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인 나는 이리저리 잘 넘어진다. 넘어지는 나를 들어서 옮기는 몇명의 배우는 번번히 힘들어한다. 한두번은 좀 민망했고, 나는 왜 이렇게 무게가 많이 나가서 민폐를 끼칠까 싶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그들의 체력을 구박하고 남자는 힘인데 이거 좀 안쓰럽게 됐다며 혀를 차주는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요즘 난 푼수질 크리다. (크리란 말을 이럴 때 쓰는거 맞나?)
그러던 와중에 '날 드는 남자 1'이 기존에 드는 방식을 바꿔서 들어보겠다며 시도를 했다가 허리가 나갈뻔 했다. 나로 말하자면 요새 푼수질 크리라 내가 보통 몸이 아니라며 콧방귀를 뀌며 룰루랄라 해줬다.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설날에 내려온 후로 오갈데 없어 저녁이면 극단에 상주하는 예전에 연극 좀 해봤던 남자 2'가 반색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는 은근한 말투로 한번만 나를 들어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새침하게 (통할리가 없다) 내가 과감한 몸무게라 정말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겁을 줬다. 그는 두터운 허벅지를 두드리며 정말 한번 안아, 아니 들어볼 수 없냐고 간청을 했고 누구 애닳아하는거 내가 더 못참겠는 나는 멈칫거리며 몸을 내줬다.
성적인 호기심 때문이거나 정밀하게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는 아니었다. 잠시 쉬는 시간엔 할일이 너무 없었다. 업히거나 들려서 몸이 뜨는걸 좋아하니까 별 상관없단 생각 정도였다. 남자2는 몇초 안 돼 나를 내려놓더니 무게가 상당한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자가 이 정도 몸무게는 나가줘야 정수기 물통은 든다고, 튼튼한거라고 어쩌고 하려고 했다. 헌데 말들이 목에 걸려 나오지를 않는거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몸을 내줬다'가 확실히 무거운 여자가 됐다.
어렸을 때 난 무겁지 않았다. 아니, 그때도 이 몸무게였으니 무겁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다. 다만 무겁다거나 살쪄보인다는 소리를 별로 듣지 않았다. 내 몸은 바람직하게도 신체 말단 부위가 날씬해서 슬쩍 봤을 때는 좀 말라보인다. 게다가 난 어렸다. 아무리 살쪄보인다고, 그 무게를 어떻게 하냐고 떼로 달려들어 잔소리를 해대도 모든 잡소리들을 싸그리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 나이의 난 터무니없이 자신만만했다. 갑자기 몸무게가 입 안에서 껄끄럽게 돌아다니는건 자신감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스러워서일 수도 있다. 이제 나이 좀 먹었다 싶은, 여자라기보다는 나이로 구별되는 어느 선에 들어섰다는 확연한 느낌에 정색했달까.
나이를 먹어서 좋은줄 알았다. 유치한 애교를 강요당할 일도 없고,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랑 생각하는게 다르다며 날 귀여워해주는 늙은 아저씨들 덕택에 괜히 으쓱해질 필요도 없으니까.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그동안 해왔던 가락이 있어 날 좀 알 수 있고, 예전보다 나아졌단 손바닥만한 자부심도 생겼다. 그런데 좀 소외된 기분이 든다.
이젠 내가 하는 짓을 언급해서 귀엽다거나 독특하다고(귀엽다는 쑥쓰럽지만 독특하단 평은 괜찮다.) 언급해주는 나이 든 사람들이 없다. 오히려 나이에 걸맞는 위엄과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란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나이에 걸맞는 내가 되는게 미덥지 못하다. 여전히 나는 인정받고, 북돋아줄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한데 주위에 있는 사람은 너무 어리거나 무심하다. 그들은 나의 칭찬과 곁들이는 말을 아낌없이 받아들이기만 한다. 어쩌면 나이듦보다 나이듦으로 인해 '주류'에서 밀려난단 서운함이 더 클지 모르겠다. 어쩌면 발랄하고 젊고 예쁘지만 자신의 매력엔 무심한 친구가 옆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위축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난 정말, 늙을 준비가 안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