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가 늦는다고 해서 옥찌들이 들어오는대로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려고 했다. 옥찌들은 7시 10분쯤에 오니까 씻고 밥 먹으면 40분 정도. 옥찌들이 냉장고에 붙은 자석을 갖고 논다고, 이를 꼼꼼히 닦는다고, 내가 뭘 더 주워먹는다고 시간이 늦춰져서 8시 조금 넘어 집밖으로 나왔다. A가 퇴근하는 중이란 연락을 받고 A를 태워서 같이 은파에 갔다.

           

 냉장고에 찰싹 붙어서 의자까지 갖다놓고 노는 옥찌들. 옆 사진-> 얘가 은파다. 저기 세모 모양으로 보이는건 물빛 다리. 고백하자면, 사진을 작게도 만들 수 있다는걸 처음으로 알았다. 전에 순오기님 이벤트 후기를 보다가 사진을 클릭했더니 커져서 이건 어떤 기술일까 궁금했었는데. 신기하다. 난 사진을 다 줄여야하는줄 알았는데. 

 옥찌들이랑 잡기놀이를 몇분쯤 했을까, 숨이 너무 차서 주저앉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A는 소화 안 되니까 옥수수를 안 먹는다면서 벌써 옥수수를 두개째 쓱싹하는 중이었다.

 9시. 아이들이랑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려고 했는데 주차하는 도중, S에게서 전화가 왔다. A와 옥찌들을 들여보내고 전화를 받았다. 반가운 맘에 횡설수설대다가 미안해져 말이 좀 두서가 없지라고 말했더니
- 너가 원래 그런건 알고.
한다. 쳇.

 조금 후에 A와 옥찌들이 나를 찾아냈다. A는 피곤하다며 빨리 가자고 했고, 지민인 엘리베이터에 발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옥찌는 여기서 통화할줄 알았다며 반납하러 가자고(얘는 대출을 반납이라고 한다.) 조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부리나케 책을 대출받아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아이들을 다그쳐가며 재빠르게 씻기고, 로션을 발라줬다. 옥찌들을 재우려고 하는데 가까운 곳에 사는 D가 찰밥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해왔다. A에게 잠깐 옥찌들을 맡긴 후 찰밥을 가지러 갔다왔다. 옥찌들과 빌려온 책을-두번째 별이라도 괜찮아와 금강초롱- 읽고 괴물 이야기까지 마저 해준 다음에 아이들이 잠든 시간은 10시 40분.

 내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고, 일기에나 써야할 일과를 쓴 이유는 페이퍼를 날로 먹으려는 속셈 때문이다, 라고 하면 대체로 맞겠지만 그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다. 정말, 엄마는 대체 나를 어떻게 키웠으며 지금 이 순간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무척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꼴랑 세시간 가지고 엄살이 심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짧은 시간 중에 나를 위해서 쓴 시간은 몇분 되지 않는걸 생각하면 끔찍하달까. 내가 결혼을 안 한게 다행이라고 할까. 혹여 결혼하는게 두렵다고 해야할까.

 분명히 맹렬한 부지런함과 영민한 추진력으로 모든 노동을 수월하게 해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사람이 할일이 아닌 것 같다. 끊임없는 반복과 에누리없이 정직한 온갖 잡다한 일들. 백번 양보해서 사람이 할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 혼자서 전담해서 할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난 여태껏 내 일이 아니란 이유로 방관하거나 떠넘기기 급급했으니, 자기 일로 생각해온 A,B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제서야 그들의 답답함을 알고, 어려울거란 짐작을 해본다. 그래서 같이 분담하려고 하는데 무척 피곤하고, 고단하다. 분담이 전임이 되어가면서 '내 일'이 되어가고, 으례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니 곯이 나기도 한다. 칭찬을 들을 수 없고 자기 일을 잘 하는 것 정도에서 그치는 것도 약오른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도와주는 수준에서 멈춰있는 것이다.

 가사와 육아에 있어선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하지 않을까. 가사는 모두의 일이고, 아이는 모두의 아이. 그렇다면 노동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공정하고 적절한 분배가 필요할 것이다. 그 뒤의 근거와 좀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은데 잠이 온다. 잠도 오고, 지금 약간 맹한 소리를 하는게 아닐까란 걱정도 되고.

 조금 조금씩 뭔가를 알아가니까 아, 좋다 말고 해야할 말들에 자신이 없어진다. 

