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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그렇듯 정답고, 때로는 우주적 감수성이, 때로는 사유를 촉발하는 통찰이 빛을 발하는 글들. 하지만 영원히 푸른 청춘일 것만 같던 작가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던 산문집. 그래서 조금은 작가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조금은 정체모를 쓸쓸함을 맛보다가도, 여전한 건재를 알리는 이런 문장에 환호하곤 했다.
“일본에서 신사에 들렀을 때,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재미 삼아 소원을 빌었다. 주택가 옆 작은 신사를 빠져나오는데 일본인 친구가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더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나기를, 그리고 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고 대답했다. 예컨대 어떤 일이냐고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날씨처럼, 늘 살아서 뛰어다니는 짐승들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그처럼 단 한순간도 내가 아는 나로 살아가지 않기를, 그러니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나를 사로잡는 것들이 있으면 그 언제라도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244-245)”
그럼에도 유독 ‘길고 긴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과 ‘매사의 의미는 지나봐야 안다는 깨우침’, 그러므로 ‘매 순간 집중하며 지금 당장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할 당위성’을 강조하는 글들이 여럿 눈에 띈다. 그토록 많은 어른들이 하는 말을, 그토록 명민하고 성실하게 인생을 탐구해온 작가가 반복하고 있으니 맞는 말이겠지, 결국 인생에서 가장 많은 선배들이 공감했던 경험칙이 있다면 이 정도이겠거니, 생각하며 그 내용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겨본다. 그리고 달리고 싶을 때 한 시간씩 달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인생을 압축적으로 맛보며 오만 가지 깨달음을 얻고 심지어 무아지경까지 경험할 수 있다니, 이 비 그치는 대로 달리기에 취미를 붙여봐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한다.
그나저나 읽을 때는 몰랐는데, 서평을 쓰고 나니 왠지 산문집을 자기개발서로 멋대로 바꿔 읽었다는 자책감이 든다. 그냥 그만큼 작가의 말이 한층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는 두루뭉술한 소감으로 변명을 대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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