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각자 태어나서 각자 살다가 각자 돌아가는 것이지만
비 오는 날 각자의 집으로들 돌아가는 건 좀 아닌 듯
허전한 마음에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사면서 나도 모르게 술안주 재료를 주섬주섬.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 때문에 책을 통 못읽다가 다시
이것저것 책이 읽어진다.
한꺼번에 여러 책을 읽는 것은 역시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오전에 책장 정리를 하다가 2014년 노트를 발견했는데
거기 이런 말이 있었다.
"문학 작품에 행복한 사람들은 다루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문학을 안 읽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서 들었던 <제인에어> 강의 메모다.
그 때 읽은 <제인에어>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사후에 작품성을 인정받고 독일문학사에 끼어든 작가라고 하는데, <미하엘 콜하스의 반란>을 읽으며 남성다운 문체에 확 끌렸다. 카프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여 작품집을 세 번이나 읽었다고도 한다. 어떤 기운, 작중인물이 문체에 기운으로 스며 있는 듯한 정정당당한 문체가 좋았다. 부북스의 책으로 읽고, 다른 번역도 보고 싶고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서 창비를 다시 빌렸다. 도입부는 부북스의 느낌이 더 좋지만, 중간 내용들은 창비의 번역이 더 매끄러운 곳도 많았다.
16세기 중반 하펠 강가에 미하엘 콜하스라는 말장수가 살았다. 그는 어느 교사의 아들로 올바르면서 또한 지독하기로 당대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었다. 이 비범한 사내는 서른 살까지는 훌륭한 시민의 모범이라고 할만 했다. 지금도 이름이 그 자신과 같은 마을 콜하젠브뤼크에 소유한 농장에서 그는 자기 사업으로 편안히 먹고 살았다. 아내에게서 얻은 자식들을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크도록 신을 경외하면서 교육했다. 이웃 중에 그의 정의로운 행동이나 호의적인 행동에 기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 마디로 그가 가진 한 가지 미덕을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온 세상 사람이 그를 기리며 축복할 만했다. 그러나 정의감이 그를 강도로 또 살인자로 만들었다. <미하엘 콜하스의 반란>부북스 7쪽
16세기 중엽 하펠 강가에 미하엘 콜하스라는 말장수가 살았다. 훈장의 아들로 태어난 이자는 당시 누구보다 올곧으면서도 무시무시한 인물로 손꼽혔다- 이 범상치 않은 사내는 서른살까지만 해도 선량한 백성의 귀감으로 삼을 만했다. 이자의 이름을 따서 지금도 콜하젠브뤼크라고 불리는 마을에서 농장을 하며, 여기서 기른 말을 내다팔아 남부럽지 않게 먹고살았다. 아내가 쑥쑥 낳아준 아이들을 올바르고 부지런히 살도록 길렀고, 하느님을 두렵게 여기며 섬겼다. 이웃 사람치고 운 나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콜하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 사내가 한가지 미덕만 덮어놓고 좇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이 말장수를 길이 기억하여 기렸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감이 지나쳐 콜하스는 도적이자 살인자가 되었다.<미하엘 콜하스>창비.9쪽
이러면 안되는데, 필립 로스도 다시 잡았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 50여쪽 씩만 읽어야지 하면서 시작한지 며칠 되었는데, 50여쪽은 어렵지 않지만 매일매일 읽는 것은 역시나 잘 안된다. 콜먼은 기존에 읽었던 필립 로스의 주인공들에 비해 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이제 시작이니 차근차근 읽어 가려고 한다.
보통의 경우 이 년 동안 죽어라 작업한 것, 일 년 동안 혹은 단지 반년 동안이라고 해도 죽어라 작업한 것을 재차 읽어보고 난 후 답보 상태에 빠져버린 작가가 자신의 작품 전체가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을 정도로 방향이 빗나간 것을 알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작품에 호된 비판의 칼날을 내리찎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는 데만도 몇 달씩 걸리는, 거의 자살 충동마저 느끼는 절망 상태로까지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콜먼은 그 책의 원고를 자신이 끝낸 초고만큼이나 형편없는 것이라며 미련 없이 포기해버림으로써, 그 책이라는 난파선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라는 난파선으로부터도 그럭저럭 헤엄쳐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휴먼스테인> 44쪽
등대로는 지난 주에 읽었는데, 밑줄 그은 부분만 다시 읽기 하고 있다. 밑줄을 그으려고 헌책을 샀는데 (아직도 새책에 밑줄긋기는 힘이 든다) 밑줄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사상적으로는 그렇게 용감무쌍한 사람이 왜 실생활에서는 그렇게도 소심할까? 그는 기이하게도, 존경을 받음과 동시에 웃음거리로 보이는 것일까?
릴리는 가르치는 것과 설교하는 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그림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 도달하면 언젠가는 추락하게 마련이다. 램지 부인은 남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제공했다. 그분이 책 속에 파묻혀 있다가 우리들이 있는 곳에 와보면 우리는 전부 놀이를 하고 있거나 쓸모 없는 잡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사색에 빠져 있던 순간과 비교하면 얼마나 커다란 변화인지 상상해 보라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댈러웨이부인.등대> 288쪽
남편은 한없이 우울한 말을 입에 담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낸 직풍는 언제나 다른 때보다도 더 쾌활해진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남편의 그런 식의 말장난은 일종의 게임이라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남편이 하는 말의 반 정도의 우울한 말이라도 만약 입 밖에 낸다면 벌써 그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해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말장난이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무덤덤한 어조로 매우 아름다운 저녁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앓는 소리를 하느냐고, 반쯤은 웃으면서 반쯤은 불평처럼 남편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남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는 아마 결혼을 안 했더라면 더 훌륭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중 일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 317쪽
평소에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버릇인 남편 생각이 절로 나서 밑줄을 성의있게 그었던 부분이다. 이 부분 말고도 남편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시간관계상 패스.
마지막으로 요즘 나의 '밥맛있음'을 장려해주는 <솔직한 식품>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이렇듯 어떤 식품이 몸에 좋은지 나쁜지는 그 사람의 건강상태와 해당 성분의 함유량, 실제 섭취량 등을 면밀히 따져보아야 판단할 수 있다. 몸에 이로운 몇몇 물질을 보고 장점만 이야기하거나 해로운 물질에 주목해서 단점만 이야기하는 것은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두가지 식품이나 성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30쪽
다이어트의 진정한 목적은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만드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필요한 정상 체중을 만들기 위해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건강을 해친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다이어트라고 할 수 없다. 몸무게에만 집착하는 다이어트는 어리석은 일이다. 126쪽
이렇게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 중 하나가 희생양 만들기다. 몇가지 식품이나 성분에 죄를 뒤집어씌우고 그것만 피하면 살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 설탕, 지방, 콜레스테롤, 탄수화물, 밀가루, 정크푸드, 인스턴트 식품 등이다. 134쪽
아주 상식적인 내용은 다시 환기하고 몰랐던 부분들은 받아들이며 읽었는데 문장이 재치가 넘쳐서 많이 웃으며 보았다. 단락별 내용이 짧고 문장도 매끄러워서 전철독서 화장실독서 등 짧은 틈에 읽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