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경우이다. 그런 상황은 그것이 내포하는 심리적인 만족감이나 그 파생 작용에 의해 내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사랑받지 못한 채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서 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 불행의 몸짓조차 되찾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이 불행의 능동적인 행위자는 바로 나 자신이며, 그리하여 나는 동시에 자신이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173p 동일시 현상

 이 한 구절을 적어놓고 한 달이 지났다. 다시 책을 뒤에서부터 읽기 시작해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었나 싶게 새로운 구절을 마주할 때마다 이 책을 감히 도서모임의 선정도서 후보로 올린 똥배짱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럼에도 읽어내려가는 구절마다 다시 생생하게 다가오는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쓴다,
이건 곧 사랑한다란 말과 같다.
나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견디니까.

 자기 계발서의 변종인 연애 계발서의 최대 장점은 공감 능력이다. 그 이상은 없고 그 이하의 경계 아래에서 발버둥치는 것 뿐이다. 가끔씩 주는 위로 말고는 연애 계발서는 왜 내가 사랑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는지, 대체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연애의 잔기술과 어떻게 하면 케이스별로 연애 강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식의 것들이 먹힐 수 있는지에 대한 지루하고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생생한 날것 그대로의 싱싱함까지 바라는건 무리지만 레토르트 식품의 겉봉을 뜯어놓은 채 판매하는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처음 구절로 돌아가자면 아마도 일반적인 연애서라면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선택해야한다는 둥의 흰소리를 늘어놓을게 뻔하다. 하지만 바르트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게 나를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의 맘 덕분에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의 질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피해자인 다른 누군가의 처참한 모습이 곧 나이고, 그런 면에서 자신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모든 입장에서 고통을 받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책 속에 자신을 대입시켜 자신의 일인 것처럼 환호하는 작자들을 무지하다고 했지만, 난 이 구절에서 정녕 내가 봐버린, 사랑이란 권력관계의 모순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건 공감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정확한 인식이었고, 전부는 아니었지만 전부일 것처럼 번들거리는 예민함이었다.

 살갗이 벗겨진, 지극히 가벼운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는 사랑하는 사람의 특이한 감수성. ... 사랑에 관한 한 그것은 살갗이 벗겨진 사람이지, 깃털로 감싸인 사람이 아니다. 127p 
  나를 감싸고 있는 깃털들은 나를 따뜻하게 보호할망정 날 수 있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차라리 살갗이 벗겨진대로 고통에 찢겨지고, 상처가 아물새도 없이 다시 살갗이 벗겨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데도 애무를 받을 때면 되살아나는 살갗에 환호한다. 그 짧은, 마약 같은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을 쓰라린채로 지내야한다. 살갗이 벗겨진 상태는 곧 익숙해져 이젠 자신이 그토록 각성없이 무감각하다는 것조차 느끼질 못한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61p 기다림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으면 기다리기를 멈춰야하는데도 나는 붙박힌 듯 의자에 파묻혀 그를 기다린다. 그를 기다리며 바르트처럼 걱정과 슬픔 분노와 좌절을 경험한다. 나는 기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걸 알았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능동적으로 기다림을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게 아니다. 아, 이런 단언조차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약간의 금지와 많은 유희, 욕망을 가르쳐주고 그 다음에는 내버려두는. 마치 당신에게 길은 가리켜주지만, 같이 따라나서겠다고 고집부리지 않는 저 친절한 원주민들처럼. 184p "누구를 원해야 할지 가르쳐 주세요"
 그는 나를 가만히 놔둔다. 그는 자신의 일상의 테두리를 지키며 나를 만난다. 그는 나에게 관계의 중독성을 심어준 후 마치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우리 사이를 관망한다. 그는 저 친절한 원주민들처럼 계속 친절하기만 할 것이다.

 기호: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려거나, 혹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을 때면, 어떤 확실한 기호 체계도 수중에 갖지 못한다. 기호의 불확실성 286p
 그는 말하지 않는다. 사랑을 말하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도 않는다. 나는 그의 행동이나 표정, 어투, 그가 하는 말을 죄다 도마에 올려놓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말은 처참하게 해지고 너저분해지지만 내가 원하는 어떤 기호도 발견할 수가 없다. 오로지 나를 향해 웃어주는 순간에 감격해 기호들을 내려놓고 잠시 동안 안정을 취한다. 잠시 후 나는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맹렬함으로 기호를 분석하고, 나를 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바르트의 단상들은 나와, 나의 경험, 내가 했던 연애와 하고 있는 연애, 앞으로 할 연애, '어쩌면 사랑'에 대한 풍부한 담론을 제공한다. 사랑의 단상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텍스트를 바탕으로 바르트가 강연했던 것을 묶은 책이다. 하지만 베르테르의 소스에서 시작해 바르트의 시각을 풀어놓았다는 편이 책에 대한 설명에 더 근접할 것이다. 바르트의 단상을 바탕으로 나 역시 서툰 해석을 시도해보았다. 이건 순전히 사랑의 단상의 저열한 리뷰에 불과하다는걸 아마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리뷰는 책을 위한 한편의 헌사가 아닌, 이런 너저분한 리뷰를 읽느라 버린 눈을 책으로 보상해버리고 싶은, 정말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동기부여의 목적이 큰 리뷰가 되겠다.(갖다 붙이기는)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내 경우에는 바르트의 유머가 한몫 했다고 본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피로, 사랑하는 사람의 피로는 어떤 문학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사랑을 하는데 피로하다니. 그런데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피로 앞에서 이토록 무기력해지는건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것에서부터 사랑의 광기에 빠진 사람을 그 누구도 구해줄 생각이 없다는 것, 난 널 사랑해란 말에 대응하는 대답없음에서 느껴지는 절망까지. 절망스럽지만 그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유머로 봐버리는건 잔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텍스트일 뿐인 책을 비통하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의 내면화라는 과오를 저질러버리는걸. 유머 코드는 책의 진도뿐 아니라 책과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대안이 아닌 필수였다.

 바르트는 고통을 예감하고 그보다 더한건 없을거란걸 느끼지만 자신이 광기에서 벗어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찰나적인 감각이 자신에게 주는 최대치의 도취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아직까지는 내 것만이 아닌 다정함에도 명랑한 강아지처럼 급하게 꼬리를 흔들거란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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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6 1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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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6 2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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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7 0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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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7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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