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매뉴얼 - 내 인생에 매뉴얼이 필요하다면 그건 섹스일지도
펠리시아 조폴 지음, 공민희 옮김, 폴 키플, 스카티 레이프스나이더 그림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예전의 나는 정말 섹스를 잘하고 싶었다. 코르셋 입고 있을 때라 나의 만족이나 기호, 욕망 때문이 아니라 '명기'가 된다거나 상대에게 잊지 못할 섹스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는 이유가 컸다. 인도는 커녕 인도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주제에 카마수트라를 사서 연구를 한다는 둥- 게을러서 못함- 마루타 같은 상대를 골라 연구를 한다는 둥 그 시도와 삽질이 심히 다양했다. 그 와중에 느낀 것 하나는 섹스야말로 정말 케바케라는 것. 누군가에게 했던 행위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좋을리는 없다는 것. 기본에 해당하는 개론은 있지만 각론은 제각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차츰 깨달은 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섹스도 잘한다는 것.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상대의 의도와 감정을 읽어내고 자신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사람은 섹스도 잘한다. 관계맹인 주제에 너무 심오한 목표를 세웠구나 싶었다. 하다보니 관습적으로 역량이 키워지는 것도 있기 마련이라지만 섹스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섹스는 짜릿하고 기분이 조크든요 같은건가 보다.

 

 성심리 수업이었나? 선생이 칠판에 ‘섹스’라는 단어를 써놓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물었다. 여기저기서 야하다, 절정, 여남, 피임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불쑥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귀찮다’라고 했다. 하, 내가 지금 뭘 얘기한거야. 괜히 쫄아서 눈치를 보는데 일부에서 수긍하며 한마디씩 보태더니 전체 분위기가 ‘좀 귀찮기도 하지’로 넘어갔다. 에로틱하고 은밀하게 꼭꼭 씹어서 되새겨야할 섹스를 귀찮다고 해도 다들 괜찮은거야? 섹스를 잘하고 싶었지만 내게 섹스는 귀찮은거였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지 어먼 곳에 나를 몰아붙여왔다. 지금은 귀찮은대로 산다.

 

 섹스 메뉴얼은 케바케 섹스를 위한 개론서이다. 대체로 PC하고 (남성 상위를 다른 책처럼 정상위라고 하는 멍청스러움은 없다.) 진지하다. 그래서 가끔 웃기다.

 섹스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입문서?다. 급결론은 아기가 낮잠에서 깼기 때문.

 

상대방의 머리를 만지기 전에 가발이나 부분 가발을 썼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자칫 가발을 떼어내버린다면 섹스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키스하기 직전 가글을 하거나 사탕, 혹은 달콤한 음료를 마십니다. 특히 흡연자들에게는 이 과정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입에서 재떨이를 핥는 느낌이 들어선 안 되니까요.

가슴은 라디오 다이얼이 아닙니다. 유두를 과도하게 비틀거나 돌리는 행동을 상대방을 짜증 나게 합니다. 가슴은 당신의 저녁식사가 아닙니다. 부드럽게 빨고 가볍게 깨무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세게 물거나 마구잡이로 무는 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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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9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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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9 2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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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 대신 어떻게 살건지를 물었다. 꿈은 추상적이고 현실에 발 딛지 않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어떤 바대로 사는 게 좀 더 믿음직스러웠달까. 그렇다고 어떤 직업을 갖을지 묻는 것도 이상했다. 어른의 세계에서 직업은 현실적이지만 아이의 현실에서 직업은 추상적이다. 내가 평소에 어떤걸 좋아하고 어떻게 지내는게 좋은지 한번쯤 곰곰하게 생각하고 해줄 수 있는 답변, 그게 어떻게 살거야.로 압축된거란 생각을 했나보다.

