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
루이 쉬첸회퍼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사실 우리에게 있어 '어머니' 라는 단어는 특별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만 들어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면서 눈물부터 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며 어머니란 단어는 사랑, 헌신, 희생등의 단어를 곧장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는 한 사람의 인간. 혹은 여자로 평가받기 이전에 자식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는 성스러운 존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는 없다. 왜냐면 이 어머니라는 자격은 일단 아이를 잉태하면 곧바로 가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별로 좋지 않은(남에게 혹은 그 자신 스스로에게) 사람들이 존재하듯. 여자들 중에서도 별로 좋지 않은 여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일단 '어머니' 가 되기만 하면 이 별로 좋지 않았던 여자들이 갑자기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존재로 100% 탈바꿈하지는 않는다. 뭐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뿌리깊게 박힌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대해 그르다라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다. 다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은 사람일 수 없듯. 어머니 또한 모두가 좋은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지 못했다. (하나 미리 말해두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특정한 '나'라는 인간에게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이지 우리 어머니가 나쁜 어머니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딸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었다. 자신이 시골 출신이며 학벌이 낮은것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어머니는 나에게 도회적이며 또 공부를 잘 할 것을 강요하셨다. 그거야 어느 어머니나 다 하는 것이겠지만 공부하기를 특히나 싫어했던 나라는 인간에게는 무척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왜냐면 나는 공부 이외의 모든 것은 단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그 어떤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꼭 해 보고 싶었던 바이올린을 배울수도 합창반에 들수도 없었다. 내게 허락된 것은 학교 공부에 도움이 되는 주산이나 피아노 뿐이었다.  거기다 어머니는 내가 입는 옷을 당신이 원하는대로 입히셨다. 초등학교 5학년때 까지 나는 언제나 셋트로 된 옷에 소품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걸로 하고 다녀야 했다. 바지를 좋아하던 나에게 있어 늘 같은 무늬의 원피스나 투피스, 그리고 그것과 똑같은 천으로 만든 머리띄는 정말이지 절대로 입고 나가고 싶지 않은, 허나 매일 입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거기다 우리 어머니는 무척 신경질적이셨다. 한번 이상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얼굴을 일그리고 심하게 짜증을 내셨다. (화가 아니라 짜증이었다.) 거기다 어머니는 딸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나 강해서 전화를 엿듣고 일기장을 몰래 보고 친구들이 오기만 하면 자는척을 하면서 대화를 듣거나 아니면 문에 귀를 대고 있으셨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나쁜것은 자신이 그랬음을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몰래 알게된 내용에 대한 야단을 치느라 그랬다.) 나는 어디에 가서든 어머니가 자랑으로 시간가는줄 모르는 딸이 되어야 했다.

지금도 가끔은 어머니가 다른사람에게 영 엉뚱하게 나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 (이를테면 내 경력이랄지 하는 일이랄지) 나를 창피하게 여기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또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어머니께 늘 부끄러운 존재가 될 수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금 참담하기도 하다. 어머니를 위해서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그 사람들 앞에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미소따위나 짓고 있다가 보면. 가끔씩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것을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냐면 어머니를 나쁘다고 또는 틀리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나라는 인간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회가 심어놓은 모성신화는 너무도 강력해서 감히 어머니가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나 큰 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책 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출발한다. 즉 어머니가 나쁘다고 혹은 틀렸다고 말 할수도 있다는 인정에서부터 책은 시작된다. 제목만 보면 어머니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책은 어머니의 아래에서 자란 자식들에게 말한다. 당신의 어머니가 때로는 틀렸을수도, 나빴을수도 있다고 말이다. 언젠가 정신과 의사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아이를 미워하고 구박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는 자식들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자신이 너무나 쓸모없이 나쁜 인간이고 따라서 어머니가 자길 미워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틀렸다고는 도저히 생각할수가 없어서 일단 자기 자신이 나쁘거나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성 신화가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인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이다. 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어머니를 4개의 부류로 나눠놓았다. 그것은 각각 권력형, 희생형, 자기도취형, 애정결핍형이고 그 아래에 인터뷰로 얻은 실제 사례들을 나열해두었다. 읽다가 보면 상당부분 내 어머니에게서도 보여지는 모습이여서 많이 놀랐었다. 그래 우리 어머니가 이랬기 때문에 내가 그런거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뒷쪽으로 갈수록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대체 어머니는 어때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진정 완전무결한 신적인 존재여야만 하는가?