 휘모리님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자랑질 한 사진을 올려야겠다. 그렇다. 아치는 요새 사진 도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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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9-02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그건 기술도 아니고 사진 올릴 때 그냥 줄이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아셨군요.ㅋㅋ
백두산 천지~~ 아치님이 자랑할만 하네요.^^
육아와 가사~~ 분담하면 더 이상 바랄게 없지만서도~~
'엄마'되면 힘이 솟구치는 마법이 나온다니까요!!

Arch 2009-09-02 08:5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술도 아닌데,^^ 히~
백두산은 안개가 껴서 거의 못본다고 하던데 주위 사람 말로는 대부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욕망은 '안 될거야.'에서 증폭되는 법.
전, 엄마 되면 마법이 생긴다는 말 안 믿어요.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죠.

바람돌이 2009-09-0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미인... ^^ 어쩜 알라딘에는 미인만 있는지... ^^
가사와 육아 그리고 직장까지... 이건요. 무슨 힘이 있어서 하는게 아니고요. 제생각엔 그냥 끝이 보이는, 끝난다는 희망이 있어서인것 같은데요. 저만해도 지금 9살, 7살인 녀석들은 오히려 저를 도와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영원히 그래야 한다면 누가 아이를 낳겠어요. ^^

Arch 2009-09-02 08:59   좋아요 0 | URL
배율 7%로 정도의 미인이면 인정할게요. 흐흐~ 바람돌이님 댓글 좋아요!
끝난다는 희망, 그런데 이게 끝이면 허망할 것 같아요. 이래서 양육자에게 소유욕이 생기는거고, 우울감도 생기는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 전 주말에 하루종일 아이를 볼때면 조증과 울증 사이를 미친듯이 왔다갔다하거든요. 네, 엄살이에요.

비로그인 2009-09-0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백두산 천지! 저 곳에서 제대로 천지를 보려면 전생에 엄청난 덕을 쌓아야 한단 말이 나올 정도로 날씨가 오락가락 맨눈으로 호수를 보기 힘들 정도라던데(진눈깨비에서부터 안개, 비 등등) 보셨군요! 게다가 미모를 담은 사진까지 오오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Arch 2009-09-02 09:06   좋아요 0 | URL
크크, 출근해서 일은 안 하고 혼자 히죽대고 있어요.^^
천지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 뻥이 들어있더라구요. 쥬드님, 히~

다락방 2009-09-0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백두산 천지에 Arch님의 얼굴까지!! 페이퍼의 내용을 잊었어요, Arch님 얼굴 보느라. ㅎㅎ

Arch 2009-09-02 09:17   좋아요 0 | URL
전에도 사진 올리고 그랬더만~ 역시 백두산 천지의 이 놀라운 효과란. 새삼! ^^ 페이퍼 내용은 잊어도 돼요.

조선인 2009-09-0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건 진정한 염장!!!

Arch 2009-09-02 09:17   좋아요 0 | URL
히히

무해한모리군 2009-09-0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어쩌려고 이래 어쩌려고 이러는거양!!

너무 예쁘잖아~~~~~~~~~~~

Arch 2009-09-02 10:47   좋아요 0 | URL
배율 7%와 어두운 곳에선 누구나 미인미남!^^

Forgettable. 2009-09-0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그시간이었군요. 10시 40분이.
내가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점은 7시경 퇴근길이었어요 그때. ㅋㅋㅋ

나도 염장사진 올릴거 많으니 질투심은 패스~~~~ (라지만 엄청 부러움. 옛날 사진인줄 알고 덜부러워했는데 바로 며칠전 사진이란거 깨닫고 더 부러움)

Arch 2009-09-02 11:13   좋아요 0 | URL
네, 뽀님한테 연락을 해야해, 뭘 어떻게 해야해라며 머리는 드득거리고 있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염장 사진? 흐흐~ 내가 마구 질투해줄테야^^ 말했잖아요. 촌스럽지만 첫비행이라니까요.

비로그인 2009-09-0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Arch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배너는 어떻게 다는 것인지요..흐흑...혼자 찾아보려 몇날몇일을 헤매다 결국 여쭤봅니다. 비굴비굴.

Arch 2009-09-02 11:14   좋아요 0 | URL
노무현 전 대통령님 배너 아래 있어요. 설정만 하면 되는데... 아, 이런건 진작 물어보셔야해요! 대체 왜~ 쥬드님!

비로그인 2009-09-0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합성이군!! 흥~

Arch 2009-09-02 12:55   좋아요 0 | URL
뭐래, 바보입니까? ^^

Forgettable. 2009-09-02 16:30   좋아요 0 | URL
아 ㅋㅋ 귀엽다 ㅋㅋㅋㅋ 바보입니까? ^^

머큐리 2009-09-02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 사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