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친구를 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봅니다.
이문구를 친구로 둔 박상륭은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을까요.
이제 두 분 다 작고하신 작가들이지만 그 시절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에게 소설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정작 이문구 작가의 문단 교유기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고나 할까요.
글보다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
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
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
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고등학교 3학년초, 내가 대학 입시 준비와 함께 맡고 있던 교지 편집에
정신없이 바쁠 때 동규가 교지에 넣으라며 전해준 시가 <즐거운 편지>였다.“
(황동규 깊이 읽기 中 내가 본 황동규에서)
이를테면 황동규의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시의 현장을 함께 했던
시인 마종기의 회고입니다.

중고등학교부터 서로 좋아함에 부침이 없었다고 회고하는 황동규 시인은
이렇게 토로합니다.
“한 인간을 ‘제대로’ 보기 위한 적절한 거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너무 가깝다. 십 년 전인가 어느 술좌석에서 그는 나를 한바탕
꾸짖었는데 며칠 후 김주연이 그렇데 당하고도 가만있었던 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나도 성미 급하기로 유명한데, 그러나 그한테만은 잘 안된다.“
(마종기 깊이 읽기 中 마종기 인물 소묘에서)
두 경우에서 살펴보듯 살기 어려운 시절에 피어난 우정의 꽃이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밥술을 뜨기 어렵던 저 시절을 벗어나 자가용과 아파트가 재산이 되는 시대로 이행하면서
이런 우정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솔직한 느낌으로 현재의 문단, 요즘말로 문학동네는 따로 국밥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뭐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찬바람이 불어 가슴이 시려오는 가을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좋은 친구를 찾기 전에 제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