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죠. 어려운 시기에 더 좋았던 것도 있어요. 가족애나 남녀의 사랑이나 애틋함이 더했죠. 모든 일이 지금보다 밀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죠.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이야기와는 다른 거예요. 그때 우리가 서로 아꼈던 것, 사랑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절절했어요. 아마 그때는 사랑만이 삶의 기쁨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죠. 지금은 기쁨을 느낄 것이 달리 많지 않습니까. 129쪽

 

나더러 습작을 안 했느냐, 왜 습작기가 없었느냐 한다면,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실 애 다섯을 낳아서 키우다보면 아무 생각도 못하죠. 애들 어렸을 땐 누구 하나 손톱 깎아달라고 하면 나머지 애들이 다 덤벼요. 애 다섯이면 손톱 발톱 모두 합쳐 백 갭니다. 또 지금은 다들 급식하잖아요. 당시에는 모두 도시락 싸서 다녔어요. 182쪽

 

한 때는, 박완서도 나이 40에 등단했잖아..라는 말을 위로라고 주고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땐 나이 40이 엄청 늦은 나이, 늙어 보였었다. 이제는 40에 등단한 것도 젊은 나이, 한창 파릇할 때 등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에혀.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고 버텨 보려고 하는데, 오늘 엘리베이터 거울에 삐죽이 나온 흰머리들을 보고 있노라니..에혀..나는 화장품 사고 미장원 가고 이런 돈들이 너무 아깝다. 그 돈으로 술을 마시면..속으로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나. 주부라면 쌀이 몇키로..냐 고 해야 되지 않나..그러고 보면 살면서 떳떳하게 나를 주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엄마라거나 아내라거나 하는 단어 앞에서 마찬가지. 재작년에 여성주의 학교 10주 강의를 빡세게 들으면서 겨우겨우 찾아낸 내 정체성은 '시인'이다. '시'를 쓰지 않았고, '시'를 쓰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결과가 나와서 나도 좀 황당했지만, 이제 나는 시를 써보려고 한다. 하하하.....완서님 책을 읽다가 뜬금 이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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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2-19 00:02   좋아요 0 | URL
쑥님, 격하게 공감요^^

2016-02-19 00:04   좋아요 0 | URL
격하게 동지애요^^

2016-02-19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2-19 10:23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살면서 떳떳하게 나를 주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에 밑줄을 그으려다가 생각해보니, 이건 책이 아니구나, 라고 혼자 생각합니다.
떳떳한 주부, 엄마, 아내로 살아보지 못한 제게 위로가 되는 문장이예요.

어제 만나 오래 이야기나누었는대도 또 뵙고 싶은 쑥님~
다음에 만날때는 화장품 안 사고 미장원 안 가도 유지되는 미모의 비결,
꼭 알려주세요~~
 


 

이번 주의 발견이라면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다. 수개월전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삼분의 일쯤 읽고 반납하면서 별 미련을 두지 않았다. (선생님은 일독을 한다는 것은 두 번 읽을지 말지를 가늠하는 것이라고.)  결국 두 번 읽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기대감 없이 다시 펴든 책이 이렇게 재밌다니! 몇 개월의 차이지만 책과의 인연도 타이밍이 있다고 느낀다. 비슷한 경위로 몇 번 들었다 놓았던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기대된다.

"앨리스 먼로는 단편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장편소설 작가들이 평생을 공들여 이룩하는 작품의 깊이와 지혜와 정밀성을 매 작품마다 성취해 냈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반드시 깨닫게 된다." -2009년 <맨부커상> 선정 경위 중에서

 열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앞의 세 편을 제외하곤 무작위로 대여섯 작품을 펼쳐 읽고, 마지막 두 작품을 읽고 나머지는 아껴두었다. 단편 중에서도 짧은 단편들이라 한 편 한 편의 감흥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다. 중고서점 갔다가 눈에 띈 <디어 라이프>를 사두길 잘했다.

또 어제 강의를 듣던 중 `처음 읽을 때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를 보는 것이라면 두 번째 읽을 때는 어떻게 씌여졌나를 보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는데, 먼로의 인터뷰 중 이런 부분과 통한다. ˝저는 독자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놀라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아 이런 표현. 그러니까 먼로는 `순간의 진실을 포착해낸 시적 인간`이다. 고여있는 공간에 살면서 미생물이 포자를 어떻게 공기중에 퍼뜨리는 가를 직관적으로 포착하되,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일지를 쓰듯 꾸준히 밀어 부친 사람. 하루에 일정량을 써야해서 육아기간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인간 적인 사람. 

