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콩잎을 아는가.
오늘 아침 나의 메뉴는 달랑 콩잎 한 가지였다. 뭐, 애들이 남긴 버섯 몇 조각을 먹긴 했지만, 그건 잔반처리의 수준이었으므로 진정한 나의 메뉴라 말 할 수 없다. 나는 간장에 익히거나 된장에 익힌 깻잎, 콩잎을 좋아한다. 콩잎도 먹어? 또는 저건 완전 낙엽 수준이잖아? 처음 보는 사람은 거의 이렇게 말한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내가 콩잎을 처음 먹은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 때 아버지는 큰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병원과 집이 멀었던 관계로 병원 근처에 살았던 아버지의 지인이 매 끼니 밥을 해서 날랐다. 그 때 하교 길에 병원에 들러 아버지를 보고 가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몫이었을 그 밥을 눈치 없이 꿀꺽하곤 했는데, 그 때 만난 것이 젓갈양념을 한 콩잎이었다.
어머니의 고향에선 콩잎을 먹지 않았던 관계로 우리 집 밥상에 콩잎이 올라 올 일이 없었다. 병원에서 처음 그 콩잎을 맛 본 이래 그 만큼 맛있었던 콩잎은 두 번 다시 먹어 보지 못했지만, 그 콩잎만 생각하면 그 때 밥을 해서 나르시던 그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어린 마음에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후에 시어머니 병간을 위해 병원에서 지내면서 그런 일들이 얼마나 정성이 필요한 일인지 절감하고, 그 분들 생각이 많이 났었다.
그 이후로 난 콩잎의 팬이 되었고, 이제 막 나기 시작한 부드러운 콩잎으로 만든 콩잎 물김치, 간장에 삭힌 콩잎과 노란 단풍이 든 조금은 억센 콩잎으로 만든 젓갈 양념을 한 콩잎을 모두 좋아하게 되었다. 마지막 것은 정말 낙엽 수준이라 씹히는 것은 질긴 섬유질 뿐인데, 이리 오래도록 '맛'으로 기억되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몸에 좋은 음식임에 틀림없다. 언젠가 내 체질 법에 맞는 음식 종류를 일괄 한 적이 있는데, 기가 막히게 내가 싫어하는 음식은 내 체질에 맞지 않은 음식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몇 가지 이유를 더 들어 (친구 생각나면 전화오고..뭐 그런) 내게 신기가 있노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또하나 콩잎에 애정을 느끼는 이유는 콩잎 맺힌 농촌 여인네의 정서 때문이다. 이 표현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콩잎 한 장 한 장에 농촌의 삶이 담겨 있다. 내가 먹은 콩잎만 해도 시누이의 허리 꼬부라진 시어머님이 담궈서 보내 주신 거다. 별거 아닌 풀잎 한 장으로 보이는 콩잎이 식탁에 올라오기 까지, 체험해 보지 않았기에 감히 고생스럽다고 말하기도 주저되는, 그 지난한 노고가 숨어 있음에야 말해 무삼하리..
어찌 되었건, 오늘 아침에 시누네서 얻어 온 이 콩잎을 한 장 한 장 들어올려 눈으로 즐감하며 밥을 먹었는데, 콩잎 한 장 한 장의 모양과 잎맥, 색깔이 장난 아니게 예쁜 거다. 참을 수 없어 마지막 남은 한 장을 하얀 접시에 옮겨 담아 사진을 찍으면서, 시누이의 시어머님에게 감사했다. 그 분 덕택으로 집안에 앉아서도 맛있게 가을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