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갈지, 버스를 탈지 정하지 않았다. 시내 버스 시간이 맞으면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가고, 좀 걷고 싶으면 걷다가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우린 여행의 테두리를 이처럼 헐렁하게 그어놓고 출발했다. 옥찌들과 나는 모자를 쓰고, 가방을 짊어졌다. 터미널에서 버스가 많이 다니고 버스를 조금만 기다려도 될만한 장소를 찾아봤다. 부안이 적당했다. 부안에 간다니까 옆에 있던 검표하는 아저씨가 시골 동네에 가서 뭐하냐며 웃으신다. 뭐하긴요, 여행을 한다니까요.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 좋은 건 자기 어디 갔다 왔다고, 무엇을 보고 뭘 먹었는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체득하는 질문과 충족감, 혹은 배반된 기대를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데 있었다.

보통의 책만큼이나 굴러쉬 브런치도 그랬다. 자고로 여행서가 갖어야할 필수적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여행 경로와 맛집, 볼거리는 적당히 원경으로 처리하고 취향과 근사한 대답에 귀를 기울일줄 아는 작가라니. 동유럽을 가고 싶은 맘만큼 그녀답게, 혹은 그답게 여행을 하고 싶은 맘이 더 컸다.
그래서 우리도 여행을 떠났다. 물론 의욕한만큼 잘 해내고, 잘 마쳤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여행이 아니라면, 삶은 언제나 나에게 부당한 업신여김을 당해왔다. 익숙함이 낳은 무례함이란 사생아, 권태, 생계형 짜증, 줄줄이 매달린 의무들,-굴러쉬 브런치 중-) 만만한 마누라에게 온갖 성질을 다 부리는 못난 마초 같은 내게 필요한건 마누라가 아니라 여행일지도.
차를 갖고 간다면 40분 남짓한 거리를 차를 기다리고 만경과 김제까지 거쳐서 가는 바람에 부안에 도착할 때는 거의 점심이 다 됐다. 터미널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에 사람들에게 부안에서 가볼만한데를 물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은 친절하다. 그들은 내게 없는 관대함을 발휘해 아이들이 힘들지 않은 코스까지 자세히 안내해줬다.
곰소는 어때요, 거긴 젓갈 천지지.
모항은요? 차가 별로 안 다녀서.
아이들 데려왔으니까 원숭이 학교 가봐요. 음, 그렇게 왁자지껄한 곳은 싫은데.
떠나기 전에 옥찌들과 약속했다. 너무 많이 걷지 말자고. 나 역시 내 욕심대로 한다고 무리하게 일정을 짜지 않고, 아이들에게 많은걸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서로가 좋아할만한 곳을 가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물원이 싫었다. 동물원 자체의 황폐한 느낌과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싫다. 게다가 원숭이 학교라면 진화의 스파크가 약간 차이 난 덕에 자신들보다 진화된 누군가에게 재롱을 피우는 곳이 아닌가. 영 꺼려졌다.
우선 내소사를 가서 직소 폭포를 보고, 격포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터미널 앞에는 오로지 변산 근방에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차들이 꽤 있었다. 부안의 진면목은 버스 안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금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창문을 열어놓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는 것만큼은 근사했다. 줄포에서 정차한 버스는 다시 출발하는걸 까먹은 듯 아주 오랫동안 쉬었다. 정류장에 내려 마을 개들과 교감하며 그들 생이 복날에서 끝날지 좀 더 지속될지에 대한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버스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버스(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보들레르처럼 소리 지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