 

 임경선의 글을 찾아 읽지는 않았는데(이래놓고 내가 예전에 그녀의 글을 얏호! 좋아! 이랬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집이 데워지고 있어서인걸까) 이 책을 보면서 차분하고 조용히 짚어주는 느낌이 좋았다. 개인의 노력과 사회제도의 개선이란 이분법만 있는 게 아니라 오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만족하는 개인의 성실함에 대해, 자존감은 어렸을 때 완성돼서 끝나는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조금씩 나아져가는거란 얘기, 현실과 꿈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하면서 꿈을 꾸는대로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지점 등 사람들을 상담해주며 쌓인 내공이 '태도'란 가치로 가지런히 정리됐다.

 

 그 중에서 좋았던 '가사노동' 부분. 내가 막연하게 불쾌감을 느꼈지만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짚어준 글, 에세이를 이 맛에 읽는다. (군데군데 뺀 부분 있음)

 

 평균적인 386세대의 남자라거나 그가 자란 남아선호적 환경을 고려해보면 지금 이만큼 가사 분담을 하는 게 감개무량하다. 그런데 여기서의 슬픔은 남편이 환골탈태해서 노력한들 그 수준은 내가 원하는 가사 분담의 기준을 완벽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남편들 중엔 시키면 거부하고 하지 않거나, 꾸물거렸다가 투덜대며 하는 이들도 있다. 시키면 하라는 대로 해주는 남자는 양반일까? 한데 나는 그게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마님의 분부만 기다리겠다는 머슴 같은 대사가 그다지 기쁘지가 않다. 그 말의 행간에 스스로가 가사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음이 드러난다. 주도권이나 자발성, 책임을 갖지 않겠다는 얄미운 선언처럼도 들린다. 그러니까 자신은 어디까지나 ‘협조적인’ 비관련자의 입장으로 남고 싶다는 거? 뭐 하나 시킬 때마다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부탁’하고 일을 어설프게 끝내놓은 다음에도 반드시 ‘칭찬’해주는 것. 아, 이것 자체도 피곤한 일이다.

 가사 분담에 대한 ‘파블로프의 개’ 훈련을 반복하면서 남편에 대해 한 가지 오해를 풀었던 것은 그들이 일부러 몸을 사리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 남편 포함 많은 남자들은 몰라서 먼저 하지 않거나 해야 된다는 의식 자체가 자동 탑재 되어 있지 않았다. ~ 남자들은 (여자들의) ‘피곤하고 힘들다’를 곧이곧대로 ‘피곤하고 힘들다’로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여자들은 남자들이 상상하는 만큼 깔끔하지도 않을뿐더러 은근히 더럽고 게으르지만 가사일에 대해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있음을 어느샌가 슬프게 체득하고 만 것이다. 그런 전후 사정에 대한 센스가 없는 그들에게 “당연히 같이 해야 하는 일인데 왜 내가 ‘부탁하듯’ 말해야 돼?”도 만만치 않게 열받는 지점이다.

 처음 일을 시키고 몇 차례 반복하면 하나의 습성이 생긴다. 말을 굳이 부드럽게 부탁 식으로 하지 않아도 아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주지시켜주면 남편은 그 일에 반자동적으로 착수한다. 경험이 더 쌓이면 이젠 문장이 아닌 단어 몇 마디, 눈에서 뿜어지는 빔 한 줄기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곧잘 알아듣게 된다.

 어느덧 남편은 ‘어떤 경우에 아내가 자신에게 일을 시킬 것인가’를 사전에 감지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어떤 ‘징조’가 보이면 내가 시키기 전에 “밥 먹고 설거지할 테니까 놔둬~”같은 선언을 먼저 함으로써 어린아이처럼 칭찬을 바란다. 물론 나는 “그래, 고마워”라고 대꾸하지만 뚜꼉을 덮어 반찬 통들을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부터가 설거지임을 깨달을 날이 올 때까지 칭찬은 하고 싶지가 않다.

