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사무실에 합류하게 된 분은 해비스모커이다. 어련히 알아서 분위기 타겠구나 싶었는데 난데없이 시국선언을 하듯 '아, 어떻게 비흡연자가 있는데 담배를 펴.' 이러면서 담배를 필 때마다 밖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다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뭐 굳이 본인 의지가 그렇다면 그래라 싶어 들락날락 대는걸 보길 며칠째.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칭찬하지도 않고, 내가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자, 그는 은근슬쩍 사무실에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따뜻한 사무실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는게 오죽 좋아? 맞은편에 앉은 나한테 연기를 안 가게 한다며 손을 휘젓고 그야말로 쌩쑈를 부리긴 하지만 차라리 말이라도 말지 싶었다. 멀쩡한 사람이 실없어 지는건 순간이라네, 영영 영원이라네.

 비흡연자가 있는 곳에서의 흡연을 문제삼으려는 페이퍼는 아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 역시 내가 담배 냄새 안 맡고 싶은 권리를 무기력하게 내놓았던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굳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낸건 새로 온 그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만 상황을 바꾸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신이 바라고 희망하는대로 움직이고 살기에는 너무 많은 유혹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서재에 들락날락대며 알라디너가 쏟아내는 글을 보고, 그들의 분노와 슬픔과 희망을 본다. 혼자 힘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몇번씩 고민하게 되는 것도 서재에서 말을 내뱉는 순간, 서재 의무감이 발동돼 기어코 해내게 되고, 머릿 속이 띵한채 이건 좀 피하고 싶단 생각이 뭉글뭉글대다 고민을 거듭해 입장을 정할때까지 서재는 내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누군가가 속닥거리며 충동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분위기를 정치적인 의제로 몰고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나은 입장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서재 종교 선포인 듯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서재의 모든 사람이 다 선하고, 다른 곳보다 온순하고 논쟁에 있어서 유달리 진정성을 보이고, 감성이 남다르다는 얘기는 아니다.(물론 그런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굳이 흠집내려고 아득아득 말을 늘어놓거나(그랬던 분이 있긴 했다.) 나, 이렇게 멋진 사람인데 부럽지라며 허풍을 떨거나(내가 가끔 이러긴 한다.) 혼자서 아주 뛰어난 선지자인양 행세하는 사람이 드물다.(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간에 합의되는 선의와 유머, 서재만의 독특한 선의경쟁 댓글들, 정말 서재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따로 대놓고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수저 몇벌까지 아는 사이들이 몇몇 있는 관계. 인터넷 공간에서 이럴 수 있는데 봤어?란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이런 암묵적인 합의와 알게 모르게 추구하게 되는 지향점이 서재의 색깔을 입혔단 얘기이다.  

 물론 이런 색깔의 문제는 전에 바람구두님도 얘기했듯이 너무 착해서 탈인 경우와(제대로 된 맥락과 사용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딱히 어떤 입장을 대변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유형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계층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착한 것이 문제될 때는 한차례의 논쟁으로 대거 탈퇴의 아픔이 생기는 것과 서로 너무 좋은 말을 하기 때문에 지적이든 정서적이든(성적인 것도!) 자극의 수위가 일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계층성의 문제는 알라디너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다른 이야기가 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배타성이 있긴하다. 내가 몇년 동안 서재 주위를 맴돌다 망설이며 서재 문을 연 것도 혹시나 나의 뻘글이 배척당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예민한 감각과 날것을 그대로 봐주지 않을 것이란 예감도 한몫했다. 이제서야 그게 순전히 (뒷집 총각 뒤태보고 두근거리는 가슴, 어쩌고 하려고 했는데... 미안, 달리 에드리브가 생각이 안 난다.)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그리고 서재의 역사를 차곡차곡 써내려간 분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다양성의 차원에서 내 얘기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신선한 자극이 될지 방귀냄새가 될지 곪아터진 고름이 될지는 차후의 문제겠지만. 

 이래서 알라딘이 좋아요, 이거 쓰려다가 개뿔! 잠도 못자고 파닥파닥. 

 서재를 너무 드나들어 안 되겠단 생각에 언젠가는 하룻동안 한번도 서재를 클릭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뉴스를 봐도 흥이고, 알라딘에 들어와도 할게 없는거다. 책이 그렇게 좋다고 떠들고 다녔으면서도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데도 관심이 안 갔다. 하루 금지령의 족쇄를 풀자, 서재가 얼마나 반갑던지. 실체라도 있다면 뽀뽀라도 해주련만.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내게있어 서재는, 언제나 그전 이상의 반가움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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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06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랑스런 글쟁이 아치님 같으니라고.. ㅎㅎ

Arch 2009-02-07 01:28   좋아요 0 | URL
사랑 좀 받고 싶다요.^^ 아 구질거려... ㅎㅎ

2009-02-06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