 

이러구러 이번 주에 같이 읽고 있는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의 박완서 여사는 어떠한가. 먼로 여사와 완서 여사는 31년생 동갑내기이다. 먼로 여사가 고요한 호숫가에 살면서 그만그만한 일상을 포착해냈다면, 우리의 완서여사는 바닷가에 살면서 풍랑을 몹시도 겪어냈던 바 조금 더 스케일이 있는 서사를 구현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을 타고 났다.

 

 

아, 나는 이 이야기를 박완서 여사보다 반세기 먼저 태어나 살다 죽은 버지니아 울프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울프는 여성은 모든 시대를 통해 번번이 그 재능을 좌절당해오기만 했다고 분노하며 "만일 셰익스피어에게 오빠와 똑같은 재주를 가진 누이동생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녀는 오빠만큼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사회의 제약과 여러 가지 여성에 부과된 의무들 - 가령 양말이나 깁고 국이나 끓이는 일상의 덫-에 갇혀 재능이 질식되어버렸거나, 혹은 반항적인 마음으로 가출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결국 자살해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학생들에게 강연했다.

 

자, 나는 버지니아 울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기, 동양의 한국에 한 여류 작가가 있는데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의무(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집안의 주부로서의 의무)를 회피하지도 않고, 또 그것에 억압되지도 않으며, 그런 일을 모두 잘해나가면서도 왕성한 을 하고 있고, 또한 지금까지 여성을 억압해오기만 했던 사회를 향해 오히려 '다정한 회초리'까지 들고 있다고 그리고 그녀는 '여류 작가이기 때문에 느끼는 한계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 26쪽

 

물론 이 인용문의 앞에는 완서여사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걸 옮기진 않겠다. 힌트를 주자면 좀 넘 멋지심이다. 이 인터뷰어인 승희여사님은 내가 대학시절 그토록 끼고 다니며 애정해 마지않던 <태양미사>, <달걀 속의 생>의 시인 김승희이다. 서강대에 한 번 찾아가 볼까, 청강이라도 하고 싶다고 염원해 마지 않던 그 분. 하지만, 나는 저 마지막 단락에 대해서 만큼은 유감을 표한다. 어머니, 아내, 주부로서의 역할이 있다면, 그리고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의무, 인간으로서의 의무다. 여성이기에 져야 하는 의무는 없다. 역할에 대한 의무는 있을지 몰라도.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의무 같은 것은 없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계가 없다라고 말한 부분도 한계를 이미 받아들여서 그것을 한계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계가 없었다면 완서여사님은 스무살에 등단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19년생 도리스 레싱 여사님이 애 버려두고 글만 썼다 비슷한 이야기, 일생동안 일체의 가정사를 거부했다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얘기를 들을라치면 그냥 좋은 것이다. 이게 인간적인 것이지, 육아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는 환타지다. 아 또 사소한 것에 핏대 올릴려고 한다. 그냥 좀 불편했다. 여성의 의무 이런 표현. 마지막으로 또 한 명의 걸출한 31년생 토니 모리슨은 이런 말을 했다. 많이 불편하다.

 

"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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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2-18 05:30   좋아요 0 | URL
이 아침 쑥님의 글을 읽으며 흐뭇해하고 있어요. 쑥님과 마치 대화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제게 말을 걸어주시는 것 같아요.
걸출한 여성 작가들, 모두 멋지다는 생각...그걸 얘기해주시는 쑥님도 멋져요!

2016-02-18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자 2016-02-18 11:32   좋아요 1 | URL
꼬박꼬박 `여류`작가 운운하는 이가 여성의 의무 어쩌구 하는 소리는 그냥 웃기지도 않네요. 자기가 무슨 소릴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
 

멋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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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7 23:21   좋아요 0 | URL
정말 멋있군요. 의미심장하기도 하고요!

2016-02-18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8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학시절 나는 강의시간도 잊은 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곤 했다. 개가식이었던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한껏 골라서 책상에 쌓아두고, 책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의 기분으로 그것들을 읽어치우곤 했다. 이렇게 쓰고 싶지만, 얼핏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이건 명백히 허세다. 암튼, 그래도 조금은 책을 읽었고, 대학시절 읽은 책 중 최고는 망설임없이 <퀴리전기>라고 말 할 수 있다.