 ... 내 마음이 불편하느니 차라리 힘들겠다라고 생각해서 그 순간을 참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어질 것이다. 가사 분담은 한 가정에 대해 부부로서 책임을 함께 지는 문제이자 가정 자체가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내가 남편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가정은 남편과 나, 둘이 같이 구축한 세계다. 우리가 더럽힌 것, 먹는 것, 우리가 낳은 것, 모두 우리가 직접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효율적인 노동력을 빌리기보다 우리는 우리대로 효율성을 기해보기로 한다.

 초기에는 가사일을 한 번 시키는 게 그렇게 힘들어도, 가사 분담 문제로 불편하거나 싸웠다 해도, 가사 일에 관한 소통 패턴을 만들어서 주도하면 어느새 점점 부부간의 자연스러운 협업 체제가 만들어져간다. 남편도 몸에 익어 점점 덜 버거워하고 가사일을 하면 할수록 보기보다 힘든거구나, 를 통감하면서 그간 아내의 수고를 이해하고 자신이 더 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해보지 않으면, 그것도 의무적으로 반복적으로 해보지 않으면, 그것이 보기보다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를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 없이 도움이 필요할 때 남편에게 말하면 바로 한다. 서로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경시하지 않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많은 것들은 사랑으로 함께해나갈 수 있다. 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관대함을 최선을 다해 양립해나가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

 

 

 

 

 

 

 

 

 

 

 

 

 

 

 그녀는 페북에서 팔로우 한 한 작가가 매번 '좋아요'를 누른 유저 중 한명이다.그녀의 글을 읽으면 내가 '가위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걸 가위의 섬세한 매력과 단호한 절단력 같은걸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게 신기하고 부러웠다. 얼마 전 '유혹의 학교'란 책을 냈는데 나는 최근에야 '관능적인 삶'을 읽었다. 관능이 발끝에서 몸 전체로 퍼지는 끈적거리지만 질척이지 않은 글을 읽는건 짜릿했다. 다양한 글들이 있는데 그 중 임경선의 책 같은 글이 좋았다. 작가 외에는 해볼 수 없는 감성의 깊이에 다다르는 것 말고 나도 한번쯤 해볼 수 있는 것. 일테면 사랑하는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며 어제와 달라진 점, 표정의 변화, 내가 좋아하는 부분 찾기 등

 

 a를 가만히 바라봤더니 a왈,

- 왜 째려봐.

이래서 김새긴 했지만 모처럼 누군가를 응시하면서 그의 눈이 나이들어가는걸, 웃을 때 작은 주름이 아른거리는 얼굴을 보는게, 입매가 오물거리는걸 보는게 좋았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알게 됐나 아쉬운 맘으로 허겁지겁 읽다가 조금 지루해졌다가 반짝이는 부분에서 같이 눈을 빛내며 읽었다. 나도 그녀처럼 어렸을 때 섹스를 하고 싶었다. 쫌탱이에 겁이 많아 그 바람이 이뤄지진 못했지만 '처녀막' 따위가 나를 억압하는 것 같아 빨리 섹스를 하고 싶었다. 스무살 넘어 어거지로 한 첫 섹스에서 처녀막 아닌 질주름에서는 피가 나지 않았다. 상대가 나를 처녀로 생각하지 않아, 그동안 자전거를 타왔던 게 '어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오로지 섹스만을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쉽게 다리 벌리고 다니는 년이라고 욕먹고, 섹스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지 않는 여자는 비싸게 군다고 욕먹으며, 버리려는데 자꾸 눈치 없게 들러붙는 여자는 구질구질하다고 욕먹는다. 그 어디에도 ‘여자’들의 욕망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남자들 비위 맞추는 법만이 침대에서 남자에게 사랑받는 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돼 여자들을 현혹시킬 뿐이다.

