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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평점 :
이제 겨우 7개월째지만 신간평가단을 시작한 후로 개인적으론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그간의 내 편협한 취향과 견고한 선입견을 돌아볼 만큼 생각이 바뀐 경우도 많았다. 내실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독서의 외연은 넓어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신간평가단 활동의 가장 큰 수확이자 묘미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낯선 세계와 만나고 싶다는 기대로 또 한번 신간평가단에 도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책만큼은 다 읽은 후에도 책과 작가에 대한 기존 이미지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는 말이다.
아마도 내가 이 작가에 대해 사전지식이 부족한 탓이 가장 클 것이다. 작가 이력을 보니 등단한 지 39년만에 39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작품 중에 제법 익숙한 제목들이 눈에 띄는데도 불구하고, 참 용케도 피해왔구나 싶을 정도로 읽은 작품이 없다. 그러니 결국 이 작가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영화 <은교>의 원작자라는 사실뿐, 원작소설을 찾아 읽은 것도 아니고 영화도 원작보다는 김고은의 해사한 얼굴에 이끌려 보러 간 것이니 결국 이 작가와의 접점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영화 속 대사 중에 책 팔아 버는 돈이 늘어날수록 문단의 평가는 점점 낮아진다는 말이 나오길래, ‘아, 저것은 작가 본인의 얘기인가보다’라고 혼자 추측했던 기억만 난다.
이 책은 작가가 속계에서 여러 가지 신수 나쁜 일을 겪은 후에 뭔가에 씌인 듯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가 살면서 “나는 대체 왜 내려왔는가”를 고민하는 이야기가 큰 축이다. 그 사이로 가족들 이야기, 주변 사람들과 술 마신 이야기, 읽는 책과 예향이라 불린다는 논산 이야기, 비중있는 조연인 집 주변 호수와 금붕어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불임의 세월’을 겪는 작가의 고뇌와 고통어린 솔직한 취중(?) 고백들이 수시로 끼어든다. 그 홀로 견디는 적막한 시간과 공간을 버티고자 작가가 수시로 페이스북에 끄적거린 일기를 묶어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은 독자에게는 이 책이 작가가 천착하는 고민과 그의 일상을 낱낱이 알 수 있는 고마운 창작일지겠지만, 나 같은 문외한 독자에게는 책 자체로 주는 감동이나 흥미, 공감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저 이 작가가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예민하고, 온갖 번뇌와 사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평생 이성보다는 감정에 휘둘리며 작품을 쓸 때만 몸과 정신이 합치될 뿐 늘 정신이 이곳 아닌 다른 어딘가를 헤매는 유랑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 그런 끊임없는 내적분열로 인해 일상이 항상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대신 계속해서 글을 쓰고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런 원동력 덕분에 작가가 시종일관 염원하는 영원한 ‘현역 작가’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스스로도 <논어>를 읽다가 평생 오욕칠정을 끊어내지 못해 군자가 못 되는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만약 집착과 사사로움을 모두 버렸다면 남의 심중에 든 오욕칠정의 진흙밭을 기록하는 작가로 살지는 못했을 거라며 작가로서의 숙명을 자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데는 사진의 힘이 컸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인 듯 글과 정확히 매치되는 사진들이 많은데, 때로는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말의 성찬보다 ‘고무 다라이’나 작가의 책장, 의자 등을 오롯이 찍은 생활에 밀착된 사진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호수를 다각도에서 찍어놓은 사진들이 오히려 조촐하니 에세이다운 맛을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