 

'공부'에 관한 부분은 지금도 나의 화두인데, 아무리 돌이켜 봐도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부'의 개념 조차 모르는 아이. 그런데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공부'를 붙들고 있다. 책읽기를 '공부'의 범주에 넣어 준다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쓴 책이나 '공부' 많이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전기에 저자가 '공부' 많이 했다는 얘기가 나오면 침을 꼴딱 꼴딱 삼켜가며 재미있어 하는 것이다. <퀴리전기>도 정말 죽을만큼 공부 열심히 하는 마리 퀴리한테 푹 빠져서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지 하면서,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조금도 마리 퀴리를 닮으려 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온더무브>의 표지를 넘기면 모터 사이클 옆에 서있는 폭주족 같은 이미지의 색스 사진이 나온다. 모습은 황야를 질주하는 야인 같은데, 그도 참 도서관과 책을 애정했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을 좋아했다. 물론 그 자신 또한 공부벌레였는데,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독서와 생각하기, 글쓰기를 꾸준히 한 사람이었다. 차를 세워두고 차를 책상 삼아, 길에 서서 메모를 하고 있는 색스의 모습은 감동이다.

 

밑줄 긋기 하려고 서재 페이지를 열었는데, 밑줄 긋기가 아니라 필사를 해야 하는 지경이라 멈춘다. 인생의 명언이나 화두가 많이 나와서가 아니라, 나의 취향적 책이라...베끼다가는 진도를 못 나가겠어서... 그러고 보니 비교적 최근에 읽은 전기들도 다 좋았다.

 

'책'과 '사람'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이 책 < 온 더 무브> 또한 설렘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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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신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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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시간을 들여 신경생리학을 공부하는 일은 재미있었고 심지어 짜릿하기까지 했다. 새로운 세계가 활짝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갈수록 내 인생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는 메이너드 케인스의 《전기 에세이집 》을 체외하고 일반 교양서는 거의 읽지 않았는데, 나 자신의 '전기 에세이집'을 쓰고 싶었다. 단, 의학적으로 약ㄱ나 비틀어서, 흔치 않은 결함이나 장점을 지닌 개인들을 다루되 그런 특성이 그들 삶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요컨대 임상적 전기 말하자면 일롱의 병례사를case history를. 24쪽

 

청각을 주제로 받았을 때는 너무 신이 나서 독서와 생각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작 에세이를 쓸 시간이 없었다. 결국 발표 당일 빈 종이 한 뭉치를 들고 와 넘기면서 보고 읽는 척하며 청각에 관해 '썰'을 풀어나갔다. 어느 순간 카터가 발표를 중단 시켰다.

"방금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시 읽어주겠나?" 조금 긴장했지만 방금 말한 두 문장을 반복했다. 카터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좀 볼 수 있나?" 나는 카터에게 빈 종이 뭉치를 건넷따. "놀랍군, 색스군" 카터가 말했다. "대단히 놀라워, 하지만 앞으로 에세이는 글로 작성해주면 좋겠네."

25쪽

 

부모님이 좋아한 19세기 저작들이 나의 성장 배경이었다면 새뮤열존슨에서 데이비드 흄, 에드워드 기번, 알렉산더 포프에 이르는 17.8세기 거장들의 세계로 입분시켜 준 것은 퀸스칼리스 도서관의 지하서고였다...내가 역사와 모국어의 진정한 가치를 처음으로 배운 곳이 바로 그곳 퀸스칼리지의 지하 서고였다.26쪽

 

우리는 서로 그렇게 다를 수가 없는 사람들인데도 죽이 아주 잘 맞았다. 칼먼은 엉뚱하게 뻗어나가기 일쑤인 나의 연상 능력에 매료되었고,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그의 정신에 매료되었다. 나는 칼먼의 통해 수리논리학의 거장인 힐베르트와 브라우어르를 만났고, 칼먼은 내게서 다윈을 비롯한 19세기의 위대한 자연주의자들을 소개받았다.

