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처음은 손잡기.


 섹스보다 손잡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건 이게 첫 접촉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의 독특한 떨림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접촉면이 넓은 섹스가 전면적이라면 약간의 망설임 끝에 손을 잡는 건 그것대로 감질맛이 나니까. 사실 손잡는 것만큼 설레임을 주는 행위가 또 있을까.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있긴해. 왜 맛있는걸 눈 앞에 놓고 봤을 때가 있잖아.

 섹스는 설레임보다는 상징적으로 정욕에 바탕을 두고, 일체감도 사실 섹스에 담긴 함의만큼이나 다양해서 어느 지점의 행위인지를 정의내리기 어렵잖아. 하지만 손잡는건 그 자체로 유연한 시작을 의미해. 시작 후 뭘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구강으로 모스 부호를 두드려대던 사이에서 '자, 이제 시작이에요'를 알리는 기호로서 손잡기만한게 있을까란 생각도 들어. 다만, '어쩌면 섹스'가 확정된 후 잡는 손은 좀 민망하지만.


 그런 다음엔 포옹이 있을테고. 포옹겸 키스, 살갗을 어루만짐. 손으로 톡톡 주물주물. 민감한 부위에 집중된 자극 행위. 인터코스가 최종은 아니겠지만 통상적인 성적인 행위에 비춰볼 때 제일 마지막을 차지하는걸로 볼 수도 있겠지. 처음에 한번도 섹스를 해보지 않았을 때는 수순의 개념도 없이 '어쩌면 섹스'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는데 지금은 아냐. 오히려 이렇게 순서를 밟는 것이 좀 어색해지더라.. 앞서 말했듯이 섹스를 하기로 한 후 이제껏 옷깃 한번 스치지도 않았는데 덥석, 이게 뭐야 싶게 손을 잡는 것 만큼이나.


 뻔하잖아.


 으슥한 곳을 찾는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차에 좀 더 있자고 한다, 볼만한 영화가 없는데도 굳이 DVD방을 가자고 한다, 멀쩡하게 잘 걷고 있는데 술에 취한 것 같다며 부축을 해준다, 그만 먹겠다는대도 굳이 또 술을 먹자 등등. 이런 행위 속에 담겨있는 스킨쉽의 의지는 사실 좀 낯 뜨거워. 정말, 순전히 부축과 별다른 의미 없는 영화감상에 불과할 경우도 물론 있지. 하지만 대개의 경우, 30살이 넘도록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 쑥맥이 아니고서야 알게 모르게 체득해온 것들이 속속 배어나오는 상투성은 그냥 섹스나 하죠란 말만큼 충분히 멋이 없어.


 섹스가 아무것도 아닌건 아니란 물음 근처에서 그동안 꽤 여러 가지 생각을 해온게 사실이야.


 야야툰에 보면 많이들 하는 체위로 섹스를 하다가 여자가 위에서, 페티쉬를 강조하는 장면, SM 역할극, 2:1등등 소위 말하는 변태적인 것의 범위를 넘나들다 평범한 체위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와. 섹스보다는 손잡기, 쌉싸름한 키스, 가슴팍의 온도까지 전해지는 포옹.

 어쩌면 순서는 정하기 나름이고, 특별한 룰은 없는건지도 모르겠어. 모든건 그렇게 돌고 도는거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의 섹스가 너무 좋다고, 진도가 느리다고, 혹은 이런저런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직경을 포함한 감정 문제에 대해.


 한때 '그 포옹'이 너무 좋아 만나던 친구에게 으스러지게 안아봐란 부탁을 한적이 있어. 한동안 등뼈가 흐물거려 반쯤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없이 웃어보일 정도로 그 느낌, 꽤 괜찮았어. 이젠 등뼈가 의자에 기댈 때나 '저, 여기 있어요.'라며 생각지도 않은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지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뽀뽀가 하고 싶은 당신에게 내 입술에선 츄파춥스 바닐라 냄새가 난단걸 알려주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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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뽀뽀가 하고 싶은 당신, 누구일까? ^^
어디를 가도 자가용 타고 휭~ 가는 세상이라, 어제밤 남편과 영화보고 내려오며 잡은 손은 황홀한 느낌이었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2-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첫사랑과 처음 손을 잡은 날인거 같아요.. 늘 친구로 있다 열몇이 서로 되어서 처음으로 남자로 여자로 손을 꼭 잡았을때.. 가슴이 터질 것 같았죠.. 아 연애를 해야할 거 같은데요 이포스트를 보니~

Arch 2009-02-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비밀비밀^^!!
다들 스킨쉽의 추억이 있는거였어요. 게다가 황홀까지야~

휘모리님, 저도 굳이 최초의 짜릿을 대라면 손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구름다리할때였어요. 그건 아주 나중에 얘기할 것 같아요. 으음~ 꼬옥 연애를 하세요! 나한테 하는 소리였나? 잘 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09-02-08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금 느렸어요.
사실 저는 뭐든 남들보다 느리긴 해요.
어쨌든.

스물두살때 처음으로 남자와 손을 잡아 보았어요. 아주 뻔하게. 저를 집으로 바래다주던 차 안에서.
떨리는 마음에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샤워를 하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요. 손 잡았던걸 생각하자 허벅지가 후들후들 떨리고, 온 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리더라구요. 손을 잡는 행위에는 섹스보다 더 강한 떨림이 있는 것 같아요.


손 잡고 싶어지는 밤이에요. Arch님의 페이퍼 때문에.

Arch 2009-02-08 00:39   좋아요 0 | URL
덥석, 주물주물.
뻔한거 아닌데, 아차차 내가 뻔하다고 했구나. ㅋ 미안!
그런데 뻔한거 아니에요. 뻔하다고 쓴건 별 수 없는 거라서...

으응, 본격적인 처음같은 것? 손잡는건 아직 그래요.

다락방 2009-02-08 00:44   좋아요 0 | URL
Arch님이 뻔하다고 한게 아니라 제가 뻔하다고 생각한거예요. 그땐 내가 너무 순진해서 뻔한 수법에 넘어갔어, 하고 말이죠. 하핫.

어떻게 잡았냐고 하면 너무 뻔하고 뻔해서 말하기가 부끄럽거든요. ㅎㅎ

Arch 2009-02-08 01:03   좋아요 0 | URL
뭐 얼마나 특별한 방식이 있겠어요. 저는 여전히 순진해서 뻔한 수법을 즐겨 사용하며 즐거히 응한답니다. 제 자랑은 아니고 제가 좀 순진하다는게 흠이랄까.
아, 미안미안. 나 내일 후회할 댓글 달고 있어!!

그런데도 집요하게 과연 '어떻게' 잡았느냐가 궁금해지는 밤이어요.
실은 궁금하지 않았는데 굳이 말 안한다고 하니 금지가 금지를 낳는 태고적 얘기처럼 사정없이 급궁금해졌어요.

다락방 2009-02-09 08:41   좋아요 0 | URL
뒤늦게,

스물두살때 처음으로 남자와 손을 잡아보았다는 저 위의 제 고백(?)을 보니 급 부끄러워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