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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경영한다 - 백지연의 선택
백지연 지음 / 다우출판사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만 보고는 그랬다. 9시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 그 중에서도 편안함보다는 도도함과 잘남의 느낌이 강했던 여자가 어떻게 자기를 경영했는가 한번 들여다 볼까 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책은 백지연이라는 사람의 개인에 관한 글이라기 보다는 나중에 커서 이 책을 볼지도 모르는 아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뒷편에 이런저런 얘기들이 적혀있기는 했지만 뭐랄까 그건 그냥 아이스크림에 뿌려진 레인보우처럼 색만 화려했지 정작 별 맛은 없었다.
백지연은 알다시피 이혼을 했다. 그리고 유명인의 이혼이 늘 그렇듯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었다. 그러나 매우 괴팍하게도 그 소문은 단지 뭐 바람피워 이혼했다 혹은 애인이 있었다등의 수준이 아니라 아이 아버지가 남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친자확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야 했다. '제 전남편이 애 아버지 맞거든요?'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 이혼한 것만으로도 그래서 아이를 아빠 없이 혼자 키워야하는 것 만으로도 그녀에게는 너무 힘들었을텐데 아니 주홍글씨 현대판도 아니고 왜 세상 사람들에게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야 하는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당연히 그 남편의 아이이거니 생각해야지. 또 설혹 아니라 하더라도 그걸 세상 사람들 앞에서 밝혀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왜냐면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이니까 말이다.
9시 뉴스 앵커가 아니었다면, 화면에서 그토록 도도하고 잘나보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런 고초를 치뤘을까? 아마 일반인이라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사회는 그렇게나 잘난척하고 똑똑한척하던 니가(여자가) 무너지는 꼬락서니를 보고 싶거나 아니면 최소한 휘청거리는 꼴이라도 보고 싶었던건 아닐지. 사실 뭐 그녀의 이미지가 친근하다거나 편안하고 익숙한것과 거리가 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딴식의 수준이하의 루머를 가지고 그 편안하지 않음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해야 했는지...
어쩌면 그녀로써는 이 책을 내는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 말마따나 그 더러운 소문은 신문에 잡지에 남아서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테니까 말이다. 나중에 그녀의 아이가 자라서 행여 그런 얘기를 들었을때 혼자 상상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도록. 그녀로써는 미리 책으로 그 과정을 어느 정도는 밝혀 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제목과는 별 상관없이 그녀에 관한 악성루머와 그 재판과정. 그리고 그걸 겪으면서 느꼈던 심정을 담은 수기같은 글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 책이 나왔어야만 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어떤 엄마도 이혼하고 난 다음 아이의 아빠가 모두가 알고있는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쑤군거림을 참고 살아서는 안되는거니까 말이다. 그게 진실이건 아니면 루머건 상관없이 그런 쑤군거림에 아이를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의 대부분을 그 재판과정과 결과에 할애하고 나머지 부분에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경영했는지 아주 약간 나온다. 그러나 앞부분에 비해 현저하게 호흡이 떨어진다. 그리고 가끔 좀 더 인간적이면 좋았을것을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난척은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요소가 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잘났어도 겸손할것. 그게 아직까지는 한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살고 살지 않고는 본인의 자유지만 적어도 대중에게 어필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무시해버릴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물론 잘난걸 잘났다고 말하는게 틀리는건 아니다. 하지만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정이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때는 다르다. 심지어 그렇게나 대놓고 잘난척하기의 대마왕인 가수 신모씨 조차도(주로 재수없다는 평을 받는다.) 어떤선을 넘어버리면 대중에게 영 외면당하고야 만다 정도는 계산을 하고 행동하는걸 보면 그게 영 무시할수만은 없는 문제인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 책에 많은 점수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존재 이유에 대해서 만큼은 별 다섯을 준다. 그녀는 다른사람이 아닌. 그녀 자신이, 그러니까 방송인 백지연이 아닌 아이 엄마로써 아이에게 할 말이 있었으니까. 그건 그냥 쉬쉬하고 넘어가서는 안되는 일이었고 이렇게라도 책을 낼 수 있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사람 아무도 이 책을 사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녀의 아이만 본다면 이 책은 그걸로 충분했던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나무 한그루 심지않는 나라에서 이 무슨 자원낭비인가라는 차원의 태클이 들어오면 할말은 없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