 ‘남자는 질투의 동물이기 때문에 섹스를 했어도 안 한 척 최대한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된다. 팬티 벗길 때도 허리는 절대 들지 말아야 한다. 남자는 섹스를 하고 나면 금방 싫증을 느낄 수 있으니 항상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해라. 남자는 시각에 예민하니 야한 속옷을 입어라. 침대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자지만 빨지 말고 불알과 항문 사이를 핥아라. 섹스를 많이 하면 보지가 늘어날 수 있으니 케겔운동을 꾸준히 해라. 남자는 의외로 섬세한 동물이니 섹스가 불만족스러워도 잘 돌려서 말해야 한다. 남자의 자존심을 죽이면 발기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전부 모든 일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발기부전도 남자 자존심 못 세워 준 여자 탓, 침대 분위기가 시들해도 섹시하지 못한 여자 탓, 싫증나서 바람나도 여자 탓, 쉬운 여자 취급받아도 다리 벌린 여자 탓. (85p)

 

다른 섹스 칼럼니스트들이 종종 인터뷰에서 “저 생각보다 얌전해요”, “섹스 칼럼니스트가 헤프다는 건 선입견이에요”라며 얼마나 자신이 바람직한 여성인지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걸 보면 이건 나만 겪는 일(섹스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섹스하고 언제든 섹스 제안을 받아들일거라는 오해)은 아닌 듯하다. 아마 이건 섹스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편하게 말을 하는 여자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기도 할 거다. 눈치 없이 들이대는 남자들의 객체 수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이런 ‘취급’이 무서워서 섹스에 대해 말하기를 피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침대에서 더 이상 오르가슴을 연기하지 않고, 자지가 작은 남자에게 오럴섹스나 핑거섹스로 나를 더 즐겁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좋아하는 체위에 대해 말하고, 섹스하기 싫은 날은 싫다고 말하는 순간, 더 재미있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고 장담한다.

 성해방은 섹스를 좋아하는 것도, 섹스를 무조건 많이 하는 것도, 섹스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섹스 후에 신비감이 떨어졌다고 차여도 상처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싫은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해방이다. 섹스에 대해서 여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입을 열 때,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 때 비로소 진정한 성해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87~88p)

 

그가 회사에 가 있을 낮 시간에 그의 오피스텔에 가서 서랍 안에 들어 있는 바이브레이터를 꺼내 몰래 재미를 보곤 했었다. 탁 트인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혼자서 느꼈던 오르가슴은 끝내줬다. 자신이 상대방의 모든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자 인간의 오만이다. 딜도가, 바이브레이터가, 섹스토이가 상대방을, 그리고 나를 더 나은 쾌감의 길로 인도하리라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진실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남자들이 불쾌해가거나 자존심 상할까 봐 자지가 마음에 안 들어도 말하지 못해 왔던 여자들의 과거는 이제 떠나보낸 때가 되었다. 작다는 말 몇 번으로 자존심이 상해 발기부전이 되어버린다는 건 그만큼 소심한 남자라는 증거일 뿐이다. 타고난 이 작은 자지로 어떻게 더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건강한 자세 아닐까. 작다는 말을 한번도 못 듣는 바람에 자기가 작다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작다는 말을 해준 솔직하고 고마운 여자를 오히려 문제 있다고 치부해 버리는 뻔뻔함이라니 말이 되는가. 그깟 작다는 말 몇 번 듣고 자지가 서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남자들은 그렇게 계속 괴로워하도록 두자. 다음번에 이 남자를 만날 다른 여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인류애를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20대 때는 여자에게만 씌어진 성적 억압은 싫다며 성해방'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것 역시 치기와 억지에 불과했다는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녀의 말처럼 성해방은 내가 자유롭게 내 욕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솔직히 말하는건데 나는 섹스를 빨리 많이 하면 쿨한줄 알았다. 나 역시 이중규범에 꽁꽁 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관계에 매몰돼 허우적거렸다. 섹스할 때 좀 더 과감하고 자신에게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살짝 후회되는 부분.

