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파리를 많이 걷고 사랑했으며 파리를 독특한 시각으로 연구한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세계의 어떤 도시도 파리만큼 책과 내밀하게 연결된 도시는 없다. 왜냐하면 수세기 전부터 센 강에는 학문의 담쟁이 덩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파리는 센 강이 가로지르는 도서관의 거대한 열람실이다. ... 가장 완성된 형태의 산책, 가장 행복한 산책은 책을 향한 산책이고 책 속으로의 산책이다." 벤야민의 말대로 파리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라면 파리를 걷는 일은 그곳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 읽는 일과 같다.

 

프랑스혁명 이후 근대의 문학과 예술, 사회과학과 사회운동은 모두 파리하는 도시에서 꽃을 피웠다.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가 아니라 유럽의 수도였고, 근대성의 수도이며 19세기의 수도였다. 그러기에 19세기 유럽의 근대문명을 알기 위해서는 파리를 알아야 하고, 파리를 알기 위해서는 파리를 걸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1980년대 파리에 와서 사회학을 중심으로 하여 오늘날 세계로 확산된 근대문명과 근대사회의 핵심을 탐색했다. 그때부터 나는 전공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의 지적 관심을 충족시키는 다른 학문 분야에도 못지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파리의 자유로운 지적 분위기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나의 인문학적 관심을 자극했다....파리를 하염없이 걸으며 파리에 대한 정보와 지식, 느낌과 생각들이 쌓이면서 파리 산책기 한 권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두번째 파리 생활 7년 만에 이 책을 썼다.

 

이 책에는 파리에 대한 책들 속으로 산책하면서 내가 찾아낸 사실과 정보들이 파리를 직접 내 발로 걸으며 느끼며 생각한 것들과 함께 녹아 어우러져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말하자면 '파리 걷기'와 '파리 읽기'가 상호작용을 하며 만들어낸 사회학자의 인문학적 파리 산책기라고 할 수 있다.10~11쪽 <파리를 생각한다>

 

사랑은 두려운 삶을 건너는 방법이다

하나의 성냥을 켜서 꺼지는 순간의 길이, 얼마나 될까? 세 개비의 성냥불만큼의 시간, 어쩌면 우리가 사는 시간의 길이는 아닐까?  인생은 그토록 짧고 허망하다.

 

 더구나 막심 고리키의 <어느 가을날>에 흐르는 인생도 슬프고 춥고 아프다. 남자는 젊은 시절 세상을 구원할 꿈으로 가득해 있었다. 그러나 주머니에는 동전 한 잎 들어 있지 않았고, 입고 있던 옷가지들도 팔아버려 추위에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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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별거 아니다. 성냥불이 켜졌다가 꺼지는 그 짧은 순간, 황홀하게 타오르는 불빛 아래 오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인생의 모든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만이 두려운 삶을 건너는 방법인지도, 난해한 인생문제지의 유일한 답안인지도 모른다. 222쪽 <사랑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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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머리에 흰머리가 보이면 그렇게 싫었다. 염색 시기를 조금만 놓쳐도 허연 머리가 다발로 보이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거울을 대충 보기에 내 머리에 흰머리를 발견하지 못해도 친구머리는 잘 보이는 탓도 있었다. 아직은 내 눈에 여고생 같아 보이는 친구가 저렇게 흰머리를 얹고 있으니 엄마 늙는 것이 싫은 것 처럼 친구 늙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싫은 탓도 있었겠다.

 

암튼 친구에게 빨리 염색을 하라는둥 너무 보기 싫다는 둥 잔소리를 다발로 해대었다. 한 때 나도 흰머리가 눈에 띄면 자신감 급감, 되도록 빨리 염색을 하러 달려가곤 했었다. 그런데ㅡ 요즘의 나는 미장원에 안간지 4개월이 넘어 커트머리가 제대로 길었고, 염색도 그만큼 안했으니 흰머리가 다발로 눈에 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요즘은 흰머리가 보이는 게 좋다. 흰머리가 더 많이 났음 좋겠다. 이정도로 성에 안찬다. 흰머리야 더 많이 나거라.

