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됨을 후회함 - 모성애 논란과 출산 결정권에 대한 논쟁의 문을 열다
오나 도나스 지음, 송소민 옮김 / 반니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됨을 후회함’이란 책은 아기를 낳고 어떠한 형태로든 후회를 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출산이란 말은 당위의 언어다. 아기를 낳지 않으면 이기적인 여자가 되고 아기 없는 삶은 불완전하다고 여겨진다. 개개인이 처한 삶의 조건은 천차만별이지만 출산에서는 예외가 없다. 게다가 국가가 적극적으로 저출산이 큰 사회문제인냥 선동하니 ‘가임기 여성’의 자리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진다. 행자부의 가임기 지도가 사회적으로 큰 반감을 가져온 것은 비단 생각의 저열함 뿐 만이 아니다.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 경력단절, 사회로부터 소외, 아기 키우기의 어려움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 없이 모든 짐을 여성에게 전가해 버렸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아기를 낳은 후 생기는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아기와 함께 바뀐 삶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당위만 넘칠 뿐 왜 그래야하는지의 고찰은 사라졌다. 아기와 함께 생활하며 부족한 수면시간과 별도리 없이 올인해야 하는 육아, 경력단절과 무질서해진 일상에 대해 말해야 한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모든 게 미지수였는데 낳고난 후에는 ‘해야한다’는 명제만 존재한다. 수유는 어떻게 하고 잠은 어떻게 재우고 놀이는 월령별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해져있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육아의 고충을 위로하고 서로를 지지할 뿐 공식적으로 육아가, 아이가 싫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을 나눈 다음에는 꼭, ‘포기각서’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사랑한다는 말을 붙여야 한다.

 

 

  사랑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밥을 먹는 모양만 봐도 배가 부를만큼, 꼭 안으면 어떻게 될까 세게 안지 못할 정도로 사랑한다. 아기를 사랑하는만큼 육아로 분열된 자아가 혼란스럽다. 이렇게 집에 있다 뒤처지는건 아닐까는 초보적인 단계다. 감정노동의 집약체인 육아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피곤해서 쉬고 싶어도 아기랑 놀고 아기에게 반응해야 한다. 집안일 하는 틈틈이 아기의 안전과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아기가 와다다 다가와 의미 없이 부딪혀서 얼굴이 얼얼해도 괜찮다고 웃어야하고 밥을 잘 먹지 않아도 화를 내면 안 된다. 외출이라도 한번 하려면 바리바리 짐을 챙겨야 한다. 유모차에 잘 앉아있는 날은 매우 드물어 안거나 업어야만 한다. 외출 목적은 흐릿해지고 그저 바깥바람 한번 쐰 것에 만족한다. 아기는 순한 편이고 대체로 떼를 쓰지 않는데도 그렇다.

 

 

  개인적인 고충이 만만치 않은데 사회의 압박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육아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엄마됨’을 강조한다. 아기의 특성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면서 애착관계를 형성하라고 한다. 부모와 관계형성에 따라 아기의 삶의 방향과 질이 달라질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한편으로는 아기 데리고 다니는 엄마를 맘충이라 비하한다. 맘충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하는걸 방치하는 엄마를 일컫는다. 애비충은 어디 있으며 아이들이 맘껏 뛰어놓을 수 있는 장소는 어디 있는지  한심할 뿐이다.

 

 

 어떻게 사회는 태연하게 출산과 육아를 여성이 마땅히 해야할 일로 떠넘겼을까. 비용면에서 이러한 접근은 효율적이었다. 결국 전전긍긍하는 엄마만 남을 뿐 세상은 휙휙 돌아가고 저출생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갈아먹을 노동력이 줄어서 그렇지 저출생이 나쁜 건 자본가와 국가의 입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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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직 무언가로 결정되지 않았을 때, 내 정체성을 밝히기 어려웠을 때. 세상은 늘 물음표였다. 나는 늘 나를 설명해줄 단 한장의 명함을 갖고 싶었다. 미래가 어서 결정되고 모든게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늘 했었다. 그래서 사소한 말, 질문에도 상처받았다. 나도 무언가를 한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아 말로 내뱉기 어려웠다. 그 무언가를 그렇게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고 어서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깊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글이 술술 나왔다.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쓱쓱 술술 글이 나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게 확정적이고 안정적이며 맘까지 편한데 글이 안 써진다.

