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섬들의 지도 -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권상희 옮김 / 눌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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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섬들의 지도]
By Judith Schalansky

나는 이 책을 구매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 것을 살짝 후회하는 중이다. 이 책은 한 번씩 일상이 힘겹고 스트레스의 무게가 짓눌릴 때마다 한 페이지 혹은 두 페이지씩 읽으면 좋을 법한 책이다. 동독이 아직 서독과 통일 되기 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었던 작가는 지도를 통해 위안을 얻고는 했는데, 그 위안을 지금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신체적인 자유는 있으나 시간적인 여유는 없는 나에게 전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색깔이 구분된 지도나 현실 반영을 위해 뒤틀린 지도들이 아닌, 그저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아마 내가 평생 가볼 수 없을 그 섬들의 지형과 간략한 소개들이 왜 이리도 마음에 평화를 주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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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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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By Roberto Bolaño

책 전반에 모순이 흐른다. 사제이지만 시골의 지저분한 풍경과 일반 농민들을 못견뎌하는, 내려다보는 화자, 국내와 해외 작가들에게 공평한 잣대를 내밀지 못하는 사대주의 평론가이면서 국내의 문학이 빛을 잃고 사라져간다는 이 화자는 전체 책을 통해 스스로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 모순을 한 ‘늙다리 청년’에 녹여낸다. 그 늙다리 청년은 늘 그의 모순된 마음 속에 존재해왔고, 죽을 때에 되서야 그 존재가 사라져 그는 그 안의 그 상반되는 생각들과 감정에 괴로워하며 죽는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고고한 척, 평민들에게 다가가려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도 문학에는 관심이 없으며, 칠레인들이 무지하여 그들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끔찍해 한다. 이런 모순을 독재정권이라는 배경 안에 녹여내며 작가는 문학의 가치와 문학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역설적으로 꼬집어 낸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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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방정식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6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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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의 방정식]
By 히가시노 게이고

나는 로맨스 소설보다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뭔가 난제를 던져 주고, 주로 형사나 경찰 등이 하나씩 정보를 수집해올 때, 나도 책 너머에서 관망하며 사건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고민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작가 본인이 공대 출신이라 그런지, 과학과 공학을 접목해서 사건을 만들고 풀어나가는 재미가 특히 돋보이는데, 그 중 ‘라플라스의 마녀’와 이번 ‘한 여름의 방정식’은 유독 더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중반부까지는 많은 문제들과 서로 연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듬성듬성 놓여져 있다가, 그걸 마지막에 하나로 연결해나가는 재미가 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스토리도 베일 뒤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단순 과학추리소설 마니아만 읽을 책이 아닌,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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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춤집에서 매그레 시리즈 11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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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춤집에서]
by Georges Simenon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반장 시리즈는 이동 중에 가볍게 2시간 정도를 들여 빠져들어 읽기에 가장 적합하다. 심농의 추리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소설들처럼 치밀하고 번뜩이지는 않아도, 단순하고 묵직하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맛이 있다. 짧고 간결하되, 진부하다할 만큼 전개가 뻔하지는 않고, 늘 '죄인'에게 다른 이면과 필연성, 인간적인 면모등을 부과해 책의 끝 부분에 다다를 때 쯤이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경향이 있다.
심농의 추리소설을 네,다섯 편정도 읽고나니 드는 생각이, '센 강의 춤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는 비열하고 야비한 죄인이 대부분일지는 몰라도 메그레가 묵묵하게 체포하면서도 끝끝내 찝찝함을 떨치지 못하고 체포하는 '이 죄인들'은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 스스로를 좀 먹으며 심판을 기다리다 마지막에 이르러는 오히려 평온하게 그 죗값을 받아들이고 치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나, 뭐랄까, 메그레 반장이 느끼듯 이럴 땐 뒷맛이 찝찝한, 그런 불운에 휘말리지 않아 주어진 이 일상을 감사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 들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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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죽은 그녀
로사 몰리아소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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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을 뜨끔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모든 것이 빠른 이 세상에서 점점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만 급급해 남들에겐 점점 무관심해지고, 설령 관심이 생긴다 한들 타인이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질 번거로움에 외면하게 된다. 이는 아마 하늘에서 갓 내려온 천사가 아닌 이상 우리도 크든 작든 한 번쯤 겪어봤을 수 있는 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흠칫 놀라고 공감의 미소를 던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동정심과 호기심이 뒤섞여 바라보다가도, 용기 있게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 법이다. 괜한 오해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방치하자니 드는 죄책감. 많은 이들이 그 사이에서 고민해봤을 것이다. 아름다운 시체를 보고 지나친 4명의 사람들도, 휘말려 들까 두려워 순간 지나치지만, 결국 이면에 드는 죄책감 때문에 다시금 그 장소를 찾고, 자신의 삶을 다시 계속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니 최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그런 한켠의 죄책감과 관심이 남아 있다. 난 책을 다 읽고 나서 어젯 밤, 주차장 한 켠에 놓인 쓰레기를 보고 들고가서 버리고 싶지만 뭔가 오염되어 있을까봐 걱정 되 결국 그대로 두고 온 내 생각이 났다. 오염이라는 이유로 포장했지만, 한 편으로는 직접 가지고 와서 씻어서 버리기 까지가 귀찮았던 마음이 더 컸던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 그대로 놓여 있던 그 캔 무더기가, 나를 포함한 몇몇 주민들에게 그 ‘시체’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거듭해서 말하는 것처럼, 순간의 선택이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 크게 와 닿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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