 

 요즘 같은 세상에 10대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게 말이 되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오독한거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만의 여행기와 에세이에서 그런 식으로 트집 잡을 건 얼마든지 있으니까. 오히려 이 책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섹스를 돌아봤으면 한다. 가짜 오르가즘을 연기하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와 상대를 즐겁게 하는 섹스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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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어깨에서 타고 내려온 통증이 등으로 뻗어 허리에 다달았다. 왼쪽이 아파 오른쪽으로 지탱하는 일이 많아지다보니 오른쪽도 아프다. 내가 좋아하는 젊고 잘생긴 한의사가 있는 한의원에 갔다. 무려 아기를 데리고 말이다. 아기는 순한편이라 유모차에 앉아서 과자 먹으며 잘 있을줄 알았는데 엄마가 윗통을 까고 전기물리치료 하고 가만히 누워있으니까 이상했나보다. 유모차 안에서 몸부림치고 뒤척이길 몇 번, 한의원 간호사님들이 돌아가며 아기를 봤다.

 

 한의사가 부황을 떠서 사혈을 하고 침을 놓길래 왜 아픈지 물었다. 근력이 약해져서 쉽게 근육이 뭉치고 신경이 눌려서라고 한다. 나는 한의사가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궁금한거 100가지를 다 물어도 다 대답해줄 수 있는 '경험 없는' 상태가 좋다. 왠만한 의사들은 귀가 안 들리는 척, 질문하는 환자 스스로 내 질문이 이상한지 되짚게 하거나 미처 증상을 말하기 전에 처치/치료 다 하고 배웅할 때 환자 말에 귀기울이고 한자가 이해할 수 있게 얘기해주는 의사는 특별하다. 그런 의사가 이 시골에 있다는 것도, 이렇게 젊고 잘생긴데다 상냥한 것도 무척 특별하다.

 

 아기 낳고 산후조리 한 후 그래도 걷는다고 걸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나보다. 오른쪽 근육을 더 많이 써서 오른쪽 허리에 침을 놓을 때 더 아팠다. 아기는 간호사님들과 놀다 엄마랑 한의원에 온 꼬마랑 놀다 웃다 했다. 침을 맞고 원적외선 쬐며 깜빡 잠이 들었다.  달콤한 잠이었다. 집안일과 육아는 흔적없이 스쳐서 내용이 축적되는 활동을 한다는게 하루 뺴고는 풀스케줄이다. 피곤하다. 새벽에 잠이 깨 음머암마맘마 엄마 하는 아기 덕분에 중간에 깨는 것도 피곤을 가중시킨다. 배우는걸 줄이든가 일찍 자든가, 낮잠을 좀 더 자든가. 깨기 싫은 잠이다.

 

 침을 다 맞고 정리를 하는데 간호사님이 커텐을 치웠다. 맞은편에 베드에 아이가 간호사님과 앉아있다. 종이컵을 사정없이 구기며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너는 어디서 왔니, 어떻게 하루하루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니. 아련한 잠기운에 부드러운 기분이 스며든다.

 

 지난번에 손목에 침을 맞았을 때는 다음날 말끔히 나았는데 이번에는 오래갈 듯 하다. 근력을 키우기 위해 아령을 들고 춤을 췄다. 요가를 하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데 뒷편에서 a가 핸드폰을 한다. 핸드폰 카메라가 나를 향해 있어 도촬 당할지 모르니 카메라를 가리라고 했다. (그 와중에 분별력은 있어 도촬해도 암짝에 쓸모없는 그림일거란 생각은 하지만) 당분간 몸부림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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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엄마는 우리 어렸을 때 좋은 엄마였어? 우리한테 잘 했어?

- 아니. 그때는 살기가 힘들었잖아. 힘드니까 자꾸 술 먹고 아빠도 다른 여자 만나서 엄마 힘들게 하고. 그때 너네들한테 잘해준 게 없지. 밥도 잘 못챙겨주고.

