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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따져보니 세 번째 완독한 책이다. 같은 책 두 번도 잘 안 읽는 나로서는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세 번 다 읽어야 할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무슨 전공책도 아닌데,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다시 읽으면서도 전혀 지루한 줄 모르고 연신 키득거리며 읽었다. 흔한 말로 무더위를 잠시 잊을 만큼 재미나고 유쾌했다. 전에 읽을 때는 ‘아무리 작가라지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감탄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에는 대충 내용을 아는지라 ‘같은 내용도 어쩜 이렇게 일목요연하고 유머러스하게, 세련되게 표현할까’라는 쪽에 방점이 찍혔다. 미안하지만 작가의 대부분의 소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자주 감탄이 튀어나왔다.
작가 말대로 거의 모든 글이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즉 원고료를 받고 쓴 글이라 같은 연재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길이는 제각각이지만 비교적 고르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글로는 ‘낭독의 발견’과 ‘태극기 단상’을 꼽고 싶다. ‘낭독의 발견’은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참 좋은 생각이네’ 하고 말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외국에서 낭독의 문화를 들여오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상당부분 실현되어 놀랐다. 출판계에서 작가를 추모하는 낭독회는 물론이고, 새 책의 발표회를 낭독회로 대신하는 문화도 (정착까지는 몰라도) 도입되었고, 더구나 김영하 작가는 책을 낭독해주는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까지 제작하여 인기를 끌었다. 글이 ‘남다른 배움의 표지’이던 시절이 지나고 누구나 글을 쓰는 이 시대에 책 한 권 썼다고 남들 앞에서 강연 등으로 떠들 권리를 자동으로 부여 받기보다는 본인이 쓴 작품을 읽는 경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행사가 더 적절하다는 작가의 말에도 백 번 동감이다. 한편 ‘태극기 단상’은 특이하게도 ‘태극기팔이’의 포스트모던한 퍼포먼스 이야기로 시작하여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천에 따른 태극기의 물신화된 숭배와 홀대의 역사를 거쳐, 최근 태극기를 악용하는 복고적 퇴행의 움직임에 일침을 가하는 눈부신 이야기 전개가 돋보인다. “지금의(당시의) 태극기 붐은 실제로는 갈라질 대로 갈라진, 이미 하나의 동일체라고 할 수 없는 집단들이 국민국가적 정통성을 선취하기 위해 벌이는 상징 선점 경쟁”이라며 이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국가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일원론적 태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으니 “이제 그만 깃발을 내려라”라는 작가의 말에도 뒤늦게 공감한다. 국민국가의 허울 아래 태극기는 잠시나마 우리의 차이를 가려주었지만, 실제 우리는 하나였던 적도 없고, 지금도 당연히 하나가 아닌 것이다.
그 밖에도 책을 읽으면서 그간 어디선가 읽었는데 정확한 출처를 찾지 못하던 수많은 단편적 지식들의 소스가 이 책이었음을 발견했다. 그만큼 배울 것도 많고, 생각할 여지도 많으며, 아는 척 하기도 좋은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게다가 언제 읽어도 재미있고 여러번 읽어도 물리지 않으니, 정말 에세이의 미덕을 고루 갖춘 에세이집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