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약간 땡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극장에서 보기는 뭣한. 소위 '비디오 나옴 봐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지난 일요일날 친구가 놀러올때 이 비디오를 빌려 봤고 나는 극장에서 봐도 별로 나쁘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디오로 봐도 무관한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다.(스펙터클과 상관없는 영화는 대부분 비디오로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나이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해 망설이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아마도 신파조의 스토리였다고 생각한다.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재는 너무 진부해서 뒷골이 다 땡길 지경이니까. 거기다가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라고 하니 오죽 감성적일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감성적이지도 신파조로 흐르지도 않는다. 비록 전체적인 스토리 자체는 영화 제작사들이 투자를 꺼릴만큼의 유치함을 충분하게 갖추었지만 여 영화는 꾀나 쿨하게 전개된다.
고등학생 민아는 오랫동안 아팠다. 그리고 그 애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인 미숙은 태어나서부터 줄곳 병원에서만 살아온 민아가 남은 기간 만큼이라도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민아는 몸도 아플 뿐 아니라 태어나면서 부터 왼손이 기형이다. 어느날 아랫층에 사진을 찍는 대학생 영재가 이사를 오고, 영재는 민아에게 계속 추근거린다. 친구가 없어서 엄마에게 미숙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민아는 점점 영재와 친해진다. 민아는 아프기는 하지만 성격이 모나거나 삐뚤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또래보다 약간 어둡고 어른스럽다. 영재와 민아는 사진도 찍고 놀러도 다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다 민아는 죽게 된다.
스토리 라인으로 볼 때 이 영화는 특별함을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장화홍련으로 주목을 받은 신예 임수정. 연기력에 있어서는 더이상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는 이미숙. 거기다 옥탑방에서 이미 능글맞은 사내(으...정말 싫은 표현이다.) 역에는 소질이 다분하다는 것을 증명한 김래원까지. 영화는 이들을 썩 잘 버무려 놓았다. 죽을날을 앞두고 있지만 질질 짜거나 연약한척 하지 않는 여고생 민아. 딸의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역시 맨날 눈물바람으로 너 죽으면 어쩌냐고 땅바닥을 치지 않는 엄마. 약간 어설프지만 특유의 가벼움으로 심각하지 않은 남자친구가 되어주는 영재까지 모두 잘 끼워맞춘 퍼즐처럼 자신의 역을 다 하고 있다. 거기다 민아네집 일하는 아줌마로 등장하는 김지영 아줌마. 아파트 수위아저씨 김인문은 양념 역활을 톡톡히 한다. (내가 사투리를 좀 알아서 하는 말인데 김지영 아줌마의 사투리는 정말이지 퍼펙트 그 자체이다.)
처음부터 감춰진 내용도 없으며 그 흔한 반전도 없다. 물론 광고에서는 끝에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처럼 말하지만 사실상 영화를 보다가보면 그 비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관객들에게 이건 몰랐지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영화 전개상 필요했던 부분이라고 본다. 민아가 살 날이 얼마 남질 않았는데도 병원에서 퇴원시키고 학교를 보내는 것으로 봐서 민아 엄마가 얼마든지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다.
간만에 재밌는 만화를 한편 본 기분이다. 순정만화라고 하기에는 좀 넘치는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내가 예전에 봤던 와니와 준하처럼 잔잔하다. 촌스러운 스토리 라인을 촌스럽지 않게 풀어낸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촌스러운건 누가 하던 다 똑같이 촌스러운건 아닌가 보다. 옷이 어떤 옷걸이를 만나느냐에 따라 패셔너블하게도 촌스럽게도 보이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