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표지, 간혹 보이는 실용팁 말고는 재미 없었던 '낭만적 밥벌이'에서 천사가 골라줬다는 CD의 음악을 듣고 있는데 이 음악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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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12-05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좋네요. 영화같기도 한데.. 마지막에 여자애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ㅠㅠ 어느 영화인지 알아요?

Arch 2010-12-06 13:30   좋아요 0 | URL
물론 모르죠~ ^^저도 노래 찾아서 듣다가 건진거라... 뽀님 웃는 모습도 예뻐요!
 

 

 하루 쉬었다. 해가 잘 드는 방에서 뒹글거리며 책도 보고, 과자도 먹으며 놀았다. 허리가 아프면 책상 앞에 앉아 이면지에 끄적끄적거리기도 했다. 눈이 침침해지면 다시 자고, 또 잤다. 그렇게 지내는 휴일은 너무 달콤했다.

 A가 방으로 들어설때만 해도 나는 나름 야무진 생각을 했다. 자는 나를 놀래켜줄라고 하나보다, 그래서 내가 한술 더 떠서 ‘왁’하고 놀래켜야겠다란 계획까지 세웠더랬다. A가 가까이 다가오길래 왁하며 번쩍 일어섰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A에게도 이 도시가 낯설었다. A는 직장에서 생긴 일을 얘기하며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제도 어제도 들었던 얘기였다.

 달콤한 사탕을 물고 있는데 누군가 뒷통수를 쳐서 사탕이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다음달엔 방세를 내야하고, 그동안 우리가 계획했던 일들이 있는데. A는 왜 일을 잘 못해서 나까지 걱정을 시킬까 싶은 미덥지 못한 맘과 그 몇 배의 가책이 밀려왔다. 말을 하던 A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다시 일어났다.

 삶을 대할 때 네비게이션처럼 확신에 찬 태도가 싫다고 했지만 나 역시 사는 게 정답을 맞춰야하는 시험지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내가 적은 답이 틀릴 것 같으면 조바심을 내고, 내 생각만큼 점수가 안 나왔다며 툴툴댔다. 사는건 시험지에 있는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시험 문제는 커녕 답도 없는 과정이란걸 몰랐을까. A는 내게 생활비 걱정을 시키고,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려는게 아니었다. 그저 잠시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동안 난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어쩌면 내 잘못이 더 컸을 일들을 놓고 점수가 잘 안 나왔다며 떼를 써왔다.

 A를 토닥이며 A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이 너무 순해보여서 사람들이 덤비는거라면서 인상쓰는 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내가 능력이 되니까 정 힘들면 쉬고 싶을만큼 쉬라고 말해줬다. A는 아치 허풍에 감지덕지하는 대신 인상을 어떻게 써야 먹히겠냐며 인상파인 아치의 조언을 구했다.

 A가 나가고 나자, 잠도 달아났다. 후다닥 일어나 내복에 츄리닝을 입었다.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선 자전거를 탔다. 30분 거리에 있는 시장에서 A의 모자를 사고, 겨울 내내 몸을 따뜻하게 해줄 감초를 샀다. 할머니께서 손수 손질하신 파릇한 시금치와 너무 맛있어서 자꾸 오게 될거라고 장담한게 꼭 들어맞는 맛난 젓갈을 샀다. 그리고 그 날 우리는 흑미를 넣은 밥의 밥 냄새를 아주 오래오래 맡으며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갈색의 쌀알이 점점이 박힌 흑미보다 조금 더 비싼 새까만 흑미를 보고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얘는 왜 조금 비싸요? 더 맛있나? 둘 다 국산인데. 품종이 달라요?”
 할머니는 아주 까만 흑미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더 이쁘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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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9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292218355&code=940202 