 

우리는 과학은 발견이고 예술은 발명이라 생각하지만, 왠지는 몰라도 불가사의하게 과학과 예술 둘 다인, 수학이라는 '제3의 세계'가 있지 않은가? 수(예컨대 소수 素數)는 플라톤의 초시간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리스가 생각한 것처럼 발명되었는가? 파이 같은 무리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또는 -2의 제곱근 같은 허수는? 이런 질문들이 내게는 결실이 없어도 그만인 연습이었지만 칼먼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칼먼은 브라우어르의 플라톤적 직관주의와 힐베르트의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식주의라는, 판이하나 수학적 실재를 상호 보완하는 두 학설을 어떻게든 조화시키고 싶어했다. 29쪽

 

착시도 내게는 매력적인 현상이었다. 이 현상은 지적인 이해, 통찰, 심지어 상식조차 지각 작용의왜곡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깁슨의 반전 안경이 시지각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의식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착시는 지각 작용의 왜곡은 의식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31쪽

 

그는 시의 이미지, 단어, 구절 따위를 몇 달 동안 마음속에 품고 다니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갈고 다듬다보면 완성된 시로 태어나거나 버려진다고 했다. 32쪽

 

우리의 우정은 지속되었고, 더구나 내가 힘겹고 부질없는 갈망을 접어버렸기에 어떤 면에서 관계는 더 편안해졌다. 33쪽

 

크레머는 무엇보다 직관을 중시하여 모든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더 많은 것을 간파했어도 말로 옮기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질리어트는 분석이 우선이어서 어떤 현상이든 한번에 하나씩 보면서 앞선 생리적 변화나 그 각각의 결과를 심도 깊게 파악하려 들었다. 48쪽

 

크레머의 이입 또는 공감 능력은 굉장했다. 그는 환자들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그들이 느끼는 모든 공포와 희망을 아는 듯 했다. 그는 환자들의 동작과 자제를 연극 연출자가 배우를 바라보듯 관찰했다. 그의 한 논문(내가 아주 좋아하는 논문)은 제목이 <앉기, 서기, 걷기>였다. 이 논문은 신경과 검사를 하기 전에, 아니 환자가 입을 열기 전에 이미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이해했는지를 보여주었다. 48쪽

 

의료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50쪽

 

"선망 받는 직업이요?" 나는 씁쓸하게 내뱉었다. "남이 선택해준 거죠. 지금 제가 원하는 건 방랑하고 글쓰는 것뿐이에요. 어쩌면 한 일 년 벌목꾼으로 살아볼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64쪽

 

내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인 레잉은 정신분열증을 일개 질병이 아닌 하나의 총체적, 나아가 특권적 존재 양식으로 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형은 정신분열증이 없는 사람들이 "썩을 정상인"(이 신랄한 표현에는 어마어마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이라면서 세계를 형 자신과 나머지로 구분하곤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레잉의 "낭만주의"는 넌더리가 난다면서 그를 약간 위험한 멍청이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스물일곱 생일에 잉글랜드를 떠날 때는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희망 잃고 방치된 애처로운 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마음이 내 환자들에게서 내 방식으로 정신분열증과 뇌-정신 장애를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낳았으리라. 81쪽

 

톰은 어서 오라면서 맥주를 내주었고, 왜 그렇게 자기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물었다. 나는 그저 그의 많은 시가 내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톰은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어느 시가 그랬냐고, 어떤 면에서 그랬느냐고 물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시는 <온 더 무브 on the move>였다. 나도 모터사이클 타는 사람이라서 바로 공감이 되었으며 몇 해 전 T.E. 로런스(1988~1935)의 짤막한 서정시 <길The Road>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고 말했다. 또 <정처 없는 모터사이클리스트가 바라보는 자신의 죽음>이라는 시가 좋았고, 로런스처럼 나 역시 바이크를 타고 가다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했다.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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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2-16 12:13   좋아요 0 | URL
요즘엔 제가 쑥님의 글 읽는 재미에 쏙 빠져있어요.
어떻게.....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알라딘에 글을 안 쓰신 거야요~~ㅎㅎ

쑥님 글을 읽게 되서 좋구요.
쑥님이랑 필립 로스 이야기할 때 너무 좋아요.
스터디 모임은 진짜 안 되지만서도, 이렇게 필립 로스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사람들이 그래서 팬클럽에 가입하나봐요.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서요.
목요일에 뵈요, ㅎㅎㅎ
좋아요 100개를 여기 남기고 저는 빨래 널러 갑니다. *^^*

2016-02-16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16 18:26   좋아요 0 | URL
쑥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온더무브, 라고 읽으니 온더로드가 생각나는 건 왜인지.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더니 급 피곤해져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삼분의 일 읽고 자는 것을 목표로 읽기 시작.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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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5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