 한다.) 혼자서 아주 뛰어난 선지자인양 행세하는 사람이 드물다.(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간에 합의되는 선의와 유머, 서재만의 독특한 선의경쟁 댓글들, 정말 서재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따로 대놓고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수저 몇벌까지 아는 사이들이 몇몇 있는 관계. 인터넷 공간에서 이럴 수 있는데 봤어?란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이런 암묵적인 합의와 알게 모르게 추구하게 되는 지향점이 서재의 색깔을 입혔단 얘기이다.  

 물론 이런 색깔의 문제는 전에 바람구두님도 얘기했듯이 너무 착해서 탈인 경우와(제대로 된 맥락과 사용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딱히 어떤 입장을 대변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유형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계층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착한 것이 문제될 때는 한차례의 논쟁으로 대거 탈퇴의 아픔이 생기는 것과 서로 너무 좋은 말을 하기 때문에 지적이든 정서적이든(성적인 것도!) 자극의 수위가 일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계층성의 문제는 알라디너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다른 이야기가 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배타성이 있긴하다. 내가 몇년 동안 서재 주위를 맴돌다 망설이며 서재 문을 연 것도 혹시나 나의 뻘글이 배척당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예민한 감각과 날것을 그대로 봐주지 않을 것이란 예감도 한몫했다. 이제서야 그게 순전히 (뒷집 총각 뒤태보고 두근거리는 가슴, 어쩌고 하려고 했는데... 미안, 달리 에드리브가 생각이 안 난다.)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그리고 서재의 역사를 차곡차곡 써내려간 분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다양성의 차원에서 내 얘기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신선한 자극이 될지 방귀냄새가 될지 곪아터진 고름이 될지는 차후의 문제겠지만. 

 이래서 알라딘이 좋아요, 이거 쓰려다가 개뿔! 잠도 못자고 파닥파닥. 

 서재를 너무 드나들어 안 되겠단 생각에 언젠가는 하룻동안 한번도 서재를 클릭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뉴스를 봐도 흥이고, 알라딘에 들어와도 할게 없는거다. 책이 그렇게 좋다고 떠들고 다녔으면서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데도 관심이 안 갔다. 하루 금지령의 족쇄를 풀자, 서재가 얼마나 반갑던지. 실체라도 있다면 뽀뽀라도 해주련만.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내게있어 서재는, 언제나 그전 이상의 반가움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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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06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랑스런 글쟁이 아치님 같으니라고.. ㅎㅎ

Arch 2009-02-07 01:28   좋아요 0 | URL
사랑 좀 받고 싶다요.^^ 아 구질거려... ㅎㅎ

2009-02-06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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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2-0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로 춰주지 못한다면 한 땐쓰 한다고 말을 하지 마세요. 원래는 일요일 낮에 올릴려고 바득바득 애쓰다 링크가 안 걸려 포기를 했는데 느닷없이 되는 바람에...
그래요, 저 민이 팔아서 졸음 쫓고 있어요. 흑흑

조선인 2009-02-0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택에 사시나봐요. 아파트에서는 저러고 노는 건 꿈도 못 꿉니다. 흑흑

Arch 2009-02-04 17:28   좋아요 0 | URL
아파트예요. 아랫집 미안. 흑흑
 

 야한건 아니니 야한걸 기대했거나 그래도 설마 성인인데 안 야하겠어라고 생각하신 분은 조기 위쪽에 보이는 뒤로가기 화살표를 필히 누질러주셔야 향후 이런, 속았군이란 잽싼 깨달음으로 인한 뒷목 땡김 현상과 아노미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성인동화 시작! 

 아치는 벌써 며칠째 같이 일하는 분에게 쪼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일을 못하는데다 고민을 하지 않고, 가끔 보면 알라딘인가 뭔가를 한다고 혼자 히죽대기 일쑤니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릅니다. 하도 쪼임을 당한지라 그 많던 뱃살이 자취를 감추진 못했고, 약간 풀이 죽은 상태가 어언 몇 주. 아치는 다시 이를 악물고 근무 중 알라딘 안 보기와 모니터 보다가 실실 웃는 고질병을 고치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제출 서류에 커피 자국과 코피 자국 비슷한 것, 심한 구김 등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지 가시적으로 보여주려고 애를 썼답니다. 결국, 사수로부터 이렇게 드럽게 하려거든 차라리 파일로 보내라는 말로 치밀했던 잔꾀를 반납해야했습니다. 