 이 기사를 보고 돈이면 다 되냐란 너무 뻔한 생각이 떠올랐다. 대체 최철원씨는 어떤 정신 세계를 갖고 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걸까. MBC 자료 영상 캡쳐를 통해 본 피해자가 구타당한 흔적은 참혹했다. 돈 없는 사람은 그렇게 당해도 되는걸까, 돈 없는 노동자는 매값을 받고 순순히 자기 직장을 떠나야 되는건가, 그런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사는걸까.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그 치기는 억지스러웠지만 입장 바꿔 나도 부자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한적이 있다. 어떤 드라마에서 나온 재벌 아가씨는 자기들은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했다. 공부하러 유학가면 도피 유학이라고 하고, 몸이 안 좋아 군대를 안 가면 불법적인 군면제라고 오해한다며 부자인게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냐란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금태섭 변호사의 '디케의 눈'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사건의 진실이란 디케의 가려진 눈처럼 손쉽게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특권층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보다 사회적 약자만 피해자란 결론을 내린다고 말이다.

 부자에 대한 편견이 문제일까, 가난한 사람의 콤플렉스가 문제일까, 그런데 왜 가난한게 콤플렉스지? 좋은 부자란 듣기 좋은 수식어에 불과한걸까, 혹시 이건 '부자는 이렇고, 가난한 사람은 이렇다'란 정의를 내리고 싶어하는 편리한 방식 때문은 아닐까. 물론 이번 사건은 어떤 계층을 이해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아니다. 계급성에서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계급대로만 행동하는 사람도 없을테니까. 단지 비상식적인 행동도 돈이면 용인될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적 사고와 권위주의에 일방적으로 순응하느라 방관한 직업인들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단지 양복을 입고 있어서 노동자가 아니란 환상을 품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신자유주의는 그들의 순진함을 비웃을 것이다.

 피해자 유씨가 고용승계 문제로 시위를 했을 때나 좀 더 넓게 보면 인수합병 과정에서 돈보다 부차적으로 취급되는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가 발생할 때도 신자유주의의 정체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적이 없다. 뭔가 그럴 듯한 직함의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니까 그들 일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물론 나와는 별처럼 멀리 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기호의 '아무도 남을 돕지 마라'를 읽기 전에는.

 살기가 팍팍하고, 비정규직이라 초과 근무를 해야만 방세를 내고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게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재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죽을둥 살둥 노력을 안 해서라고 믿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모든 판이 짜여진거라면? 

 








 신자유주의 안에서 부는 절대적인 가치가 됐다. 여기선 성실하게 일해 돈을 버는게 미덕이 아니라 얼만큼 빨리 자본금을 모아 제대로 굴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됐다. 국가 차원의 개입을 통해 사회적 기반을 마련한 선진국들이 사다리를 걷어찬 후 벌어진 개방의 결과는 분명해졌다. 가진자들이 지닌 전방위적인 통신망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마련하는 대신 부를 찬양하고, 가난한건 비루하단 고정관념을 세뇌시켰다. 그래서 나처럼 몸뚱이 하나로 살아야하는 사람들이 비빌 언덕은 아직 병들지 않은 몸이 다다. 그 몸뚱이에 가한 폭력은 하루 밥벌이에 급급하고, 분수도 모르고 계급을 이해해보겠다고 설쳤던 나조차 참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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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버스는 쉴 만큼 쉬고, 사람들이 탈만큼 타자 다시 사람들을 태워 내소사로 향했다.

 속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골 버스를 권한다. 하루에 몇 대 밖에 없는 버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굽이굽이 돌아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도착한 것만으로 감지덕지, 황송한 맘이 생길 것이다. 도착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한 시간,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그 사이에 어떤 얼굴을 스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켜켜이 쟁여놓을 수 있는 순간들이 중요해질테니까.

 

 정시에 도착하는 전철과 버스에 익숙해진 생활은 문득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횡단기의 한 부분을 생각나게 한다. 정작 길을 가르쳐주는 표지판 대신 자잘한 샛길 표지판만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는 잔뜩 벼린 목소리를 듣는다. '지금 안전벨트는 맸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까, 양치질은 했습니까.' 

