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자기가 사오겠노라고 댈러웨이 부인은 말했다. 루시는 루시대로 해야 알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들도 떼어내야 했고, 럼플 메이어에서 사람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바닷가의 아이들에게나 찾아오던 아침처럼 신선했다. 얼마나 유쾌했는지!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열린책들)

 

 

 

'꽃은 내가 사 와야지, 루시는 할 일이 많아 틈이 없으니까, 돌쩌귀에서 문짝들도 모두 떼어 놓아야 하는데, 그 일로 럼플메이어의 가게 일꾼들이 와 주기로 되어 있긴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멋진 아침일까, 바닷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살랑거리며 불어닥치는 바람처럼 싱그럽지기만 하다.'

댈러웨이 부인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멋있을까? 대기에 몸을 내맡기는 싱그러움이란!

(청목)

 

 

책을 읽을 때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잡은 <댈러웨이 부인>은 그렇다 쳐도 <등대로>까지 내달리고 말았다. 심지어 <밤과 낮>을 몇 장 읽다가 안되겠다 싶어 덮었다. 세 소설이 헷갈리겠다 싶기도 하거나와 물리적인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다. 도서관 책들이 집에 쌓여 있는 것도, 제 도서관으로 각각 반납하는 것도 일로 느껴져서 한동안 도서관을 다니지 않았다. 읽고 미련 없니 버리자?요즘 다시 중고서점에 꽂혀서  신천점에서 구입한 청목의 1994년판 <댈러웨이 부인>. 버릴 작정으로 밑줄을 마구 그으가며 읽었는데, 왠걸 이십여년 전의 책이 종이는 왜이리 좋으며 번역 또한 술술 읽힌다.

 

열린책들의 번역이 아주 깔끔했다면 청목의 번역은 조금 더 의식의 흐름을 살린 맛이 났다. 열린 책들이 그녀의 행위를 정확하게 읽어주는 느낌이라면, 청목은 화자의 생각이 주절주절 흐르듯이 내 뱉어지는 느낌. 둘 다 읽을 만했다. 열린 책들은 다 읽지는 않고 부분만 비교해봤는데 버리겠다고 산 이 책도 못 버리고, 열린책들까지 사게 생겼다.

 

후배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더니 자기는 소설을 잘 못써서 이런 식으로 쓰는 듯한 서툰 느낌이 났다고 했다. 출간 당시에도 평이 갈렸으니 충분히 그렇게도 읽힐 수 있겠지만, 작가의 시대를 앞서가는 의식을 담는 그릇이 기존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소설의 형식으로 담아 낼 수 없었거나, 스타일 자체로도 틀을 깨고 싶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서사를 따라가는 소설들은 그 나름의 이야기의 맛이 있지만 그런 소설들이 갖지 못한, 순간의 별 것 아닌 감정들을 다 건드려 주어서 참 좋지 않았냐고. 모더니즘이란 말은 굳이 쓰지 않았다. 너무 지적이고, 세련된 소설이다. 1924년에 출간되었으니 거의 백여년전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이 동시성의 느낌이라니...20대에 읽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

 

 

 

 

 

 

 

 

주말을 누운 자세로 댈러웨이 부인에게 바치고 나니 병이 나는 느낌이어서 전철을 타고 연신내 알라딘에 다녀왔다. 친구를 만나 잠깐 걷고 연신내 알라딘에 있던 염상섭의 <삼대>를 사 올 작정이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바람이 차고 걸을 만한 날씨가 못되어 괜히, <삼대>를 비롯한 거의 새 책인 한국문학선집을 왕창 지르고 차를 마시고 가벼운 수다를 떨다 돌아왔다. 보태어 오늘의 수확은 절판 된 <영혼의 산1,2>권을 구입한 것이다.

 

 

 

 

 

 

 

 

겨울 여행을 다녀오고 병이 나서 봄에는 카자흐스탄에 야생튤립을 보러 가야겠다고 맘 먹었었는데, 어느 새 튤립이 져 버렸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은 나를 발견했다) 튤립을 보려고 했다면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준비를 했어야 하는 것을 2월 3월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신 없이 지나가 버렸다.

 

뭔가 아쉬워 여행사에 근무하는 친구에서 교토에 벚꽃 보러 가는 상품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는데, 6월 라벤더 피는 시절에 예술기행 가는 상품이 눈에 띈다. 프로방스에 라벤더 필 때 여행은 수 년 전에 검색만 하다 기회가 안 닿았는데, 마침  시인과 동행하는 예술기행을 기획한다니 미술관들도 당연히 들러 보리라 싶어 마음이 훅 당긴다. 세잔, 마티스, 피카소, 샤갈....이라니. 침이 꿀떡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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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3-27 02:08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 부인~학창시절에 봐서 기억도 가물거려 다시 보고 싶네요. 프로방스 라벤더~사진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보고 싶어요!^^

단발머리 2017-03-27 20:13   좋아요 0 | URL
저는 댈러웨이 부인,을 끝까지 못 읽고 포기했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도전해봐야지~~ 하고 있는데 ㅎㅎ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계획은 그렇습니다^^

쑥님~~ 많이 바쁘시지요? 2, 3월도 금방 지나갔다 하시고, 알라딘에도 자주 안 오시고..
꿈섬님도 자주 안 오셔서...
저는 심히 심심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