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무언가로 결정되지 않았을 때, 내 정체성을 밝히기 어려웠을 때. 세상은 늘 물음표였다. 나는 늘 나를 설명해줄 단 한장의 명함을 갖고 싶었다. 미래가 어서 결정되고 모든게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늘 했었다. 그래서 사소한 말, 질문에도 상처받았다. 나도 무언가를 한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아 말로 내뱉기 어려웠다. 그 무언가를 그렇게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고 어서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깊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글이 술술 나왔다.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쓱쓱 술술 글이 나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게 확정적이고 안정적이며 맘까지 편한데 글이 안 써진다.

 

- 선생님, 어떻게해야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나요. 선생님은 세계와 부딪혀야 자신만의 글이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 상태가 괜찮거든요. 아기를 낳고 사는걸 꿈 꾼 건 아니지만 아기를 좋아하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맘이 편안해져요.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세계와 부딪힐 일이 없는거고...

 

- 아치님, 지금 행복한거죠?

 

  선생님은 팔아먹고 팔아먹어도 우물처럼 마르지 않는 상처가 있어야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치유되지 않고 만족감이 없는 잡념 상태, 피가 멈추지 않는 부위 말이다.

 

 그 부위가 예전에는 설명할 수 없는 나였다면 지금은 남들도 나도 정의내릴 수 있는 나로 바뀐걸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나.

 

 순간 정적이 흐르고 아이의 소요와 요구에 귀를 막고 싶은 지점. 지긋지긋하게 내 일이 된 집안일, 병든 아빠를 무시하고 감정을 지워내고 싶을 때,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서 같이 있기 불편한 사람, 안쓰럽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타인, 지방을 축척하는 나의 섹스파트너, 지방의 악습과 폐쇄적인 일처리. 진동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보다 추이를 지켜보고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는 순간.

 

 없는건 아닌데 격렬하게 나를 소진시키며 일말의 쾌락을 가져다줄 무언가가 사라져버렸다. 시덥잖은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지금 상황이 너무 적절한걸까. 그동안 너무 혼란스럽고 괴로웠으니까 이건 나에게 주는 오후 4시의 한가함 정도일까. 그동안 뭐가 고통스러웠나. 그런게 있긴한가. 마르지 않는 상처, 퍼내도 새로 차오르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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