 내비게이션이 별로인 건 전원이 들어오고, 목적지만 명확하다면 어디서 길을 잃어버렸던간에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그 자신만만함에 있다. 삶은 그다지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시골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처럼 원치 않지만 돌아서 가야하거나 쏟아지는 햇볕을 막아줄만한 그늘막 하나 없어 내리쬐는 볕을 온몸으로 맞아야할 때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삶은 막연하고 고단하지만 언젠간 목적지에 도달한단 가없는 희망으로 이뤄지는건 아닐까.  
 
 내소사에는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온 전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안내 책자만큼 멋지진 않았다. 석가탄신일 즈음이라 입구와 절 주변은 사람들로 바글댔다. 옥찌들 어때, 나쁘진 않네. 이렇게 말하는건 어디서 배운걸까. 산채 비빔밥과 백합죽으로 장사진을 치는 식당을 지나 전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내소사에 들르기 전에 맨발로 지압을 하는 곳을 지났다. 동그란 돌들이 깔린 곳에서 옥찌들은 한참 동안 깔깔대며 놀았다. 절로 들어갈거 뭐 있냐고 여기서 머물자고 하는걸 설득하느라 애 좀 썼다. 아이들은 동그랗게 굴릴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너무 너무 뻔하고 별다를게 없는데도 좋은가보다.

 산 냄새가 좋다. 피톤치드 운운하는건 얍삽하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 틈 사이로 해가 비친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논밭 풍경에 심심했는데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온 보람이 있었다. 

 내소사 개천에 빠진 지민이 옷을 말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격포로 갔다. 바지락죽 사진만 보고 저게 꼭 먹고 싶다며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던 지희의 눈, 잘게 다져진 조갯살이 촘촘히 박힌 바지락죽의 맛, 버스도 좋지만 아이들이랑 다닐 땐 차를 몰면 더 편하겠단 비릿한 생각, 민박집에서 일박을 포기하고 아이들이랑 묵은 찜질방의 황토 냄새, 저녁과 아침에 먹은 찜질방 미역국, 낡은 버스 터미널 보도블럭의 질감, 비 온다고 코끝까지 물기로 팽팽해진 그런 여행, 여행이 끝난 후 가족들은 심히 궁금한 표정으로 나와 옥찌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우린 이게 좋았어요, 저게 좋았어요 대신 슬몃 웃으며 여행을 마쳤다. 

이렇게 대책 없이 떠나도 되는구나,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다시 날 풀리면 떠나야지.


오랜만에 민 사진 올린 기념으로  하나 더, 
오랜만에 접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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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1-28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뾰루퉁해졌네! 달래줬어요? 응?

Arch 2010-11-29 15:08   좋아요 0 | URL
귀여워서 그냥 놔뒀어요.

2010-11-29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9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이 힘든건 아니다. 회사에선 내가 그만두지 못할 정도의 월급을 준다, 풍요롭기까지 한건 아니지만 너무 박하다고 할 수 없는 정말 딱 그만큼의 돈. 더 잘하고 싶은 의욕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지루하고 피곤한 일. 그게 다다. 늦게까지 회사에 붙어 있다가 집으로 가기 전이면 꼭 맥주 몇 잔을 먹어야 개운하다. 집에 와선 바로 곯아 떨어지는데 옆자리에 누운 사람의 말로는 내가 잠에 빠지면 개가 물어가도 꿈쩍 안 할 것 같단다. 가끔씩 멍해진다. 때때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까먹는다. 일하는 사람들과 아직 잘 안 맞아서일까, 향수병일까, 아니면 너,무,오,래, 일하는걸까.

 하루 종일 고객의 전화를 받으며 되먹지 않은 통신 상품을 팔 때도 괜찮았다. 추운 겨울에 아무도 없는 곳에 떨어져 덜덜 떨며 나를 태우러 올 차를 기다리는 것도, 내 실적에 따라 차갑게 변한 사람들의 태도를 견디는 것도, 눈치 봐가며 라면을 끓여먹고 말할 때마다 잔소리를 한바가지씩 얻어먹는 것도, 다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허리고 저렸던 것도,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느라 인간적이기보다는 자기 기능을 하는 것으로 족한 인간으로 자리를 지킨 것도 괜찮았다. 그 모든 게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럴까. 왜 권태롭다고, 울적하다고, 힘들다고 징징댈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어떻게 된 걸까. 정말 하고 싶었던 게 있었을까. 뭔가를 하고 싶다는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 어쩌면, 어쩌면. 하지만 이젠 그 ‘하고 싶음’에 안부를 구할 수도 없다. 진즉에 현실도피, 채무 불이행 딱지를 붙여버렸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심을 다해서 매달릴 정도로 하고 싶었는지도 의문이다. 