 물론 아치도 할말이 있답니다. 이 분야의 일을 처음 시작하는데다 처음부터 '아치가 알아서'를 하니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란 소리 말입니다. 그런데도 맨날 자기 기분대로 이랬다 저랬다 마치 수족을 부리듯 사람을 긴장시켰다 눈치를 보게 하는 사수에게도 버벅대기 선수인 아치도 한마디쯤은 해줄 수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일을 하면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한데다 말 역시 청산유수인 사수에게 당해낼 재간이 있어야 말이죠. 뭘 배우려니 그간 겉치레로 둘러쓴 자아감이 고생이고, 머릴 안 쓰니 손발이 고생인 것처럼 내가 못나서 그렇지란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사수의 맘에 흡족한 결과물을 내놓을지 고심, 또 고심을 했더랬습니다. 눈뜨자마자 회사에 나가 별이 뜰 때 집에 들어오니 나날히 야근이요, 점심도 도시락으로 해치우니 느느니 허기인지라 여차저차 요새 통 기운을 못내고 근근히 지내고 있었더랬죠.

 그러던 어느 날, 아치네 팀은 다른 팀과 뭉쳐서 회의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 팀에 아치와 같은 업무를 맡아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치는 반가운 맘에 그동안의 주눅도 잊고 즐거이 그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더랬습니다. 차마 말을 못건건 입만 열면 사수에게 지적을 당하는지라 평소에 꼼짝마 자세로 눈알만 굴려야하는 초긴장 상태를 항시 유지해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그분은 자신이 맡은 일을 착착 진행하더군요. 아치에게는 손톱만큼도 발견되지 않던 자신감이었죠. 그러다 옆사람이랑 뭐라고 궁시렁대기도 하고, 혼자 씩씩대기도 하다가 그만, 갑자기, 아주 서슴없이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진행하기 곤란하단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그건 마치 꽝꽝 얼린 과일 샤베트를 쉬지도 않고 꿀꺽꿀꺽 삼킬 때처럼 머릿 속을 하얗게 만드는 일이었죠. 

 사수의 실수도, 사수의 기분이 나쁜 것도 다 아치의 책임이었던지라 아치로선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을 벌인 그 친구의 안위가 단단히 궁금해져 숨죽인채 상황이 돌아가는걸 지켜봤습니다. 짐작했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친구가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친구를 두고 버럭돌이라며 우스개소리를 주고 받았습니다. 순간, 아치의 눈에선 아무도 눈치못챌 정도의 이슬이 비췄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슬은 자신이 난데없이 튀어나온 이유를 잘 모릅니다. 아치가 셀프 플레임을 하고 자신의 모든 상황을 기정사실화하는 동안 그 친구는 주변의 지지를 받으며 자기 일을 해나갈거란 생각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건 참으로 고되구나란, 그런데 이런 분위기라면 참, 좋겠다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사수 역시 그 친구처럼 서슴없이 파고드는 스타일을 아치에게서 원할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좀 부럽더군요. 적어도 아치가 뭔가를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모든 발언이 차단된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 친구가 아치보다 월등히 일을 잘해서 그런 대우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뭐랄까, 해볼테면 해봐라가 아니라 우리 으쌰으쌰 잘해볼까란게 느껴졌죠. 분위기로 일하고 밥벌어 먹는건 아닐지라도 회가 동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김훈처럼 밥벌이의 지겨움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입구멍에 밥을 넣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숙명처럼 고된 삶도 떠올랐습니다. 그건 동화 속 아치의 알고보면 푸념인, 그러다 볕좋은 날의 공기처럼 가끔은 코미디인 상황도 아니겠죠. 

 역시나 아치는 말미에 뭔가 교훈을 심으려는 강박이 있단 생각이 퍼뜩! 교훈은 저 산 위에 심거라~ (유머야! 유머니까 웃어야지... 미안해요 흑흑) 

 우야됐든 공장의 시계는 돌고 돌아 아치는 퇴근을 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옆에서 괜찮아, 잘 하고 있어. 에구 애쓴다며 말해준다면 아치는 그 분에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뱃살의 비밀을 알려줄 수 있을텐데란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습니다. 그런건 알 필요 없다고 하신다면 배게에 얼굴을 처박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어리석은 애교를 부릴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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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2-0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요새는 서울에 적을 두고 계시는지요? ^^

Arch 2009-02-04 00:04   좋아요 0 | URL
ㅋㅋ 네, 저 여기서 막 딴지 유머 생각 났는데 안 하려구요. 좀 뻔해서.

2009-02-04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2-04 00:36   좋아요 0 | URL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