 

 답을 예상하지 않았는데 덤덤한 대꾸에 먹먹해졌다. 고3때 학교 근처 도서관에서 살며 점심 급식으로 저녁까지 먹던 생각이 났다. 그때 난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거나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엄마는 원래 그래, 엄마도 어쩔 수 없어.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

 

 엄마는 요새 부쩍 전화를 한다. 손주랑 영상통화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하소연을 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다니던 식당에서 나이가 많다고 잘리고 다른 식당으로 옮겨 일하면서 힘들다고 했다. 잇몸이 가라앉아 임플란트 비용으로 버는 족족 치과에 갖다 바치고 있다고도. 전화를 걸어온 엄마가 치과에 얼마 들어간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 엄마 그냥 나중에 이 다 빠지면 틀니하는게 낫지 않아?

- 너 낳고 나서 이가 시원찮더니 늙으니까 막 가라앉나봐.

 그날 비상금을 탈탈 덜어 엄마 통장으로 송금했다. 이 치료 잘하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자꾸 나 미안하게 하지마.

 

  전에 정말 돈이 없어서 다음달 방세도 못내서 어떻게 해야하나 쩔쩔맬 때 한번씩 엄마가 전화를 했다. 아빠가 음주운전에 걸렸거나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소리를 했다. 나도 힘든데 엄마는 어떻게 하나도 안 변하고 이렇게 약할까. 매정하게 전화를 끊다가도 걱정돼서 얼마 없는 돈을 송금할 때면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직장에 다니고 수중에 어느 정도 여윳돈이 있을 때부터는 엄마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대신 감정적으로 위로하고 얘기를 들어줘야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아빠의 잦은 무시, 근처에 사는 고모의 간섭, 누구누구한테 받은 서운하고 폭폭한 감정. 나는 엄마에게 강하게 대처하라고 얘기했다. 바쁘다며 나중에 전화한다 해놓고 다시 엄마가 전화할 때까지 까맣게 잊은적도 있다. 엄마는 그냥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뿐인데.

 

 오랫동안 쌓인 화가 엄마 머리에 가득 차서 요새는 자꾸 뭔가를 깜빡 잊는다. 치매는 아니지만 그 과정 언저리까지 온 것 가같다. 깜빡 잊는 건 기억일 수도 있고 자신의 나약함일 수도 있고 과거의 서운함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럽던 순간일 수도.

 

 통속적인거 정말 싫은데.

 딸을 낳아보니까 엄마 맘을 알겠다. 바라만 봐도 너무 예뻐서 눈 안에 넣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딸을 낳고 나니까 그렇게 계속 나약하고 약해빠져서 딸 속을 썩이던 엄마 맘을 알겠다. 그래서 미안하고 그래도 미워서 맘이 아프다.

 

