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버스는 쉴 만큼 쉬고, 사람들이 탈만큼 타자 다시 사람들을 태워 내소사로 향했다.

 속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골 버스를 권한다. 하루에 몇 대 밖에 없는 버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굽이굽이 돌아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도착한 것만으로 감지덕지, 황송한 맘이 생길 것이다. 도착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한 시간,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그 사이에 어떤 얼굴을 스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켜켜이 쟁여놓을 수 있는 순간들이 중요해질테니까.

 

 정시에 도착하는 전철과 버스에 익숙해진 생활은 문득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횡단기의 한 부분을 생각나게 한다. 정작 길을 가르쳐주는 표지판 대신 자잘한 샛길 표지판만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는 잔뜩 벼린 목소리를 듣는다. '지금 안전벨트는 맸습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까, 양치질은 했습니까.' 

 내비게이션이 별로인 건 전원이 들어오고, 목적지만 명확하다면 어디서 길을 잃어버렸던간에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그 자신만만함에 있다. 삶은 그다지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시골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처럼 원치 않지만 돌아서 가야하거나 쏟아지는 햇볕을 막아줄만한 그늘막 하나 없어 내리쬐는 볕을 온몸으로 맞아야할 때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삶은 막연하고 고단하지만 언젠간 목적지에 도달한단 가없는 희망으로 이뤄지는건 아닐까.  
 
 내소사에는 관광 안내 책자에 나온 전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안내 책자만큼 멋지진 않았다. 석가탄신일 즈음이라 입구와 절 주변은 사람들로 바글댔다. 옥찌들 어때, 나쁘진 않네. 이렇게 말하는건 어디서 배운걸까. 산채 비빔밥과 백합죽으로 장사진을 치는 식당을 지나 전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내소사에 들르기 전에 맨발로 지압을 하는 곳을 지났다. 동그란 돌들이 깔린 곳에서 옥찌들은 한참 동안 깔깔대며 놀았다. 절로 들어갈거 뭐 있냐고 여기서 머물자고 하는걸 설득하느라 애 좀 썼다. 아이들은 동그랗게 굴릴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너무 너무 뻔하고 별다를게 없는데도 좋은가보다.

 산 냄새가 좋다. 피톤치드 운운하는건 얍삽하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 틈 사이로 해가 비친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논밭 풍경에 심심했는데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온 보람이 있었다. 

 내소사 개천에 빠진 지민이 옷을 말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격포로 갔다. 바지락죽 사진만 보고 저게 꼭 먹고 싶다며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던 지희의 눈, 잘게 다져진 조갯살이 촘촘히 박힌 바지락죽의 맛, 버스도 좋지만 아이들이랑 다닐 땐 차를 몰면 더 편하겠단 비릿한 생각, 민박집에서 일박을 포기하고 아이들이랑 묵은 찜질방의 황토 냄새, 저녁과 아침에 먹은 찜질방 미역국, 낡은 버스 터미널 보도블럭의 질감, 비 온다고 코끝까지 물기로 팽팽해진 그런 여행, 여행이 끝난 후 가족들은 심히 궁금한 표정으로 나와 옥찌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우린 이게 좋았어요, 저게 좋았어요 대신 슬몃 웃으며 여행을 마쳤다. 

이렇게 대책 없이 떠나도 되는구나,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다시 날 풀리면 떠나야지.


오랜만에 민 사진 올린 기념으로  하나 더, 
오랜만에 접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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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1-28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뾰루퉁해졌네! 달래줬어요? 응?

Arch 2010-11-29 15:08   좋아요 0 | URL
귀여워서 그냥 놔뒀어요.

2010-11-29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9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