 

- 선생님, 어떻게해야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나요. 선생님은 세계와 부딪혀야 자신만의 글이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 상태가 괜찮거든요. 아기를 낳고 사는걸 꿈 꾼 건 아니지만 아기를 좋아하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맘이 편안해져요.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세계와 부딪힐 일이 없는거고...

 

- 아치님, 지금 행복한거죠?

 

  선생님은 팔아먹고 팔아먹어도 우물처럼 마르지 않는 상처가 있어야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치유되지 않고 만족감이 없는 잡념 상태, 피가 멈추지 않는 부위 말이다.

 

 그 부위가 예전에는 설명할 수 없는 나였다면 지금은 남들도 나도 정의내릴 수 있는 나로 바뀐걸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나.

 

 순간 정적이 흐르고 아이의 소요와 요구에 귀를 막고 싶은 지점. 지긋지긋하게 내 일이 된 집안일, 병든 아빠를 무시하고 감정을 지워내고 싶을 때,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서 같이 있기 불편한 사람, 안쓰럽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타인, 지방을 축척하는 나의 섹스파트너, 지방의 악습과 폐쇄적인 일처리. 진동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보다 추이를 지켜보고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는 순간.

 

 없는건 아닌데 격렬하게 나를 소진시키며 일말의 쾌락을 가져다줄 무언가가 사라져버렸다. 시덥잖은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지금 상황이 너무 적절한걸까. 그동안 너무 혼란스럽고 괴로웠으니까 이건 나에게 주는 오후 4시의 한가함 정도일까. 그동안 뭐가 고통스러웠나. 그런게 있긴한가. 마르지 않는 상처, 퍼내도 새로 차오르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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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전후로 아기는 말을 알아듣고 걷기 시작하며 이전의 발달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눕거나 기어다닐 때는 공간을 한정적이고 단편적으로 느끼다 걷는 순간 자기 신체의 유능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말을 알아듣고 조금씩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면서 의사소통의 첫 걸음을 뗀다. 이전에는 기저귀를 가져오라고 손짓발짓 동원해야 기저귀의 기쯤 알아듣는 눈치였다면 지금은 ‘기저귀 가져다줘.’라고 하면 어김없이 기저귀를 갖다준다. 어김없이라니,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배밀이를 하다가 기어다니고 앉은 다음에는 서서 가구를 짚고 한발짝씩 걷다 손을 떼고 조심스럽게 걷는걸로 이어졌다. 지난번 할머니댁에 다녀온 후로는 눈에 띄게 잘 걷는다. 방을 가로질러 쭉쭉 걷고 한 바퀴 돌고난 자기 모습에 흡족해 코를 찡긋하며 웃는다. 지금이 제일 사랑스럽다.

 

  아침에 일어나 야무지게 맘마를 먹고 자기가 좋아하는 애들 의자에 태워서 방을 돈 후 유아 텐트에 들어가서 장난감들이랑 논다. 맛의 호불호가 생겨 고구마랑 무 우린 물은 잘 먹는데 무 익힌거랑 심심한 과자는 잘게 부수며 논다. 밥 먹을 때 수저는 자기가 꼭 집어야하고 맘에 든 물건은 뮐 하든 꼭 들고 있어야 한다. 엉성한 반찬도 잘 먹고 방귀도 잘 뀌고 똥도 잘 싼다. 아기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단 말이 은유인줄만 알았는데 잘 먹는 아기를 보면 정말 배가 부르다. 아기가 걷기 시작하면서 집이 지저분해졌다. 두 손이 자유로우니까 물건을 들고 다니다 흥미가 떨어지면 아무데나 놓고 오기 때문이다. 키가 닿는 선반과 식탁 위에 있는 것도 끄집어내서 물건들은 제자리를 벗어나 아기 손이 안 닿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간식을 먹을 때면 동물 인형들에게 일일이 ‘아’를 해서 주고 노래가 나오면 흥을 어쩌지 못한다.

