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으니까 끝났다고 하지
그렉 버렌트 지음, 이수연 옮김 / 해냄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몇몇 책들은 그렇다. 읽고나서 꽤 흥미롭고 재미있었기에 후속편이 나오면 망설임없이 구입하게 되는. 그리고 그런 책들 중에서 또 몇몇은 그렇다. 그냥 전편만 읽고 치울것을. 색스 앤 시티의 작가 그렉이 쓴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를 읽은 후, 나는 이 책도 당연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덮은 이 순간. 그렉 역시 장사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명성과 전편의 책을 이용해서 별 다른 내용이 없는 이 책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을테니 말이다.

이 책에 대해 좀 더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편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의 경우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연인들. 즉 저 사람이 나한테 호감이 있을까? 혹은 이 몇번의 데이트로 그는 내게 반했을까에 관한 얘기였다면 이 책은 헤어지고 나서 죽도록 힘든 사람들에게 충고를 해 주는 책이다. 사실 전자야 좀 틀려도 상관없다. 물론 나한테 반하지 않은 그 혹은 그녀를 사귀면 역시나 힘들어지겠지만 실연의 아픔으로 죽을것 같은 사람들과 비교할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통 표지를 찍고 나와서 장사를 해 먹는다는 것은 (아무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파는) 좀 너무한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사랑에 관한 모든 충고는 진부하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전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참신했었다면 끝났으니까 끝났지는 뭐랄까 이런 기분이다.

나 : 정말 슬퍼 죽겠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아... 살기 싫어

친구 : (겁나 또박또박. 바른 목소리로) 너무 슬퍼하지 마. 슬픔 뒤에는 반드시 행복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잖아.

혹은.

나 : 사는게 정말 왜 일케 힘드냐? 진짜 하루 하루가 지옥같다.

친구 : (겁나 또박또박. 바른 목소리로) 그래도 최선을 다 해야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 법이라구.

백번 옳은 소리지만 엄청난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저런 교과서같은 소릴 해대면 정말이지 한대 확 후려갈겨주고 싶다. 무조건 열심히,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충고인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너무 바른 소리만 하면 속으로는 재수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해 내가 재수없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런 것이다. 슬퍼 죽겠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 만큼 뭔가 좀 어르고 달래는 맛이 있어야지.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니 슬픔 다 안다. 벗뜨 그러나 안 벗어나면 너 바본거 알지?' 라는 분위기다.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마당에 곱게 차려입고 나가서 상쾌하니 조깅을 하고 (심지어 다이어트 하게 샐러리를 손에 들고 하란다.) 친구들마저 멀어지면 안되니까 그들에게 절대 하소연하지 말고. 그렇게 어서빨리 자기 페이스를 찾아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한다. 참 말이 쉽다. 사실 저게 가능하다면 우린 애초에 이따위 책을 집어들지도 않았을꺼다. 그렇지 않은가?

가끔은 충고 대신 위로가 필요한 법이다.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다. 도저히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미 그 사람도 훤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잔인하게 좔좔좔 늘어놓으며 바보 취급하는건 참을 수 없다. 물론 따끔하고도 확실한 충고가 필요할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죽음 만큼이나 심각한 정신적 데미지를 입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는 적어도 저런 충고가 필요하지 않다. 어떻게 극복을 해야 하는지. 혹은 지금 슬퍼하는 것이나 미련을 두고 있는게 내가 천하의 바보 멍충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는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이미 헤어진 사랑에, 돌아선 사람에 연연하는 이들은 이미 스스로도 충분히 바보스럽고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다 대고 팔짱을 낀채 '너 참 한심하다 쯧쯧쯧' 하고 혀를 차 줄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는 이별을 겪고 힘들어하고 있다면 이 따위 책은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는다. 이 작가의 전작은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이 책은 순전히 지 마누라랑 지랑 돈벌겠다고 만들었다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늬들이 이별의 슬픔을 아주 죽도록 겪었다고? 그래도 어쨌건 지금은 부부끼리 쿵짝이 맞아서 이따위 책이나 팔아먹고 (거기다 표지에 찰싹 들러붙어 행복해하는 그 사진이란. 이게 누굴 대상으로 쓴 책인데 그런 염장질 시츄에이션인가? 양심도 없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별을 겪고 있거든. 혹은 이별해야 할 상황이라면 울어서 퉁퉁 부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들기 보다는 차라리 책 표지에 있는 아이스크림통을 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아이스크림은 당신을 향해 '이 바보야 이미 끝났는데 지금 니 꼴 좀 봐. 얼른 일어나서 꽃단장하고 조깅하지 못해?' 라고 말하는 대신 그저 약간의 달콤함을 그리고 시원함을 (울어본 사람들은 안다. 목구멍에 시원한게 넘어갈때 잠시나마 살것 같다는걸) 줄 뿐이다. 그리고 생각은 자기가 하는거다. 이런 충고는 필요하지 않다. 가서 죽도록 매달리고 싶은가? 그럼 그렇게 해라. 정리하고 싶은가? 그럼 그렇게 해라. 뭘 하건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이별 따위는 적어도 이성간에는 없다. 그 아름답고 쿨함을 위해서 자신을 혹사시키느니 (속으론 죽겠는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사는게 더 자신을 혹사시키는거다. 내가 해봐서 안다. 속으로 골병든다.) 차라리 좀 덜 아름답고 덜 쿨해도 가서 죽도록 매달려보고 안되면 욕이나 팍 한번 해 버리는게 낫다. 이왕 헤어지는 마당에, 또 내가 죽겠는데 빌어먹을 체면이 다 뭔가?

내 예상컨데 이 작가는 또 다시 책을 낼 것이다. 그건 아마도 한참 연애질을 하고 있는 남녀들에 대한 지침서겠지? 이렇게 사랑해라, 요렇게 사랑해라 하면서 말이다. 색스 앤 시티가 재밌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렉. 당신이 연애 박사는(그따위는 있지도 않고 있길 바라지도 않는다만은) 아니다.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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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우유 2005-12-14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는 연애 해볼거 다해보고 이쁜 부인이랑 잘 살고 있으니 이런 책도 쓸 생각이 난 거겠죠.
한번 마눌한테 채여야 정신을 차리려나? ㅎㅎㅎ
몇번씩 우려야 맛있는 건 곰탕밖에 없지요. 정말 이제 펜을 좀 놓으시라..

플라시보 2005-12-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우유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처음 책은 신선했는데 이번 책은 영 아니네요. 다음에 책을 낸다면. 글쎄요. 그때는 안살것 같은데... (몇번씩 우려도 맛나는건 곰탕뿐이라는 의견. 예술이었습니다.^^)

여행가방 2006-08-1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속시원한 평가예요. 책한권보다 이 글이 더 영양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