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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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부정하지 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에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자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21)

"사랑에 빠진 남자는 언제나 양처럼 보이지. 자연의 법칙인 것 같아." (72)

앤은 리처드의 이중적인 면을 알고 있었다. 그는 늘 거만하고 완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또한 흥미로운 가능성들을 지닌 소박한 사람이었다. 그 가능성들에 문이 닫혀버렸다. 앤이 사랑했던 그 리처드는, 넉살좋고 거들먹거리는 흔하디 흔한 영국 남편이란 틀에 갇혀버렸다.
그는 평범하고 포식 동물 같은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심장과 뇌의 능력은 떨어지고 그저 발그레하고 뽀얀 곱상한 외모를 자신만만해하는, 젊은 사람 특유의 노골적인 성적 매력만 있는 여자와. (222)

"희생이라니! 얼어 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심을 칼 앞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런 건 거기서, 자신의 본모습보다 훌륭해지는 그 순간에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이 아주 넉넉해야 하지. 앤은 충분히 넉넉하지가 않았어…" (252)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 (280)

"내가 봐줄 수 없는 일이 두 가지 있어.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고결한 인간인지 자기가 한 일에 무슨 도덕적인 이유가 있는지 떠들어대는 일, 또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계속해서 후회하는 일이야. 양쪽 말 다 사실이겠지. 자기 행동의 진실을 깨닫는 거라는 점에서는. 그래야 하는 거고. 하지만 그랬으면 넘어가야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어. 계속 살아가야지."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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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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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이 아줌마처럼 좋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 아줌마는 오직 사랑뿐인 커다란 통 같았다. (26)

아줌마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일러 주곤 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또다른 생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메이 아줌마와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나에게 행복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외톨리도 지냈던 나는,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만나 지낸 세월 자체가 바로 죽어서 간 천국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멋진 일이 어떻게 나한테 또다시 일어난단 말인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37)

어떻게 보면 그 상황은 메이 아줌마의 장례식보다 더 장례식답고 푸근했다. 일단 장례식을 직업으로 삼은 장의사나 목사 같은 외부인들이 오면 사람들의 슬픔마저 어떤 틀에 맞춰야 한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그저 트레일러 안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몇날 며칠이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짬도 없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르기를 바란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목사를 찾아가 종교 절차를 얘기했으며, 그 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수십 명의 친척과 의미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혹시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나 하고 안색을 살피는 눈길도 그대로 받아 낼 도리밖에 없었다.(53)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오브 아저씨와 나는 난데없이 사교계의 명사라도 된 듯했고, 그렇게 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놓아 통곡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틀에 맞춰 슬퍼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 황량한 밭에 서서 메이 아줌마를 되살리려는 오브 아저씨의 말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미 장례식을 통해 정리되었어야 할 뭔가가 비로소 내 안에서 정리되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클리터스는 장의사도, 목사도, 친척들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에게 해주고 있었다. 그 애는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오브 아저씨의 넋두리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들으면서 더없는 위안을 안겨 주었다. 클리터스에게는 내가 미처 몰랐던 능력들이 있음을,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가려내는 능력도 그 중 하나였다. (54)

그 순간 아줌마가 떠올랐다. 메이 아줌마가 생각났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한번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했다. 그저 아줌마의 빈 자리를 견디는 데 급급해서 지난 두 계절 동안 내 속에 차오르던 눈물을 안으로 삼켜왔다. 하지만 그 올빼미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이제 이 세상에서는 메이 아줌마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뼛속 깊이 와닿자,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침대에 공처럼 웅크린 채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도록 울었다. 아저씨는 나를 꼭 끌어안고는, 내가 울음으로 쏟아 내는 생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나한테 불어넣어 주었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몸 속의 눈물이 다 빠져나가서 가뿐해질 때까지 나를 안고, 크고 튼튼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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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의 딸
최인호 지음, 최다혜 그림 / 여백(여백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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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렇구나. 봄꽃은 잎을 무성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전야제의 꽃이다. 그렇다면 여름의 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피어나는 꽃이 아닌가. 그렇다면 또 가을에 피는 꽃들은 무엇인가. 그것을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꽃이다. (94~95)

