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는 중이었다. 어깨에 맨 가방을 추켜세우는데 뒤에서 오던 누군가가 손을 툭 건드렸다. 사람들이 많아서 부딪쳤나보다 싶었는데 손에 닿는 감촉이 느끼했다. 뭔가 싶어 앞을 쳐다봤다. 내 손을 스친 누군가가 보란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앞의 여자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여자에게 다가가 손을 부딪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불쾌한 뒤끝만 남긴채 집으로 돌아왔다. 왜 나는 그 새끼를 잡아다가 손을 비틀거나 낭심을 공격하거나 목젖을 가격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 녀석을 뒤쫓아가서 대체 뭐하는거냐고 따져묻지 못했을까. '왜 나는' 앞에서 무기력했다. 무기력함에는 몸을 한번도 써본적이 없다는 기억도 한 몫 했다. 친구 말처럼 이럴 때 성희롱, 성폭행 메뉴얼이란게 있어서 이럴땐 이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사전에 교육을 받거나 연습을 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자책은 덜할텐데.
회사에서 축구, 캐치볼과 족구를 하면서(흉내를 내면서) 몸을 다시 보고 있다. 난 달리기를 못했고, 몸으로 하는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몸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몸은 가끔 잔디밭을 구르기도 하고, 동료들 헤드락도 걸고, 신나면 바닥을 쾅쾅 발로 굴리며 폴짝폴짝 뛰는 살아있는 몸이었다. 요즘 나는 몸 어디가 아픈가만큼이나 내 몸이 얼마만큼 견고하고, (배만 그런게 아니다) 힘을 써보고 싶어하는지를 느낀다. 그렇다면 몸으로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호신술이란 어감이 싫단 이유로 그동안 누군가를 방어하기 위한 기술을 배워본적이 없었다. 언니네 방에서 힌트를 얻고, 요즘 내 몸을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격투기를 배워 보는건 어떨까란 생각을 해봤다. 굳이 호신술이 아니라 '내 몸을 쓰고 싶었다.' 동료들에게 내 포부를 밝히자 그쯤은 자신들이 가르쳐주겠다며 설레발을 쳤다. 해서, 배웠다.
이른바 치한을 물리치는 법!
실제로 성추행을 당한다며 얼마만큼 효용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 너무 열심이라 열심히 배웠으며 사진까지 찍었다.

내 앞에 선 치한의 같은 방향 손목을 잡는다. 내가 힘이 셀 경우에는 그림과 같이 잡아도 무방함. 엄지를 손등 가운데에 놓은 후 내 쪽으로 팔을 잡아당기며 비튼다. 깐죽씨가 자꾸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서 열심히 시연중인걸 강조했다.

상대방이 똑바로 서 있는 경우 내 다리의 정강이로 상대방의 무릎 뒤 조금 높은 쪽을 가격한다. 이때 정강이는 정확하게 상대방 허벅지의 힘줄을 가격해야한다. 여러 상대를 대상으로 연습을 할 경우 정확한 가격 지점을 알 수 있으며 살짝만 힘을 줘도 상대방에게 큰 아픔을 줄 수 있다. 자매품으로 무릎으로 허벅지 뒤쪽을 찍는 방법도 있다.

치한과 같이 앉아 있을 경우. 치한의 허벅지를 아주 지긋이 눌러준다.
섬섬옥수는 깐죽씨와 Ch. 이때의 포인트는 다정한 표정을 짓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를 꽉 무는 것! 촬영 도중 낭심 공격을 시연해보면 어떻겠냐는 아치의 제안에 깐죽씨는
- 광년이가 오랜만에 나오려고 하네.
라고 했다. 물론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목젖 치기. 탐스럽고 때려줄만한 Ch의 목. 새끼 손가락 쪽으로 가격하면 한동안 숨이 턱턱 막힐 수 있음.
모든 사진 촬영을 마치고, J씨에게 그동안 배운걸 써보려고 했더니 우리 J씨 왈
- 아치는 치한이 건들 일 없으니까 안심이야. 허허
J씨에게 치한을 만난적이 있었다는 것을 굳이 설명하고 앉았는 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