 

  고집이 세져서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거나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지 않으면 밥먹기나 잠자기 등 일상생활이 올스톱된다. 맘에 안 들거나 자기 요구에 즉각 응하지 않으면 꼬집거나 문다. 드러눕는건 어디서 배운건지 수시로 써먹는다. 밖에서 소리가 나면 아빠라고 했는데 엄마도 외출이 잦아지니 음마음마 한다. 치카치카하면 치치티하면서 내 손을 꼭 잡고 화장실로 간다. 어떨 때는 남보다 더 먼 것처럼 나를 대하다 다른 때는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닌다. 외출한다고 옷을 갖고 방에서 나오면 희안한 소리를 내며 웃으면서 신이난다. 볼펜 뚜껑도 열 줄 알고 컵 맞추기도 잘한다. 전화기가 있으면 전화기로, 전화기가 없으면 손등을 귀에 대고 전화를 한다. 손수건이 보이면 방을 닦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볼 일 끝나면 늦게 일어난 엄마 덧신 챙겨다주고 맘맘맘마 한다.

 

  볼살이 통통해서 모찌모찌하고 손을 휘적거리며 웃을 때도 좋았다. 그런데 유독 지금이 더 사랑스럽다. 지금은 아기가 고집을 피우기 시작해서 아기와 협상을 하고 설득도 하고 때로는 내가 권위적으로 굴 때도 있다. 눈물도 잦고 짜증도 잘 피우는데 왜 지금이 더 사랑스러울까. 아기를 좋아하는 맘은 하루하루 업데이트 되니까 하루의 좋아함 총량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걸까. 그런데 내 맘은 왜 이렇게 몽실몽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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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기본 10권 이상씩 읽는 것 같다. 아니아니, 열번. 10권이면 질리지 않을텐데 같은 책을 앉은자리에서 계속 읽자니 목도 아프고 입이 마른다. 종이 동화책은 열심히 찢길래 보드북을 몇권 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옥찌들이 읽던 책을 딸에게 읽어주는게 신기하다. 잘 만든 동화는 그 자체로 좋은데 입으로 소리내어 읽고 아기의 반응도 살필 수 있어 오감 만족?이 된달까.

 

 

 

 

 

 

 하야시 아키코는 유아 그림책을 정말 잘 짓는다. 종이책을 거의 찢어서 보드북으로 샀는데 지금보다 개월수가 적었을 때보다 지금 더 잘 본다. 예전에 이 책의 리뷰에서 아기들이 달님 나오면 방긋 웃고 구름 아저씨 나오면 인상 쓴다고 해서 설마, 이랬는데 딸이 그런다. 달님 안녕, 하면 고개를 꾸벅거리거나 손을 흔들며 웃는데 구름 아저씨 나오면 인상 쓰면서 구름 아저씨 걷어내려고 손으로 구름을 잡으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두권. 손이 나왔네를 몇번 본 후로는 옷을 입을 때 손이 쑥 나왔네, 하면 신이 나서 손을 쭉쭉 잘 뻗는다. 읽을 때도 쑤욱을 강조하고 영차영차에 리듬을 넣으면 까르르 웃는다. 하, 웃음소리 때문에 더 오버하고 나중에는 내 오버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구두 구두 걸어라를 읽을 때는 아기를 안고 발로 같이 걷는다. 구두가 깡총깡총 뛰다 넘어지면 같이 넘어지고 일어날 때 슬로우모션으로 조금씩 일어나면 그걸 또 좋아한다. 엄마가 힘들어하는걸. 하.

 

 

 

 

 

 

 

 까꿍놀이의 베스트북. 동물들이 무척 익살맞고 그림체도 간결하다. 예전에는 이 책만 계속 읽었는데 요새는 좀 시들하다. 벌써 까꿍할 나이를 지난거야. 지금은 자기가 숨고 알아서 까꿍하는게 더 재미있나보다.

 

 

 

 

 

 아기들은 실물을 명확한 사진으로 보는게 좋다고 하는데 그런 그림책은 구성이나 이야기가 후줄근하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기다렸다는 듯) 도서관 책 보면 진짜 개똥같은 동화책이 너무 많다. 특히 유아 대상 책은 민망할 정도로 짜임새가 없거나 만듦새가 엉성하다. 초점 책이라고 검정과 흰색만 나열해놓거나 강제 교훈을 주입하고 그림도 너무 대충이라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책들이 너무 많다. 숲속 친구들 잔치라면서 개랑 고양이 나오는건 애교 수준이고 이야기도 너무 고리타분하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 비룡소나 보림, 보리 출판사의 책을 주로 고르게 된다. 