아아, 그렇다. 우리 다혜가 이제 봄나무가 되었다. 사춘기의 광기 어린 꽃봉오리가 툭툭 소리를 내면서 벌어지고 있다. 이 꽃이 만발하고 났다가 속절없이 지고 나면 다음엔 청춘의 신록이 우거질 것이다. 그러나 이 꽃이 만발했다 질 때까지의 긴 세월 동안 이 죄 없는 애비와 에미는 얼마나 속을 태우고 늙어갈 것인가. (99)

아아, 아버지에게 딸은 누구인가. 그 딸은 어디서부터 내게 따님이 되어서 오신 것일까. 그리고 그 딸에게 있어 아버지인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신기하고 신기하구나. (182)

어쨌든 내 딸 다혜가 이제 자신을 닮은 딸을 낳았다. 아아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들은 누구이길래 이렇게 서로 가족을 이루고 한때 만났다 헤어져 어디로 돌아가는가. 참으로 알 수가 없구나. (210)

그렇다. 정원이에 대한 그리움은 첫사랑의 열병보다 혹독하고, 정염의 화염보다 뜨겁고, 마약과 알코올보다 강하니,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우리의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곳곳에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온통 축제의 화원인 것이다. (245)

"산중에서 보물을 찾기 전에 먼저 내 두 팔에 있는 보물을 충분히 발견토록 하라. 그대의 두 팔이 부지런하다면 그 속에서 많은 보물이 샘솟아 나올 것이다." (278,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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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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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정궤’야말로 예부터 문인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서재 모습이었다. 출전은 중국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저서다. 밝은 창문이 있는 깨끗한 방에 책상이 있다. 거기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54)

"책 5백권이란 칠칠치 못하다거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지간한 금욕과 단념이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보통 정신력으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150)

"수집을 통해 수집된 물건으로부터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생각의 방향성을 얻는 일이 종종 있다. 사람은 스스로 목적을 알 수 없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하지만, 수집한 물건은 언젠가 언어가 되고 문맥이 되어 사람을 지혜로운 길로 이끈다. 자신도 분명히 알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 지혜의 결정체가 되어 간다." (170)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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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자의 안
사카키 쓰카사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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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사사했던 가게의 사부님이 했던 말인데, 화과자는 하이쿠와 비슷하대. …하이쿠는 짧은 몇 마디의 말로 된 시인데도 그 속에서 무한한 깊이를 느낄 수 있잖아. 지식이 없어도 언어의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지식이 있으면 또 나름대로 그 즐거움이 더욱 커지고… 게다가 계절어가 있기도 하고, 언어유희가 가능한 점도 똑같고, 요즘 말로 하면 스토리를 환기시키는 키워드 같은 느낌이랄까." (144)

싫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려는 심리는 이해할 수 없다. 테러나 전쟁, 텔레비전에서 보도하는 슬픈 뉴스를 볼 때마다 나는 기분이 먹먹해진다.
"사람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언젠가는 죽는데."
…어차피 언젠가는 없어지리란 걸 안다. 즉, 죽이는 쪽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뭘 원하는 것일까.
사람 하나만 없어져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파장이 미친다. (149~150)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점이 생각났어. 아주 단순해. 이 나라의 역사야.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서 이 나라 사람들의 관혼상제를 채색하는 것. 그게 화과자의 역할이야."
…축하할 일에는 예쁘게 조각한 설탕과자와 홍백의 만주. 슬플 때는 장례 만주. 불단에 올리는 음식으로는 양과자보다 오래 둬도 상하지 않는 건과자나 모나카.
"이 나라의 풍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화과자는 고급스러운 생과자라도 상온에서 보존하는 게 기본이지. 하기야 지금은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한 냉장 진열장을 사용하는 곳도 많지만." (249)

"…행운의 쿠키는 원래 ‘쓰지우라’라는 이름의 화과자야…다이쇼 시대 때 일본계 외국인이 ‘쓰지우라’를 본떠 만든 것이 행운의 쿠키였다고 해. 역수입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이쪽이 원조야."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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