책에 나열된 사례들은 거의 그 사례에 맞는 어머니의 매우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어머니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극으로 가기 때문에 이건 어머니라기 보다는 자식을 일부러 괴롭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어머니 역시 당신의 어머니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나쁜 어머니는 끊임없이 나쁜 인간 혹은 나쁜 미래의 어머니를 양산하는 꼴이 된다. 이건 뭔가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다시피 가출 청소년. 문제아 중에서는 결손 가정인 예가 많다. 오직 주변 환경에 의해서만 결정이 된다면 결손 가정의 자녀들은 백이면 백 다 보통 아이들에 비해 문제가 많아야만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은 더 많은 사례들을 알고 있다. 즉 결손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라 하더라도 백이면 백 다 가출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핑계거리 내지는 변명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키웠다구요. 라고 말이다. 물론 어머니가 올바르지 못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또 아이에게 적절한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아이는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이걸 100% 오직 문제있는 어머니때문 만이라고 봐야하는가?  세상에 어떤 인간도 완전하고 완벽하지 않듯. 어머니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실 찾으려고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에서 내가 나열한 엄마의 좋지 않은점을 10개 정도는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좋지 않은점 10가지 때문에 내 인생이 이모양 이꼴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왜냐면 성인이 되고 부터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며 또 아무리 어머니가 모든것을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노력이나 선택의 전부를 통제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사는 것이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걸 어머니 탓으로 돌리자면 소매치기 어머니의 자식은 전부 소매치기가 되어야 하고 사기 전과가 있는 어머니의 자식은 모두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

물론 어머니가 아이를 잘 못 돌보게 되면 아이가 빗나갈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식의 인생을 전부 어머니의 책임인양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어머니가 될 자격을 가지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 책은 뿌리깊은 모성 신화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에서는 매우 신선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엄마 잘못만난 탓만 해대는 것에는 솔직히 좀 지겨웠다. 참고삼아 읽을 만은 했지만 온통 나쁜 사례들만 있어서 엄마가 되려면 정말로 완전무결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떤 아이의 어머니가 내게 그런말을 했다. 어머니만 자식을 키우는게 아니라고, 엄마도 자식을 키우면서 같이 크고 자라고 배운다고. 어머니란 아이에게 절대적인 권력자이자 모든것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위치에 있는 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 시기야 말로 인간에 대한 거의 모든 부분을 형성하게 한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 있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시기 따위는 없다. 중요도로 따질것 같으면 매 순간 순간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 나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라 하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그가 그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무결한 사람만이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나는 그 어머니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예비 어머니들이 피해야 할 것들에 대한 참고사항으로는 읽을만 하지만. 정작 책이 타겟으로 삼은 좋지 않은 엄마를 둔 자식이 읽기에는 별로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기 위안인 (내가 이모양 이꼴인건 모두 엄마때문이군 하는) 이 책이 가져다 주는건 아무것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엄마의 문제점을 찾고 엄마를 원망하며 지금의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전부 엄마탓으로 돌리는것 보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스스로 고쳐나가는게 훨씬 빠르고 또 발전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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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5-08-2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역할이 양육에 중요한건 부인할 수 없는데, 우리사회가 이미 과도하게 엄마의 역할을 강요하고 있고, 저출산 등의 현상이 발생하는 점 등을 생각하면 엄마의 역활에 관한 논의의 촛점이 바뀌어야 할 때가 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클리오 2005-08-2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엄마이건, 내가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건... 애증이 겹친 쉽지 않은 언급인 것 같아요.. 흐~

이누아 2005-08-23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한 건 분명한 일이겠지만 자식도 그에 못지 않은 역할이 있는 게 아닐까요? 어머니께 사랑과 헌신을 받는 것에만 익숙하고, 당연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목련존자나 지장보살 같은 분들의 어머니는 모두 지옥에 가신 분들이었는데, 그 자녀들이 가진 것과 마음, 기도와 헌신을 통해 그 어머니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좀 황당한 비유이지만 아이가 어린 약자이니 당연히 돌봐줘야 겠지만 님의 말씀처럼 어머니가 절대적인 일정 시기가 지나면...결국 모든 관계는 쌍방향이지 않나요?

플라시보 2005-08-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네. 저도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때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든 하나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이에게 있어 엄마의 역활이 너무나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것 같아요. 뭐든 자기 하기 나름인 구석이 있으니까요.

클리오님. 그렇죠? 여자들은 누구나 엄마를 가지는 동시에 또 자신이 엄마가 되기도 하니까요.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 정답이 없는 만큼 무지하게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구요.

inua10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주고 받는 관계이니까요. 엄마 쪽에서만 제공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아이도 엄마에게 충분하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음. 목련존자나 지장보살 같은 분은 잘 모르긴 하지만 님 말씀을 들으니 어머니가 별로인데도 자식은 아닌걸 보니 꼭 엄마 탓만은 아닌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