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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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루엔의 경우에서 보듯이 현실의 억만장자들은 소유로부터 탈출하고 있다. 그들은 ‘무소유’가 가장 영리하게 부를 소비하고 현시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30)

우리의 내면은 자기 안에 자기, 그 안에 또 자기가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이 아니다. 우리의 내면은 언제 틈입해 들어왔는지 모를 타자의 욕망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은. (75)

아이는 자기를 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쓴다고 한다… 그(그녀)가 자기를 버리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바로 그것 때문에 아이에 대해 힘을 갖게 된다. 나쁜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76)

로마인들은 화려한 연희를 열 때마다 노예가 은쟁반에 해골바가지를 받쳐들고 손님들 사이를 지나다니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 같은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게 연희의 흥을 돋우었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를 보면 술맛이 더 났던 것이다. … 지금도 그 전통은 핼러윈으로 면면히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그날이 되면 해골과 좀비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죽은 자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밤새 술을 마셔댄다. 핼러윈의 상징, 속을 파내고 불을 밝힌 호박은 즉각적으로 해골바가지를 연상시킨다.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면 현재의 삶은 더 진하고 달콤하다. 로마인들은 이천년 전에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90)

반스앤노블 같은 미국의 대형서점 체인은 어떤 책을 어디에 진열할 것인가까지도 본사의 컴퓨터가 인공지능으로 결정한다. 판매량과 독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집계하여 분석한 컴퓨터가 어떤 책을 중앙 매대에 놓을 것인가를 매일 결정해 지시를 내린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판단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서점 직원은 책을 손님에게 권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에서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책을 진열하는 역할로 전락했다. 책의 유통기간도 많이 짧아졌다. 총 판매부수의 80퍼센트가 출간 삼개월 안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0)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값이 떨어집니다. 많은 회사들이 뛰어들어 서로 경쟁하며 값싸게 생산할 방법을 결국 찾아내거든요. 저희가 만드는 시계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아닙니다. 그러니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160)

택시는 대중교통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을 채우는 여집합의 성격을 가진다. 여집합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가 없어 여집합이다. (174)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98, 에피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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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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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조폭뿐만 아니라, 소방수나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들도 문신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들이 문신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압도당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자기 암시와도 같은 의미라고 한다. (55)

자식 낳고 제일 조심해야 할 게 뭔지 알아? 자식 핑계로 욕심 늘리는 거래. 그게 바로 자기를 잃어버리는 첫걸음이래. (135)

"어떤 주의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의 조선이 된다." (300, 신채호)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더 가난해졌다. 가난하니까 죄의식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정신이 가난하면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되는 법. 그 가난함이 그저 무서울 뿐이다. (303)

그제야 나는 홈쇼핑이, 사실은 ‘고독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외로움을 고객 삼아 장사하는 사업.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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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도쿄
김민정 글.사진 / 효형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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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는 돼지고기 커틀릿의 일본식 표현인데, 소리로는 ‘돈카츠’에 더 가깝게 들린다. 일본에서 돈가스는 수험생을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 돈카츠의 ‘카츠’가 ‘이기다’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23)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맛있지 않은 커피가 없었고,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엄마와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31)

시부야 역, 충견 하치의 동상이 있는 번잡한 광장을 빠져나가면 스크램블 교차로가 있다. 좌우 그리고 대각선으로 길을 건널 수 있는 교차로이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신호가 한번 바뀔 때 최대 3,000명이 동시에 길을 건너기도 한다. 엄청난 인파 사이에서 내 갈 길을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연예인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걸어갔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고 한다. 많은 일본인이 스크램블 교차로를 제대로 건넜을 때 자신이 진정한 도쿄인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98)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것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허망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모든 여행은 여행일 뿐이다. … 여행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여행이라는 비일상으로의 문턱이 너무 높아서다. 그 문턱을 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최면을 건다.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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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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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는 일이 공장에서 하는 일보다 우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공장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이 소설을 쓰는 일보다 구체적이며 직접적이고 의미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 인간들은 대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는 셈이다. (8~9)

…수분이 빠져나간 것들은 어째서 그렇게 모두들 안쓰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말라 비틀어져서 손대면 바스라진다. 생명이란 그렇게 빠져나간다. (77)

외국의 유명 아티스트들은 대개 자신의 엘피 한 장 정도는 가지고 있다. 몇 달 동안, 때로는 몇 년 동안 작업한 자신의 노래를 엘피라는 ‘물질’에다 담아보고 싶은 것이다. 너무 빨리 소비되고, 너무 빨리 잊히는 음악에 대한 안타까움이 엘피를 제작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엘피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조금 귀찮고 거추장스럽지만, 누군가 몇 달 동안 만들어낸 음악과 정면으로 마주하려면 그 정도 번거로움은 감내해야 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이 엘피 속에 들어있는 셈이다. (164)

"피아노는 어떤 식으로 건반을 만지더라도 음색이 균일하다…." 피아노 소리는 딱딱한 듯 부드럽고, 약한 듯 강하다. 흔한 듯 흔한 소리가 아니다. 현실의 소리 같다가도 꿈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아마도 타현 악기이기 때문에 그런 미묘한 소리가 나는 것일 텐데,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 소리에 오래 전부터 매료됐다. (179)

피아노를 옮기고 난 다음에는 며칠 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두어야 소리가 잡힌다고 한다. 까다롭다. 피아노는 전자 제품이 아니다. 이건 마치 반려동물 같다. 살아있는 생물 같다. 전문가들은 피아노를 험하게 치는 것보다 아예 안 치는 게 더 나쁘다고 말한다. 피아노를 외롭게 두면 안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피아노는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만히 놓아두면 길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동이 있어야 부품과 나무가 결합되고 내부에 울림이 있어야 안정을 찾게 된다. 피아노는 살아 있다. (188)

긍정의 결속력은 약하고, 부정의 결속력은 강하다. 대중은 늘 조용하고 거대하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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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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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작은 똥구멍이 달렸어! 끔찍해! 끔찍하다고! …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사봐. 거기도 똥구멍은 달렸어! 지구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으로 가득 찼어. 대통령도 똥구멍이 있고, 세차장 직원들도 똥구멍이 있어. 판사들도 살인자들도 똥구멍이 있다고. 심지어 자주색 넥타이핀 남자도 똥구멍이 있어!
- 아,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그녀는 다시 구역질을 했다. 미친년. 나는 사케를 따서 한 잔 마셨다. (109)

지난 두 번의 장례식 후에도 경마장에 왔다가 돈을 땄다. 장례식에는 뭔가 있다. 사물을 좀 더 똑똑히 보게 한다. 하루에 한번씩 장례식이 있다면 부자가 될 텐데.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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