 

 보리 세밀화 시리즈는 알고만 있었는데 이번에 몇권 사고 빌려서 보는데 아기가 좋아한다. 과연 좋아할까였는데 부드러운 그림체와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몇번을 읽어도 재미있다. 특히 '나도 태워줘'와 '엄마엄마'를 많이 읽어주는데 나도 태워줘에서 마지막에 소가 음머하고 내가 태워줄게할 때를 제일 좋아한다. 엄마랑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서 소가 밀고 다른 동물들도 신나서 같이 가는 장면은 다정하다. 아기는 곡식이랑 야채 나오는 그림을 보면 먹는 시늉을 한다. 보리 짱이다.

 

 

 

 

 

 

 옥찌들 동화책 고르려고 제일 많이 드나들었던 곳은 K님과 N님 서재였다. N님은 나중에 옥찌들이 좀 더 컸을 때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K님은 작가였는데 동화책 리뷰도 많이 해서 덕분에 숨겨진 보물같은 (상투적인지만) 책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제 숨겨진 것까지는 아니지만 색감이 무척 예쁜 책들. 아, K님 덕분에 보림 출판사를 좋아하게됐지, 기억이 새록새록한게 맞나, 내 기억 맞는건가. 아기보다 엄마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인데 옥찌들이 다 찢어서 새로 샀는데 이번엔 딸이 그렇게 찢는다. '야옹이~' 책은 아기들이 찢고 싶은 책인가. 그때 읽었을 때도 뭉클했는데 지금 읽으니 새삼스레 좋다. '나의 크레용'은 아기가 인지력이 좀 더 자라면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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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채 비빔밥과 참나무 장작 목살구이를 시켰다. 집에서는 거의 고기를 안 먹는데 나와서는 고기 탄 냄새를 지나치기 어렵다. 가져간 현미차를 한모금 마시자 음식이 나왔다. 잘게 썰린 나물을 큰 대접에 조금씩 덜어 젓가락으로 슬슬 비볐다. 아기는 나물을 덥석덥석 잘 받아먹는다. h는 생마늘을 입에 넣으며 고기를 우겨넣는다. 비빔밥은 끌어당기는 맛이 없고 목살은 그을린 맛이 났다. 

 

 한떼의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는다. 군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 둘, 나이든 여자 남자. 부산스럽게 이곳이 맛집이라며 열심히 주문을 한다. 다섯이 먹기에는 많은 양을 시킨 후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근황을 묻는다. 군대 버거를 먹어봤느냐는 여자들의 질문. 우리 때는 3년이나 있었는데 지금은 갈만하지란 늙은 남자의 거드름. 늙은 남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활달하게 이야기를 했다. '즐거운 나의 집'에 어울릴만한 요소들이 말과 태도, 표정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왔다. 

 

산을 오르며 '그런 날에는'을 불렀다. h는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멀어져(도망)갔다. 밥을 먹은 아기는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겨울치고는 조금 포근한 날씨라 안심했더니 아기는 그날 저녁부터 콧물을 흘렸다. 산에서 내려오며 포장마차에서 직접 농사 지은 호박과 팥으로 만든 호떡과 국화빵을 먹었다. 오뎅국물을 호호 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유명한 산이라 외부 관광객만 스쳐지나갔었는데 처음으로 이 지방 사람을 만났다. 평소에 눈인사만 하며 지나치던 사이였는데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언니네는 둘 다 성적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나왔다. 언니는 평생 서울에서 살 줄 알았는데 남편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전향적으로 시골에 내려왔다. 요즘은 몸이 안 좋아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준다고 했다. 남편은 농사를 짓지만 일자리를 구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농사를 지어서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기반이 안 잡히니 삶이 불안정해진다. 검은 패팅 점퍼를 입은 언니 얼굴이 까칠하다.

 

 차에 태우자 아기는 잠이 깼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내 품에 좀 더 깊이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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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7-01-2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떠올렸는데, 글을 보니 그 노래가 맞았군요. :) 헤, 아치 님 새해 복 많이, 아기랑 건강하시길.

Arch 2017-01-31 22:05   좋아요 0 | URL
치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노래 별거 없는데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