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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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걸]
By Hope Jahren

현재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시민 씨가 이 책을 방송에서 추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연구를 하는 딸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고 했는데, 그 안에서 상당히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모든 여성 과학자를 대변한다고 말 할 수는 없더라도 감히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나아가 많은 과학자들이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식물에 비유하여 풀어 놓았다고 말 할 수 있다. 실험 결과를 도출하기까지의 그 지지부진한 과정들과 처참한 실패, 학계 내의 상당한 성차별, 끝없는 밤샘, 그 끝에 찾아오는 “이 세상에서 이 현상을 나만 알고 있다는 그 대단한, 나 자신이 무척이나 의미 있다는” 그 느낌. 이 책은 마치, 내가 지금 근 몇 년간 살아온 길,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청사진을 내 앞에 펼쳐놓고 내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작가만큼, 대단한 과학자가 아니며, 학계에 남을 생각은 없으므로 자세한 방향은 다를 수 있겠으나, 나보다 이 연구라는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의 이야기는 분명 나에게 상당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호프 자런이라는 과학자의 삶의 압축요약본이자,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앞으로 살아갈 과정이며, 과학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분야 내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안내서와 같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우리 모두 일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끝까지 하는 일에 정말로 통달하지도, 끝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좀 비극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무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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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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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By Margaret Atwood

심란하다. 이 책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그레이스의 유죄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녀는 30년에 달하는 억울하거나 혹은 당연한 수감생활 이후 종적을 감춰 버렸고, 나는 이 흡입력 강한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조금 어려워 하고 있다. 유죄 여부를 떠나서도 다양한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레이스 체포 당시만 해도 아직 이중인격이라는 정신질환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가, 그녀가 석방될 때에는 상당히 활발하게 연구가 되고 있었다. 마가렛 애트우드가 풀어내고 있는 이 이야기로만 판단하자면 그레이스 마크스는 이중인격이었을 가능성도 확실히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레이스에 관한 증언들이 여럿 엇갈리고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 그녀가 그렇게 똑똑했다면 그 마저도 말 그대로 연기였을 수도 있겠다. (연기 였다면 심령의 씌인 상태, 정도로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중인격으로 인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범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가도 또다른 쟁점이다. 정신병에 의해 행해진 범죄는, 책임의 크기가 과연 덜한 걸까, 범죄를 저지르고자 했던 의지의 무게는 과연 다른걸까. 그럼 우리는 그에 관해 어떻게 조치를 해야하는가. 생각과 고민, 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이 책은 정말 잘 써진 소설이라고 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흡입력이 정말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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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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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By 에쿠니 가오리

햇볕이 따가우리라 만치 강한 여름 날에 빛이 반짝이며 반사되는 개울물에 몸을 흐르듯이 맡기고 멍하니 있는 기분. 마치 그런 청량감과 편안함, 그리고 ‘흐름’이라는 느낌이 들게하는 단편집이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야기되는 이 단편들은, 내용과는 별개로 어딘가 모르게 편안한 구석이 있다. 오히려 내용은 그로테스크하거나, 비일상적이고, 독특하다 싶은 부분도 있는데, 그런 기색이 누그러트려지는 묘한 흐름이 존재하는 책이다.
‘뭐하니? 지나가던 어른이 그렇게 말을 걸어와도 달리 대답할 길이 없었던 것을 시나는 기억한다.딱히 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심하다거나 지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온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팔과 다리에 그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시나는 흠칫 놀랐다. 늦 여름 해 질 녘의 이 색채, 이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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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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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By Maeve Binchy

포근한 담요를 허리 바로 위까지 끌어 올려 안락한 소파에 몸을 폭 하고 기대서는, 따듯한 차를 한 잔 곁들이며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때가 마침 늦여름의 장대비가 쏟아지는 시기여서, 서늘한 바람이 조금이나마 다행이라고 느꼈을 정도였다. 이 책은 한 여자가 어린 마음에, 한 남자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 자신의 고지식하고 답답한 고향으로부터 그와 함께 도망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많은 사랑의 도피가 그러하듯 불꽃이 식고난 그 이후, 그녀는 열심히,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다른 많은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 준다. 그녀는 성실하고, 따듯하지만 과하게 참견하지 않고, 다양한 사연을 묵묵히 들어준 뒤 차분하게 그녀의 고견을 고르고 골라 도와준다. 하지만 그녀의 도움 안에서 말의 역할은 그렇게 크지 않다. 따듯하고 간결한, 현실적인 조언들 틈 사이에 그녀가 사랑하는 아일랜드 서부의 한 마을이, 그녀의 마음을 품어주던 그 바다가, 그리고 역사가 곳곳에 서려있는 그 스톤하우스가,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품고 보듬어 준다. 겨울이 되고 마음이 쓸쓸하고 확신이 부족해지고 힘들어질 때쯤, 다시 꺼내서 담요에 폭 파묻혀 다시 이 책을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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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아말리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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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아말리아]
By Pascal Quignard


그녀는 늘 떠난다. 그녀의 발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는 부동의 슬픔, 죽음이 남는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나버린 것처럼, 그녀도 감당이 되지 않는 하나의 삶을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새로 찾아낸 이탈리아의 작은 섬 위의 ‘빌라 아말리아’는 그녀를 빨아들여 그녀에게 전에 없던 행복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얼마 가지 못해 어린 한 아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깨져버리고, 그녀는 다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그 모든 과정 중에 그녀가 언제든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던 브르타뉴의 그녀의 어머니, 욘 강변의 조르주는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갑작스레 다시 나타난 아버지는 그녀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그녀는 또다시 외로운 고독으로 빠져든다. 모든 것을 내려두고 도망치기엔 일상을 등지기 두렵고,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도, 그녀는 다시금 떠나고, 작업에 몰두하고, 그녀의 음악에 모든 것을 쏟아 넣는 작업을 반복한다. 고독은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하면서도 그녀를 길들이고, 그녀 안의 음악을 끄집어 내 작품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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