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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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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힘겹게, 그야말로 의무감에 꾸역꾸역 읽었다. 어느 한장도 쉽게,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장이 없었다. 뉴스로 앙상한 뼈대만 알고 있던 사안들에 눈물겹게 실감나는 살점들이 덕지덕지 붙어 미처 머리로 받아들이기 전에 자꾸만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군데군데 박혀있는 저자의 스산한 표정들과 처연하면서도 담담하게 참 잘 쓴 글들이 더더욱 아픈 마음을 후벼 팠다. 그러다가 문득 남이 다 써놓은 책 거저 받아 읽기도 이리 고역인데, 이 마음 어려운 글들을 손수 짓고, 그 배경이 되는 일들을 직접 몸으로 겪어낸 저자와 그 주변사람들의 고통은 대체 어느 정도였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쳐 일순간 암담해졌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저 무작정 안쓰럽고 화가 났다. 그리고 이렇게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나의 독서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이 독서에 의미가 있으려면 대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지, 이런 허섭쓰레기 리뷰나 쓰고 별점이나 매겨서야 되는 건지, 그렇다고 이마저 안 한다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 쓸데없는 생각만 가득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짧은 소견으로는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밖에는 나지 않아, 또다시 모든 게 정치의 문제로 환원되고 말았다.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아래 인용한 시인의 염원만은 꼭 시인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위악스럽게 자신을 학대하며 불량으로 향하던 내게 문학은 사실 딱 하나 남은 구원의 장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딱 하나 남은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까닭도 모른 채 빼앗긴 나는 더욱 극단의 탈선과 어둠 속으로 나를 내몰았다내 운명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재조직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더더욱 내 운명을 바꾸려는 노력이 결국엔 이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일임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문학을 다시 찾기까지는 긴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이 사회로부터 더 많은 검열과 체벌을 받아야 했다. 승리한 사람들보다 낙오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그들이 일상적으로 안고 사는 슬픔과 아픔을 만나야 했다.

 

그 상처들이 하나하나씩 쌓여 내 마음속에 종유석처럼 단단한 말의 뿌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학이 아닌 문학을 이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다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시인이 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말들이 내 눈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떤 말들이 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떤 말들이 움켜진 주먹처럼 내 안에서 뻗어져 나왔다. 세계가 내 몸을 타자기로 삼아 제 이야기를 두드렸다. 더 이상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가 내 몸에 자신의 구조와 상처를 깊이 새겨두었다. 그 상처를 말함은 그래서 내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때의 나처럼 시와 노래를 꿈꾸는 푸른 청춘들이 있을 줄 안다. 그들에게만은 상처가 문학의 근원이 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해본다. (18-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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