 딸에게 정성을 다하는 맘의 반이라도 엄마를 생각하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가 함께 해서 행복했던 시간들은 늦게까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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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로 올라왔다. 모든 게 끝나니 몸에서 활력이 샘솟거나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모성애로 어쩔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한없이 나른하고 멍했다. 오로라 불리는 검붉은 피가 나오고 회음부 꿰맨 자국은 따끔거리다 쿡쿡 쑤셨다. 아기가 들어있던 배가 살짝 부은 듯 나와있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잠을 자지 못했는데 희안하게 잠이 안 왔다. 환각처럼 여러 생각이 스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임신한걸 안 후에 조산원에서 출산하려고 맘을 먹고 이곳저곳 알아봤다. 수도권 쪽에만 집중된 조산원도 문제였지만 진통만 하다 산부인과를 찾았다는 사연을 읽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했다. 출산 직후에는 아기도 나도 무사하게 출산을 마쳐서 참 다행스러웠다. 아무 탈 없이 출산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여러 산모를 진찰하고 출산하는 산부인과에서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는걸 이해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출산기를 읽다보니 울컥한 게 치밀어 올랐다. 낳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였다.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은 엄마들의 평화로운 감상, 산부인과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경험담.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고요해야할 순간에 아기를 끄집어내고 짜내듯 낳은 것 같아 속상했다. 간호사들이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의사를 부른 것도 괘씸했다. 아기가 나오는 순간에만 의사가 있어야 된다는건가 뭔가. 게다가 그 모든 과정을 아무 설명 없이 당하듯 출산한 것도 속상하긴 마찬가지.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보따리 찾아내란 심보인가. 평소 현대의학에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출산 후 극대화됐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나랑 아기랑 둘 다 건강해서 너무 다행이지만 한켠에선 아기에게 미안하고 내 선택이 후회스러웠다. 좀 더 강하게 의지를 보여서 원했던 출산 환경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간신히 잠이 들었다. 덥고 찌뿌등했다. 후련하고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은 물에 적신 솜처럼 축 늘어진 채 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엄마들을 부른다고 했다. 아직 아무것도 준비 안 됐다고 했더니 간호사가 알려준다고 했다. 삼일쯤 지나야하지 않나. 어제 잠깐 얼굴만 봤던 아기를 다시 만난다. 설렜다. 소독을 하고 신생아실에 들어가 아기를 안고 젖을 물렸다. 젖이 나올리 없었다. 밥 먹은지 좀 됐다고 했는데 아기도 별로 젖을 빨고 싶지 않아보였다.

 

 젖을 안 빨길래 가만히 안고 아기를 바라봤다. ‘네가 열달 동안 엄마 뱃속에 있었구나.’ 울컥, 뭔가 차올랐다. 눈가에서 열이 났다. 열달 동안 아기를 배고 있으면 아기가 태어난다는 자명한 사실은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품에 안은 순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만히 안겨있던 아기가 칭얼대서 기저귀를 갈아줬다. 너무 작고 작아서 행여 다칠까 조심스럽게 아기 몸을 만졌다. 뽀얀 아기 냄새가 났다. 이 세상 생명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다시 아기를 안고 있는데 건너편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 이야기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올라와 한참을 생각했다. 아기를 낳기 전 생각과 현재의 맘, 뭘 가장 원하고 어떤걸 피했는지. 다음날 아기 낳기 전 예약했던 산후조리원에 안 가고 아기와 함께 퇴원을 했다. 아기가 내게 와서 이 세상에 왔는데 엄마가 해줄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꼽 소독, 밥 먹는 것, 목욕까지 다 겁이 났다. 산후조리원에서 불안감을 유예하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신생아실에 아기를 두고 편하게 쉬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대한 미움도 한몫했다. 결국 산모도우미를 쓰는 것으로 주변과 타협해서 아기랑 지내기로 했다. 

 

  지나고보니 잘 한 선택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조리를 하지 않고 비용대비 적절성을 따졌을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니면 안 가져도 될 미안함에 괜히 자신을 괴롭혔을지도.

 

 그리고 지금까지 서툴지만 천천히 아기랑 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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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6-07-19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어쩜 좋아. 나 이제서야 글을 봤어요. 이쁜 아가의 탄생 축하합니다.

Arch 2016-07-23 00:10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했을거에요. 제가 좀 갑작스러웠어요.ㅋ

라주미힌 2016-07-24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언제 결혼했냐고 묻기 민망하게 아이도 낳았어요?;;; 대박 ㅋㅋㅋ 축하해용. 건강하고 똘똘하게 잘 키우세용..
아이 처음 봤을때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진거같은데. 1년정도 맨날 보니까 얘가 난가... 분신같은 느낌이 들데요.. ㅋㅋ

Arch 2016-07-26 22:57   좋아요 0 | URL
전 아직도 신기해요. 이렇게 오밀조밀 조그만한 생명이 내 배에서 나왔다는게. 신기하고 감사하고 행복해요 ^^ 축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