 

무슨 책을 걸지?하고 잠깐 생각하니 떠오르는 책이 바로 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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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3-24 07:18   좋아요 0 | URL
2*1=2, 2*2=4, 2*3=6 ㅎㅎㅎ
 

시인이 세상을 향해 보여주고 싶을 때, 이를테면 나무라든가 구름, 당나귀 같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을 때, 그 보여주기의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그냥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는 나무이고 구름이고 당나귀이다. 나무는 말하지 않고 구름은 노래하지 않으며 당나귀는 문자를 쓰지 않는다.

 

말 없음, 노래 없음, 문자 없음이 그들의 존재방식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전에는 나무였다가 사람이된 사람, 전에는 구름이었다가 사람이 된 사람, 당나귀였다가 사람이 된 사람임을 세상에 보여주자면, 그는 말, 노래, 문자 없음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나무, 구름, 당나귀 - 아니, 시인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럴 수 없다. 나무는 봄에 잎사귀 내고 가을에 그새 잎 떨구어 나무임을 말하고, 구름은 다시 끌어올리면서 뭉게구름, 실구름, 먹구름의 노래로 구름임을 말하고, 옛날에는 소금 짐 지다가 지금은 아무 짐이나 등짝에 얹히는 대로 지고 다니는 당나귀는 짐 짐으로써 당나귀임을 말한다. 그러나 시인으로 환생한 나무, 구름, 당나귀는 사람 꼴로 살아야 하는 그 꼴값 때문에 잎을 내지도, 비를 뿌리지도, 소금 짐을 지지도 못한다. 그는 말로 소리로 노래하고 문자로 써야 한다. 그는 전에는 나무, 구름,당나귀였다가 사람이 된 사람, 지금은 사람이지만 또 한 바퀴 돌아 필시 소쩍새, 은초롱, 돌고래로 다시 태어나야 할 목숨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17쪽~18쪽

첫 페이지를 읽는데,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가 '시인은 숲으로 가야만 한다'로 읽힌다. 써지지도 읽어지지도 않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쓰는 시늉을 하고, 읽는 시늉을 하니 하루하루 살아는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늉이라도 내 보는 것, 거기에 삶의 의미가 있는 걸로. 긍정적으로 살아 보는 걸로.

 

(이 기시감은 뭐지?라고 생각하니, 며칠 전 단발머리님 페이퍼와 어제 강의...ㅎㅎ, 내가 글치 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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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6-03-23 09:42   좋아요 0 | URL
폰으로 북플의 글들을 읽다가 제대로 읽고 싶어서 로긴해서 들어왔어요.
요즘 웬만하면 책을 새로 들이는 일은 자제하려고 알라딘 서재 마실도자제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러시면 도리가 없잖아요.
아래 글들도 연결하여 잘 읽고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꾸벅~(__)

2016-03-23 21:07   좋아요 0 | URL
어제 <시작은 키스>리뷰 잘 읽었습니다. <소설, 때때로 맑음>에 나와서 읽고 싶은 책에 담았더니, 님의 리뷰가 떴어요. 늘 감사합니다...꾸벅~!!

서니데이 2016-03-23 18:19   좋아요 0 | URL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쑥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2016-03-23 21:08   좋아요 1 | URL
오늘 좀 추웠죠? 내일은 더 춥다고 합니다.
봄철 건강 잘 챙기시구요^^
 

안개가 꼈고 황사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한 봄날이었어요.
저는 간식 조금 먹고 잡니다.

