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나는 강의시간도 잊은 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곤 했다. 개가식이었던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한껏 골라서 책상에 쌓아두고, 책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의 기분으로 그것들을 읽어치우곤 했다. 이렇게 쓰고 싶지만, 얼핏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이건 명백히 허세다. 암튼, 그래도 조금은 책을 읽었고, 대학시절 읽은 책 중 최고는 망설임없이 <퀴리전기>라고 말 할 수 있다.
'공부'에 관한 부분은 지금도 나의 화두인데, 아무리 돌이켜 봐도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부'의 개념 조차 모르는 아이. 그런데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공부'를 붙들고 있다. 책읽기를 '공부'의 범주에 넣어 준다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쓴 책이나 '공부' 많이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전기에 저자가 '공부' 많이 했다는 얘기가 나오면 침을 꼴딱 꼴딱 삼켜가며 재미있어 하는 것이다. <퀴리전기>도 정말 죽을만큼 공부 열심히 하는 마리 퀴리한테 푹 빠져서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지 하면서,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조금도 마리 퀴리를 닮으려 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온더무브>의 표지를 넘기면 모터 사이클 옆에 서있는 폭주족 같은 이미지의 색스 사진이 나온다. 모습은 황야를 질주하는 야인 같은데, 그도 참 도서관과 책을 애정했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을 좋아했다. 물론 그 자신 또한 공부벌레였는데,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독서와 생각하기, 글쓰기를 꾸준히 한 사람이었다. 차를 세워두고 차를 책상 삼아, 길에 서서 메모를 하고 있는 색스의 모습은 감동이다.
밑줄 긋기 하려고 서재 페이지를 열었는데, 밑줄 긋기가 아니라 필사를 해야 하는 지경이라 멈춘다. 인생의 명언이나 화두가 많이 나와서가 아니라, 나의 취향적 책이라...베끼다가는 진도를 못 나가겠어서... 그러고 보니 비교적 최근에 읽은 전기들도 다 좋았다.
'책'과 '사람'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이 책 < 온 더 무브> 또한 설렘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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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신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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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시간을 들여 신경생리학을 공부하는 일은 재미있었고 심지어 짜릿하기까지 했다. 새로운 세계가 활짝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갈수록 내 인생에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는 메이너드 케인스의 《전기 에세이집 》을 체외하고 일반 교양서는 거의 읽지 않았는데, 나 자신의 '전기 에세이집'을 쓰고 싶었다. 단, 의학적으로 약ㄱ나 비틀어서, 흔치 않은 결함이나 장점을 지닌 개인들을 다루되 그런 특성이 그들 삶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요컨대 임상적 전기 말하자면 일롱의 병례사를case history를. 24쪽
청각을 주제로 받았을 때는 너무 신이 나서 독서와 생각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작 에세이를 쓸 시간이 없었다. 결국 발표 당일 빈 종이 한 뭉치를 들고 와 넘기면서 보고 읽는 척하며 청각에 관해 '썰'을 풀어나갔다. 어느 순간 카터가 발표를 중단 시켰다.
"방금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시 읽어주겠나?" 조금 긴장했지만 방금 말한 두 문장을 반복했다. 카터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좀 볼 수 있나?" 나는 카터에게 빈 종이 뭉치를 건넷따. "놀랍군, 색스군" 카터가 말했다. "대단히 놀라워, 하지만 앞으로 에세이는 글로 작성해주면 좋겠네."
25쪽
부모님이 좋아한 19세기 저작들이 나의 성장 배경이었다면 새뮤열존슨에서 데이비드 흄, 에드워드 기번, 알렉산더 포프에 이르는 17.8세기 거장들의 세계로 입분시켜 준 것은 퀸스칼리스 도서관의 지하서고였다...내가 역사와 모국어의 진정한 가치를 처음으로 배운 곳이 바로 그곳 퀸스칼리지의 지하 서고였다.26쪽
우리는 서로 그렇게 다를 수가 없는 사람들인데도 죽이 아주 잘 맞았다. 칼먼은 엉뚱하게 뻗어나가기 일쑤인 나의 연상 능력에 매료되었고,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그의 정신에 매료되었다. 나는 칼먼의 통해 수리논리학의 거장인 힐베르트와 브라우어르를 만났고, 칼먼은 내게서 다윈을 비롯한 19세기의 위대한 자연주의자들을 소개받았다.
