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퍼홀릭 1권 1 - 레베카, 쇼핑의 유혹에 빠지다 쇼퍼홀릭 시리즈 1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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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섹스 & 시티라는 드라마를 봤을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아무 생각도 대책도 없어 보이는 독신 여성 4명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뭐가 재밌단 말이지? 드라마는 소문보다 매우 시시했고 섹스 얘기가 나오긴 하지만 제목 자체에 섹스라는 단어를 넣을만큼 야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주인공인 여자가 쓰는 칼럼 제목이었다.) 섹스 & 시티의 주인공들은 별로 열심히 일하는것 같지도 않은데 어디선가 돈이 펑펑 쏟아지는지 매일 만나서 아침을 사먹고 구두와 신발과 옷을 사대기 바빴다. 그리고 그 쏟아지는 돈 만큼이나 남자들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샘솟는게 아닌가. 나는 이 드라마야 말로 꿈과 환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나는 그 드라마를 매우 즐겨서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 섹스 & 시티의 매력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가 혹은 얼마나 말이 되는가가 아닌 가벼운 재미의 중독에 있었다. 늘 유쾌한 패션 피플이나 예술가들 사이에서 파티나 하고 지하철을 갈아타는 것 만큼이나 남자를 바꾸는 주인공 캐리. 그리고 그 얘기들을 고스란히 써서 먹고 사는 칼럼니스트라니 이 얼마나 가볍고 좋은가. 더구나 그녀는 설사 남자친구 없는 공백이 있다 하더라도 독신들이 흔히 겪는 외로움 따위도 없다. 왜냐면 항상 그녀 곁에는 유쾌한 친구들이 함께하니까 말이다.

이 책 소퍼홀릭을 보면서 나는 내내 섹스 & 시티의 그 가벼운 재미를 떠 올렸다. 주인공 레베카는 경제에 대해 쥐뿔만큼도 모르는 경제 기자이다. (이게 가능한지 나는 도통 알수가 없다만 캐리를 보면 그게 또 그럴수도 있구나 싶다.) 경제부 기자이면서도 어찌나 경제에 대한 개념이 없는지 늘 대출 한도때문에 혹은 신용할부 문제로 은행에서 독촉장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여전히 구두와 옷과 악세사리와 가방과 기타 잡다한 물건들을 환장하며 사들인다. 뭐 저렇게 쇼핑에 환장한 여자가 다 있나 싶은데 가만히 들여다 보니 그 속에 내가 있었다.

광고중에 이런 광고가 있다. 아마도 백화점 상품권 광고이지 싶은데 카피가 이렇다. [여자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마음을 저울질 합니다.] 나는 이 카피를 보면서 카피라이터의 위대하도록 예리함에 다시한번 경의를 표했다. 대부분의 우리 여자들은 매일 매일 유혹에 시달린다. 예쁜 옷과 그에 어울리는 가방과 신발과 악세사리들. 정말이지 세상은 거대한 백화점처럼 아름다운 물건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비록 마음에 든다고 다 살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나름 저울질은 한다. 그래 이 정도는 사도 되지 않을까? 이건 꼭 필요할꺼야 (필요하다가 아니다.) 소퍼홀릭의 주인공 레베카와 내가 다른점이 있다면 저울질 끝에 사지 않는게 더 많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나도 한순간 방심을 하면 곧 레베카처럼 물건을 사들이게 된다. 이렇게 아름답고도 쓸모있을것만 같은, 혹은 나를 돋보이게 해 줄것 같은 물건을 사지 않는건 죄악이라는듯 말이다.

일면 가벼운듯 보이는 레베카의 얘기를 죽 읽어나가다 보면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레베카와 우리는 종이 한장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물건을 사느냐 사지 않느냐는 지갑을 여는 찰나의 순간에 결정이 되니까 말이다. 거의 모든 여자들은 물건에 특히 자기 몸에 걸치거나 매다는 것들에 약하다. 다만 소퍼홀릭의 레베카는 약해도 너무 약해서 탈이지만 말이다.

레베카라는 이 여자는 정말  한심해 보이고 철이 없어 보인다. 대체 마음에 드는건 죄다 다 사들여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우리도 쓸데없는 물건들을 잘도 사들인다. 나만 하더라도 이 좁은 집구석에 대체 저게 왜 필요한가 싶은것까지 다 갖추고 있다. 거기다 레베카처럼 언젠가는 꼭 쓸모가 있으리라는 핑계를 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비록 레베카 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레베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가볍게 또 재밌게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그저 책에 나오는 나완 상관없는 남의 얘기라 혀를 차기에는 그 안에서 너무도 많이 내 내면이 읽히기 때문이다. 이토록 가벼운 책이 어떻게 이런 무거운 주제를 던져주나 싶을 정도로 책을 덮을때는 심란한 마음마저 들었었다.

내 생각에 이 책은 현재 쇼핑 중독증에 빠져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그 의미가 극명한 차이를 보일것 같다. 쇼핑에 노예가 되어있다면 레베카의 행동에 공감하면서 그래 이건 당연한거다라고 생각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도 방심하면 이꼴이 난다라는 일종의 경고장으로 보일 것이다. 끝으로 하나 주의할점은 우리 은행은 레베카의 은행처럼 신사가 아니라서 단지 편지를 보내고 점잖은 전화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니 신용카드를 쓸때는 반드시 생각을 하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가볍고 재밌게 읽느냐 아니면 읽으면서 뭔가 크게 깨닳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그래도 일단 이 책은 가볍고 재밌다. 적어도 그렇게 읽히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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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8-24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정말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광고를 보면서 고민을 합니다 옷 한 벌을 사면 거기에 맞는 신발도 사야 할 것 같고, 악세사리도 바꿔 줘야 할 것 같고, 쉐도우나 립스틱 색깔까지 신경이 쓰인다니까요 결국은 그냥 안 사고 말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쇼핑의 유혹을 물리친다는 건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죠?? ^^

플라시보 2005-08-2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차라리 눈에 안보이면 모르고 지나치지만 일단 눈에 띄면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죠. 세상에는 어찌나 다양한 옷과 또 그에 어울리는 갖은 잡것들(?)이 많은지... 이래서 사람이 점점 돈.돈 하게 되나 싶기도 하고...흐흐. 아무튼 쇼핑은 잘생긴 남정네의 유혹만큼이나 강렬한 유혹입니다.^^

비로그인 2005-09-1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이 책을 빌리려 합니다. 간만에 만난 사람들이랑 쇼퍼홀릭 얘기를 하고 돌아왔는데 여기서 보다니요. 쇼퍼홀릭에 대해 말해준 언니는 소비여왕은 아니지만 책 후반부에는 눈물을 흘렸다지요. 빨랑 읽고나서 제 옆에 있는 쇼퍼 홀릭 병장에게도 보라고 넘겨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ㅋ

플라시보 2005-09-16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 님. 오. 전 아직 1권밖에 못 읽었는데 나중에는 눈물? 으음... 그런 감동도 있군요. 쇼퍼홀릭은 여자라면 누구나 어느정도의 공감은 불러 일으킬 수 있을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