오늘의 책은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소설 때때로 맑음>
<은둔자>
아침에 일어나면 밑줄긋기 좀 할게요.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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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시절 몸 담았던 언론계의 선배들 중에 심연섭 선생은 잊히지 않는 분의 하나이다. '국제국장'시절의 그가 아침 출근과 동시에 국장석에 앉아 맨 먼저 하는 일은 맥주병 마개부터 따는 일이었다. 수습기자들에게 통행금지 시간까지 술을 퍼먹인 다음 이튿날 아침 비실대며 늦게 나오는 올챙이들을 혼내는 것은 그의 유명한 훈련법이었다. 가끔 그는 여름날 부하들을 몰아 산에 가자 해놓고 막상 산자락에 당도하면 "양반이 땀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 갈 수 있나? 그건 하인들이나 시키지"라며 계곡에 어죽솥을 걸어 우리더러 불 때게 해놓고 자기는 웅덩이 물속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물에 듭실 적의 심연섭 행색 보소, 머리에는 '도리우찌' 쓰고 입에는 '청자'담배 피워 물고 볼록한 술배를 웅덩이에 담근 다음 치느니 개헤엄이라. 영락없이 그것은 양반이 개헤엄을 친다는 순수한 모순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개헤엄에도 위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서 보았다. 도리우찌 쓰고 담배 연기 뿜으며 개헤엄을 치면서도 담배불이 물에 젖어 꺼질세라 온갖 정성을 다하는 그의 수중 운신법은 보통 품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는 그 담뱃불을 지키기 위해 물속에서 은근히 필사적이었는지 모른다. 양반이 땀 흘릴 수 있나. 하인들이나 시키지, 하던 그 심선배는 세상 뜰 때까지도 자기 집 한 채가 없었다. 선비였고, 정신의 귀족이었을지언정 결코 '재물과 권세의 양반'이 아니었던 그는 비록 개헤엄으로라도 불을 꺼트리지 않는 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름날 우리를 북한산 골짜기로 몰아갔던 것일까? 아니면 개헤엄을 쳐서라도 지킬 불은 지키는 것이 이 시대 선비의 도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불이 고작해야 가난한 담뱃불일 때에도? 10쪽 초판 서문 중에서

 

 

 

세상에 나왔더니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몇 달 전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뜬 뒤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성 뿐아니라 이름까지 그대로 물려받아 알렉상드르 예르생이라 불렸다. 1863년 태어나 1943년 여든 살에 숨을 거둔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에게 이름을 물려 주었다.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는 악명 높은 흑사병을 일으키는 세균의 학명이다. 한때 유럽인 셋 중 하나의 목숨을 앗아갔던 역병을 통해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 그 어느 전쟁이나 자연재해보다도 무자비했던 이 균을 추출하여 치유의 길을 열었던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12년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드빌이 발표한 <페스트와 콜레라>는 그의 삶을 그린 일종의 전기 소설이다. 이 작품은 모든 문학상의 후보 목록에 올랐고 마침내 <페미나상>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일곱개의 문학상 수상작들 중에서 다시 한 편을 골라 수여하는 <문학상의 문학상>이라는 묘한 상도 받았다. 거칠게 요약하면 2012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420여편의 소설 중에서 신정된 일곱 편의 수작을 대상으로 다시 한 편만을 고르는 상중상을 받은 셈이다. 무심한 서점 직원이 의학서 코너에 꽂을 법한 제목이지만 한 해 문학농사의 대표 작물이라니 궁금하다.

 소설가나 시인, 아니면 화가, 음악가의 생애를 그린 예술가 소설은 흔한 데 비해 대중에게 생소한 분야의 인물이 소설화된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작가는 "시와 마찬가지로 과학도 광기에 가깝다"고 한다. 과학 분야의 뒷이야기로는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이 인상적이지만 화자가 곧 이야기의 당사자인 <이중나선>은 굳이 따지자면 소설이 아니라 자서전에 속한다. <페스트와 콜레라>는 출생부터 사망까지 한 인물의 삶을 추적하지만 서술의 순서는 딱히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지 않는 터라 설명의 편의상 우선 시간 순서에 따라 예르생의 삶을 정리해보자.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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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의 광고 문안은 믿지 않는 편이지만, "혜성처럼 등장해 전설이 된 비평의 부활" 인문학자 도정일의 첫 문학에세이. 22주년 개정판. 이라는 제목만으로 구입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와 첫 부분을 읽고 반해서 빌려 온 <소설, 때때로 맑음>을 오늘 읽으려고 한다. <소설, 때때로 맑음>은 지난 주에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아서 잠시 숨고르기 중이었고,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오늘 처음 읽기 시작하는 책. 아침에 시간이 남아 첫 부분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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