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랫만에 흠뻑 내린 비.
역시나하루 50페이지 읽기는 무리인가 보다. 잡으면 놓지 못하는 병 때문에 어제는 하루종일 <휴먼스테인> 생각을 했다. 전철에서 읽다가 환승역을 놓쳤고, 밥을 먹으면서도 빨리 집으로 가서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집에 와서는 곯아 떨어졌다. 다른 일들과 다른 책들이 있으니 조금씩 읽어야지 라는 계획?을 세운 것이 부끄럽다. 새벽이 눈이 떠져 책을 펼쳤는데, 이 부분은 기록해두고 싶어서 컴을 열었다.
나중에. 당장에는 그가 자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자신이 정말 자의적인 것인 어떤 인종으로 지정됨으로써 장래가 부당하게 제약받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침착했다면 왜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가, 즉 노예해방령이 내려진 지 팔십 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콜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한 인간들이 너무도 큰 역할을 맡아 좌지우지하고 있는 사회가 마음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장래를 개쳑해나가는 쪽을 택했는지 그녀를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백인으로 행세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에 무슨 잘못 된 점이 있기는 커녕, 자신과 같은 장래의 가망성과 기질과 피부색을 지신 사람이 취했어야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그녀를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죽 그가 원했던 것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사는 것이었다. 흑인으로서도, 심지어 백인으로서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자유롭게.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누구에게든 모욕을 가할 생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이 속한 인종과 그녀가 속한 인종에 맞서 뭔가 항의할 생각도 없었다. 그는 기성품처럼 모든 것에 개성이 없고 융통성이라곤 없어 변화가 불가능한 인습적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결코 옳게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표가 겨우 옳은 행동에 그치는 것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무식하고 증오로 가득한 적대적인 세상이 의도하는 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력으로 어느 정도가 가능할지는 몰라도 자신의 결심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왜 그것이 아닌 다른 조건의 인생을 받아들여야 하지? 224쪽
다른 식으로 끝낼 수 있었다는 것-현실이 단호하게 반대표를 던져버렸던 결말-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잊지 못하고 있었는지에, 그리고 그녀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진 콜먼은, 자신이 읽은 그리스 고전극 말고는 일찍이 한 번도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인생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릴 수 있는지, 운명이라는 게 얼마나 우연에 좌지우지되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과 대면했을 때 운명이라는 게 얼마나 우연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지를 이해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말하자면, 그는 뭐든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자신의 고집스러운 결심이 지닌 어마어마한 중요성을, 만약....만약 그런 일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만 했다면,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긴 했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 상태로 그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