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첫사랑 ㅣ 문지 스펙트럼
사무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사랑]
By Samuel Bechett
난해하다. 해체주의적이고 범접하기 힘든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기분이었다. 분리되고 재조립된 문장들과 박살이 나버린 문법 사이에서 수많은 질문들과 철학이 느껴졌지만, 내가 다 온전히 받아들였는지는 솔직히 확신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 안에서 그는 떠밀려간 사람, 떠도는 사람 머릿속을 헤집으며 나에게끔 왜 라는 질문을 던졌다. 수동적으로 나를 붙잡고 플롯 사이사이를 유려하게 끌고가는게 아닌, 날 더러 알아서 이 위치까지 찾아오던가, 아니면 뭐 말아도 되고. 라고 쿨하게 던져둔 기분이었다. 한 번쯤은 경험해보라 주변에 추천해보고 싶다.
“여러 해 동안 나는 그 소리가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한테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사랑, 그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나는 바다의 수평선이나, 사막의 지평선을 원했어야 했다. 내가 밖에 있을 때면, 아침에는, 태양을 맞이하러 가고, 저녁에는, 내가 밖에 있을 때면, 태양을 따라 망자들의 집에까지 간다.”
“게다가 키 작은 풀들은 밟혀도, 공기와 빛만 있으면, 금세 다시 일어서고, 줄기가 꺾여도, 그 자리를 메꿔줄 다른 풀들이 워낙 금세 자라나니까.”
“그들은 다른 내 옷가지들과 함께, 그것들을 태워버렸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드디어, 곧, 정말로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할 뻔했던 이야기를, 말하자면 끝낼 용기도 계속할 힘도 없었으면서 할 뻔 했던, 내 삶을 본뜬 그 이야기를 아무 미련 없이 어렴풋이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