  이곳에는 현상유지하면서 근근히 살아가는 게 목표인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만은 그러지 않을거라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좀 다를거라고 생각해왔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업무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살살 꼬리를 흔드는 짓은 내 적성에 안 맞다고, 어영부영 시간을 축내는건 너무 억울하다고, 퍼즐 조각처럼 제자리를 찾아야만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은 되기 싫다고 줄곧 생각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들만큼 잘해내는 것조차 어려울 따름이다. 월급은 일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실종된 인간성에 대한 일종의 위로금이었다. 
 

 오랜만에 소라닌을 펼쳤다. 예전에 이 만화를 봤을땐 유화 같은 감상평이 떠올랐다. 몽롱한 목소리로 맞아, 나도 그랬어. 아, 돌이켜보니 내 마음도 그랬구나. 덧칠한 물감처럼 감상 또한 덕지덕지 늘어졌다. 그런데 다시 읽은 소라닌은 수채화처럼 투명하다. 덧칠을 해도 계속 밑그림의 연필선까지 보이는 수채화처럼 말이다. 수채화의 투박한 연필선에선 한때나마 꿈꿀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 내겐 ‘없는’ 순간들이 보였다. 

 물론 없어진게 꿈만은 아니다. 이 자리를 박차고 자유롭고 맘 편하게 살려는 의지도 없고, 막상 박차고 나가면 먹고 살 일자리도 없다. 이 일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벅차 다른걸 해볼 엄두도 낼 수 없다. D와 전화 통화를 하다 ‘없다’에 이르러 푸르르 웃고 만 건 그녀 말처럼 정말 없어서였다.

 어린 나이의 유치함과 고지식함, 뜬금없는 유쾌함과 미칠 듯한 열망은 냉동 피자가 상온에서 녹듯 질척거리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단 하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물론 어렸던 나를 뺀 대다수의 사람이 내가 하는 행동, 싹수, 평소에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계급 등등을 포함해서 내가 어떻게 될지 ‘확실히’ 짐작했겠지만- 사실 때문에 그렇게 반짝였던거였다. 그래서 젊은 날은 감자에 생긴 독, 소라닌처럼 아렸던거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감자는 독기가 빠진 채 푸르딩딩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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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1-2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겐 그 모든것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고 좀처럼 일터를 바꾸지 않는것은 내게 그런것-꿈이라든가 열정이라든가 하는-들이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이 직장을 마구 힘들지도 않고 마구 좋지도 않은채로 견뎌낼 수 있는건가봐요. 만약 무언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었다면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져요.
최규석이 [대한민국 원주민]에서 자신은 욕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살기 편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저도 그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던게 전 애초에 욕망 자체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꿈을 실현하는 사람보다도 제게는 꿈을 가진 사람 자체가 더 대단해 보여요. 그들은 대체 꿈을 어떻게 찾았을까?
감자독이라니,

아치는 고구마 키우는 여자사람이잖아요!

Arch 2010-11-28 13:46   좋아요 0 | URL
나도 없는데요. 뭘~

저도 그 구절 기억나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만약 돈이 생긴다면, 혹은 다른 만약에에서 사고 싶은게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더라구요. 욕망이 없는게 아니라 없는척 해왔거나 모른척 했다는걸 알았어요. 꿈이나, 열망, 의지도 마찬가지겠죠. 결국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어느 한쪽을 포기하게 되겠죠.

다락방과 함께라면 왠지 꿈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난 고구마(집을 떠나며 결국 화분에 버려졌지만) 키우는 여자사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