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이었다.

나는 일이 끝나면 쉬고 싶은데 아이를 본다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주에는 무엇을 해도 아이는 금세 바닥에 누워 뒹굴 것처럼 화나 있었다.

아이고 뭐고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기 싫은 마음에서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아이를 안 보고 싶다는 감정.

힘을 내서 아이 기분을 맞춰주다 제풀에 지쳐 다시 사이가 틀어지고.

나는 우리 아빠처럼 아이를 대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할까.

시간은 계속 흐르고 피곤함은 가실줄 모르니 고민은 공염불에 그치는 날이었다.

상냥함과 화의 반복, 설득과 으름장의 교차, 열정과 자포자기의 시간

 

주위에선 그 나이 아이는 다 그렇다고, 고집을 부릴 때라고 한다.

나도 그게 맞다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건 다르다.

몸이 힘드니까 아이를 받아줄 맘의 공간이 터무니없이 좁아졌다.

사소하게 화내고 끊임없이 자책했다.

 

 금요일엔 이 모든게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아, 지겨워. 왜 이토록 지겨움을 가득 짊어지고 지친채로 살아야할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밥을 안 먹겠다는 아이를 설득하고 사정해가며 밥을 주는 대신 아이가 먹고 싶은걸 줬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생일축하 놀이도 다 하고 웬만한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나는 취했고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는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그 모습들을 가감없이 내보였다. 사랑스럽고 상냥한, 다정하고 멋진 모습들.

아이 안에서 계속 갖고 있지만 꺼내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애틋하고 따스한 마음이 피어났다.

나는 단박에 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그 감정이 다시 되살아난다.

아이의 부정확한 발음과 동작, 표정이 죄다 사랑스럽다.

 

 내가 아무리 고민을 해도 풀어지지 않던게 어떻게 이렇게 한번에 변한걸까?

적정한 선과 적당함을 지키려는 방식이 아이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느낌을 준 걸까?

일과를 마친 아이는 그토록 치열하게 다툼했던 양치질도 쉽게 끝내고 잠도 편안하게 잘 잔다.

 

 성공?의 경험을 한 나는 노심초사하며 아이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

이제는 많이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랑 있는게 지금 나한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지를 말한다.

신경이 곤두서서 조금만 자기 의사에 반하면 드러누으려고 했던 아이는 내 얘기를 순순히 들어주고 타협을 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이 안에는 이미 좋은 심성이 있었다.

나는 그 마음들이 나와서 스스로를 보듬어주는걸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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