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To: 장영희 선생님
장영희 선생님, 제가 장영희란 꽃을 알게 되고 선생님이 저에게 와 꽃이 되었을 때, 너무나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아름다운 향기만을 남기 신채 먼 곳으로 떠나, 이미 이곳에 계시지 않네요. 장영희 꽃을 너무 늦게 발견한 것 같아 아쉬워요. 그러나 선생님, 선생님께선 잊히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떠난 사람의 믿음 속에서,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아주 가시진 않은 것이라 믿어도 되는 것인지요.
제가 장영희 꽃을 처음 발견 한 것이, 그 꽃이 남긴 마지막 향기인,「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길가네요. 저는 이 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는, 마냥 아름답고 즐겁게 사는 꽃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그 꽃은 아주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목발을 짚고 걸어야 했고, 많은 시간을 암 투병을 하며 보내야 했어요. 그러나 그 꽃은 슬퍼 보이지 않네요. 경험을 통해서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넘어져서 주저앉기 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기에 꽃은 끝없이 희망을 노래하네요.
저는 부끄럽게도, 가끔씩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제 운명을 탓하곤 했어요. 크게 힘든 일이 아닌데도 심하게 엄살피고, 선생님 표현대로 마음 속 도깨비가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날 말이에요. 괜히 짜증도 나고, 왜 내게만 이럴까 하는 그런 날이요. 인생은 새옹지마라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게 좋은 일로 연결 된다는 그런 말은 제게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했지요. 그런데 선생님의 이 말씀은 이상하리만큼 제 맘속으로 비집고 들어왔어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바로 이 말씀이요. 제 마음속 뿔난 도깨비도 이 말에는 방망이질을 하지 못했어요. 운이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난다면, 가지고 있는 운명자루의 검은 돌들을 먼저 빼낸 것이니 앞으론 흰 돌이 더 많이 나올 거라는 그 말씀이, 사무치게 위로가 될 어떤 날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장영희 꽃을 발견한 많은 사람들의 그 어떤 날들이 모이면,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했던 선생님의 바람은 더없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죠?
선생님께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고 하셨죠. 어쩌면, 운명을 탓하고 절망할 수도 있었던 그런 많은 일들을 선생님께선 기적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얼마나 많은 기적을 기적인 줄 모르고 지나쳤을까요? 인생의 길에 발자국 하나하나 남기며 걷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을요. 기적을 기적인 줄 아셨기에 선생님의 삶은 정말 천형(天刑)이 아닌 천혜(天惠)의 삶이었을 거예요. 천형은커녕 당당히 슈퍼맨의 바통을 이어받은 선생님이시잖아요. 진짜 슈퍼맨이 되기 위해 용감한 싸움을 하신 선생님이시잖아요. 이제 선생님의 그 슈퍼맨 바통을, 장영희 꽃을 본 사람들이 이어받아 날아야 할 차례겠죠? 그런데 선생님, 저도 제가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높이 날 수 있을지는 몰라요. 날다가 고꾸라 질까봐 무서울 때도 있을 것 같고, 가야 할 길인데도 지레 겁먹고 돌아가려 할지도 몰라요. 그럴 때면 암 치료를 받고, 중단 했던 월간지에 ‘홀연히’ 나타나 다시 글을 연재하셨던 그 언젠 가처럼, 제 마음에도 그렇게 홀연히 나타나 주세요. 언제까지나 제가 선생님께 이어받은 바통 들고 용감하게 날 수 있도록 그렇게요.
장영희 선생님, 선생님께선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겁 속에서 하루는, 1년은, 아니 한 사람의 생애는 너무나 짧은데, 그런데도 우리는 왜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내일 봐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냐고 하셨죠.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그 몫을 잊지 않고, 용감하게 살아가겠습니다.
떠난 사람을 보내는 아픔을 달래기 위해 하는 그 말을 저도 해봅니다.
내일 뵈어요, 장영희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