우리는 과학은 발견이고 예술은 발명이라 생각하지만, 왠지는 몰라도 불가사의하게 과학과 예술 둘 다인, 수학이라는 '제3의 세계'가 있지 않은가? 수(예컨대 소수 素數)는 플라톤의 초시간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리스가 생각한 것처럼 발명되었는가? 파이 같은 무리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또는 -2의 제곱근 같은 허수는? 이런 질문들이 내게는 결실이 없어도 그만인 연습이었지만 칼먼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칼먼은 브라우어르의 플라톤적 직관주의와 힐베르트의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식주의라는, 판이하나 수학적 실재를 상호 보완하는 두 학설을 어떻게든 조화시키고 싶어했다. 29쪽
착시도 내게는 매력적인 현상이었다. 이 현상은 지적인 이해, 통찰, 심지어 상식조차 지각 작용의왜곡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깁슨의 반전 안경이 시지각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의식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착시는 지각 작용의 왜곡은 의식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31쪽
그는 시의 이미지, 단어, 구절 따위를 몇 달 동안 마음속에 품고 다니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갈고 다듬다보면 완성된 시로 태어나거나 버려진다고 했다. 32쪽
우리의 우정은 지속되었고, 더구나 내가 힘겹고 부질없는 갈망을 접어버렸기에 어떤 면에서 관계는 더 편안해졌다. 33쪽
크레머는 무엇보다 직관을 중시하여 모든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며, 더 많은 것을 간파했어도 말로 옮기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질리어트는 분석이 우선이어서 어떤 현상이든 한번에 하나씩 보면서 앞선 생리적 변화나 그 각각의 결과를 심도 깊게 파악하려 들었다. 48쪽
크레머의 이입 또는 공감 능력은 굉장했다. 그는 환자들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그들이 느끼는 모든 공포와 희망을 아는 듯 했다. 그는 환자들의 동작과 자제를 연극 연출자가 배우를 바라보듯 관찰했다. 그의 한 논문(내가 아주 좋아하는 논문)은 제목이 <앉기, 서기, 걷기>였다. 이 논문은 신경과 검사를 하기 전에, 아니 환자가 입을 열기 전에 이미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이해했는지를 보여주었다. 48쪽
의료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50쪽
"선망 받는 직업이요?" 나는 씁쓸하게 내뱉었다. "남이 선택해준 거죠. 지금 제가 원하는 건 방랑하고 글쓰는 것뿐이에요. 어쩌면 한 일 년 벌목꾼으로 살아볼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64쪽
내과 의사이자 정신과 의사인 레잉은 정신분열증을 일개 질병이 아닌 하나의 총체적, 나아가 특권적 존재 양식으로 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형은 정신분열증이 없는 사람들이 "썩을 정상인"(이 신랄한 표현에는 어마어마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이라면서 세계를 형 자신과 나머지로 구분하곤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레잉의 "낭만주의"는 넌더리가 난다면서 그를 약간 위험한 멍청이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스물일곱 생일에 잉글랜드를 떠날 때는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희망 잃고 방치된 애처로운 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마음이 내 환자들에게서 내 방식으로 정신분열증과 뇌-정신 장애를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낳았으리라. 81쪽
톰은 어서 오라면서 맥주를 내주었고, 왜 그렇게 자기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물었다. 나는 그저 그의 많은 시가 내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톰은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어느 시가 그랬냐고, 어떤 면에서 그랬느냐고 물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시는 <온 더 무브 on the move>였다. 나도 모터사이클 타는 사람이라서 바로 공감이 되었으며 몇 해 전 T.E. 로런스(1988~1935)의 짤막한 서정시 <길The Road>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고 말했다. 또 <정처 없는 모터사이클리스트가 바라보는 자신의 죽음>이라는 시가 좋았고, 로런스처럼 나 역시 바이크를 타고 가다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했다.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