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랑에 빠졌다. 금사빠라는 단어가 남 얘긴 줄로만 알았는데 요즘 보니 나야말로 금사빠다. 돌이켜 보건대 평생을 두고 금사빠 생활을 해온거다. 나란 인간은. 대상은 세상만물. 그래서 늘 순간순간 행복해서 미치겠다 이런 감정들을 자주 느끼며 살아왔다. 예를 들면 바람에 이는 잔물결, 논두렁의 백로, 갈색과 녹색이 그라데이션 된 나뭇잎 한 장만 봐도.
이틀 전 밤 자기 전에 가벼운 기분으로 얇은 책 한 권을 빼들었다. 필립 로스의 <전락>.로스는 선생님 강의때 자주 들었던 이름. 미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온다면 1순위가 로스다. 절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기대감 없이 읽기 시작. 결국 누운 자세로 다 읽고 설레는 마음으로 리뷰도 찾아 읽고 작가 검색도 하고 잤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로스 책을 뒤지니 <죽어가는 짐승>있어서 단숨에 훅. 더 젊었을 때 읽었다면 이게 대체 뭐야 했을 법한 소재. 지금은 다 허용이 된다. 비록 나는 소질이 없는 분야일지라도 이해는 되는 막 공감해야할 듯한 강박. 또 뒤지니 <미국의 목가>가 있었다. 두 권이라 잠시 망설이다 읽기 시작.결국 2박3일만에 로스의 세 작품을 다 읽었다.
세 작품을 통틀어 삶을 한 번에 꿰뚫는 통찰력. 거침 없음. 나이 들어 본 자가 쓴, 노년의 처절하고 징한 생.명.력. 비록 제목이 미국의 목가이고 20년전 소설이지만 삶 그 자체, 이런 게 공간을 뛰어넘은 현재성과 보편성이겠지. 리뷰를 찾아 읽다가 단발머리님이 쓴 페이퍼를 보았는데, 단발머리님은 읽은 로스책 중 <미국의 목가>를 가장 후순위로 매겨 놓았다. 취향의 문제라해도 <미국의 목가>가 후순위라면 대체 다른 작품은 어떻단 말인가! 지금 기분이라면 어떤 작품을 읽어도 내겐 <미국의 목가>가 1위일 것 같다. 궁극의 인생이 그러하고 지금의 생이 이러할진대...
리뷰들을 읽어보니 내가 하고픈 말들을 다 해놓아서 나는 리뷰를 쓸 것 같지 않지만. 공부하듯 읽고 분석하고 해체하고, 너의 작품은 다 읽어 주리라 싶은 또 한 명의 작가를 만났다. 쿤데라 이후로...또 이렇게 금사빠의 대상이 나타났다.
(행복하다. 행복이라는 말 참 싫어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온 세포가 행복 행복한 걸 어쩌라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