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쓰겠다고 읽는 책은 아닙니다.

 

시인은 영성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인은 禪房에 앉아 있는 수좌의 모습입니다.

하긴 시 가운데 禪詩가 있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詩는 禪詩라 생각되는군요.

깨달음도 게송이란 시로 표현하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詩를 쓸 일이 없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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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0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시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가끔은 습작으로라도 써 보심이 어떠하올런지요?

니르바나 2004-11-0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관심을 갖고 읽는 정도지요. 詩作은 어림없지요. 스텔라님

비로그인 2004-11-0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해용 ㅠ_ㅠ

지병 발작.



징징...

니르바나 2004-11-0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이 우울하면 저는 더욱 슬픔에 빠질터요.

얼릉 나세요. 체셔님

파란여우 2004-11-05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울한 하루였습니다. 니르바나님 고양이님만 위로해 주시지 마시고 저도 위로해 주세요. 시란 무엇인가보다는 밥먹고 사는 일은 무엇인가가 더 궁금해지는 하룹니다...흑

니르바나 2004-11-0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은 욕심장이 같아요. 님이 쓰신 페이퍼를 보고서 상찬하는 코멘트를 보면

저는 한 이틀 굶어도 배부를 것 같은데. 물론 위로가 필요하시면 해드려야지요.

물렀거라! 파란여우님 근심거리야.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 4 개정판이 지난 여름에 발간되었다.

 

처음 이 작품이 중편으로 발표되었을 때는 이전의 문학판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독교란 특정종교를 정면으로 다루어 신선하였고, 

짧은 시간에 거쳐 그 동안 작가가 써 두었던 습작에 가필을 하여 서점에 내어 놓은,

'젊은 날의 초상'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등을 발표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낙양의 지가 운운할 정도로 그의 차후 작품들은 베스트 셀러로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다양한 관심사를 그가 가진 필력으로 잘 옮긴 결과이리라.

 

나도 그의 책을 즐겨보았고 이 책을 처음 나올 당시의 중편으로만 보았다.

이 후 장편으로 개고하였지만 새로 읽는 일은 하지 않았다.

작품의 밀도가 옅어지고 긴 인용문으로 짜집기 할 것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었다.

햇빛아래 미인이기 쉽지 않은 것 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25년만에 다시 나오는 이 책을 장편으로 읽어보려한다.

어쩌면 시간보다 빠른 독자들의 변화에서 저만큼 물러나 있는 책이고,

전에 읽은 바 있어 그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책을 다시 붙드는 일이 드문 나로서는

독특한 경험을 하는 경우이지만,

25년 전으로의 회귀라는 일이 주는 감회가 이 책이 주는 언외의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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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과연 내 것인가?

 

사람들은 평상시에 내 몸을 내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것이라면 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마음내키면 꺼내 쓸 수 있어야 내 것이고,

내 목에 건 금목걸이라면 기분이 좋아서 풀어 줄 수 있어야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몸도 으례 그럴 것이라 여기고 우리들은 아무 생각없이 산다.

정말  나의 몸은 내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인가?

우리는 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완벽하게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그'나'를 어디엔가 놓고서 산다.

 

교통사고로 죽는 경우, 심장의 작동여부와 뇌파의 움직임으로 사망여부를 판단한다.

그리 생각해 보니 우리의 심장은 내 몸 안에 있으나 지금까지 내 마음과 상관없이 피돌기를 하고 있다.

내가 원한다고 허파에 바람들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원한다고 키를 늘리지도 못하고, 내가 원한다고 뇌의 작동을 멈출 수도 없고,

내가 원한다고 내 몸이 수용하는 것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는 듯 하다.

있다고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행위나 몸에 상해를 입히는 행동이나 가능하다.

이러한데도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부터 종교의 진리가 나온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기독교인의 경우는 원죄에서 사함을 받고,

불교인의 경우는 해탈의 문 안에 서 있게 된다.

 

어렵지만 늘 잊고 사는 문제의 해답은,

가짜 내가 완전히 죽어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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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읽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생각에 생각을 해보았더니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일군의 젊은 여성 작가의 쏟아져 나오는 사소설을  읽는 것이 부담스럽게

생각되면서 부터 인듯 싶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작가가 최윤, 신경숙

아, 그 전에 김채원을 읽었구나.

이후에는 은희경 작품이 괜찮다는 소개로 몇 권 해찰거리고, 차현숙이 쓴 '오후 3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는 소설집에서 단편 몇 편 읽다가 그냥 서가에 세워두고 끝이다.

신문과 문학지에서 수상을 빌미로 책광고해싸도 무심하게 넘기며 산다.

내가 소설책을 읽지 않아서 밀리언셀러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리되었고.

나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세상에 맛들였나보다.

그렇다고 소설을 아주 끊은 것은 아니다.

박완서와 강석경의 소설은 나오는 대로 사모으고, 물론 읽고 책 박스에 담아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라면 이문구선생을 필두로 김성동,  이윤기, 이문열씨를 들 수 있는데

신간은 거개 다 보며 지나간다. 김원우씨를 빼놓을 뻔 했네.

쌓아 놓기만 하고 있는 작가는 황순원, 최인훈, 박상륭이다.

거의 전집이어서 엄두가 잘 나지 않지만 잘 보이는 서가에 꽂아두고 있으니 일전을 치를 날이 곧 오리라.

말이 길어졌는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작한 말이다.

오늘 저녁 서점에 나가서 2권의 책을 사들고 왔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나온 박완서 선생의 '그 남자의 집'이 그 중 한 권이다.

작가의 첫사랑을 이야기 하실 모양인데 이미 두 권의 성장소설에 못 그린 사랑이 있었나 궁금하다.

늦게 등단해서 굵고 기~일게 활동하는 박선생님의 건필이 부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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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현대의 기술이 좋다하여도


도공들이 재현해 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고려자기의 빛깔의 정체가 무엇일까 의심을 했답니다.


연구의 결과, 그 빛깔의 정체는 해가 뜨기 전


즉, 개벽의 순간을 그려낸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참으로 현묘한 세계를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선조들의 유장한 세계가 가슴으로 전달되어 오는 듯 싶습니다.


다음 기회에 고려청자를 보시거든


이 말을 기억하고 한번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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