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 : 톰크루즈 아빠 만만세.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가 또 한번 뭉쳤다. 결과는 박스오피스 1위. 전작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이미 찰떡 궁합을 보여준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 거기다 귀신같이 연기를 잘 하는 아역스타 다코타 패닝까지 합세한 우주전쟁의 1위는 이미 예견된거나 다름없었다. 시기도 어찌나 잘 잡았는지 현재 개봉작들 중에서 우주전쟁과 맞붙을 만한 작품도 없다. (다른 영화들이 이 영화를 피해서 개봉일을 잡았겠지만)적어도 친절한 금자씨가 개봉하는 7월 말까지 우주전쟁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계속 될듯 하다. (내가 영화를 본 평일 9시에도 관객이 미어 터졌으니 말이다.)

이혼하고 두 아이 (아들 로비와 딸 레이첼)을 아내와 번갈아 돌보는 레이.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심상치않은 기운이 감돈다. 바야흐로 우주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것.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한 도시에서 레이는 죽을힘을 다해 로비와 레이첼을 지키고, 어찌어찌 하다가 보니 외계인은 지구를 정복하기 전에 몰살한다. 레이는 무사히 살아남아서 로비, 레이첼 그리고 자신의 전 부인과 그의 남편. 아내의 친정 식구들과 감격스런 재회를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여태까지 참으로 여러번 우주의 생명체에 대해 이야기 해 왔다. 하지만 그는 우주 생명체에 대해 적의를 들어냈다기 보다는 상당히 호감어린 시선으로 다루었었다. 미지와의 조우도 그렇고 특히나 이티의 경우는 외계 생명체를 매우 친근하게 그려놓아서 인간의 친구로도 손색이없는 존재로 만들었었다. 그러던 그가 어째서 방향을 선회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제작에 참여한 테이큰이라는 미국 드라마는 외계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아서 방향을 급선회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아무튼 이번의 외계 생명체들은 전혀 친근하지 않다. 그들은 이티보다 훨씬 더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으며, 늘 비행접시로 표현될만한 무언가를 타고 불빛도 화려하게 날라다니기만 하던 것에서 탈피. 촉수같은 것을 뻗으며 땅 위에 다리를 딛고 걸어다니는 기계속에 외계인을 집어넣었다. 또한 그 기계는 매우 파괴적이고 내는 소리도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인간의 친구, 혹은 인간과 잘 지낼수도 있는 존재. 그것도 아니면 호기심 가득한 무언가였던 우주 생명체들은 이제 인간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그들은 이유도 없이 인간을 죽이며. 늘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외계인들이 해 왔던 지구인과의 커뮤니케이션조차 시도하지 않는다. 단지 도망가는 길 밖에는 남은게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도 그의 최대 장기인 스펙타클로 압도하며, 그러한 장면들은 분명 이 영화에 있어서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것 보다 휠씬 더 잘 표현한 것이 있다. 바로 인간들이 공포에 질렸을때 나오는 행동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예측 불가능한 공포 속에서는 공항에 빠진다. 딸 레이첼을 비롯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이 견딜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이성을 잃어버린다. (레이첼의 경우는 그나마 어린이여서 소리나 악악 질러대지만 다 큰 어른들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좀 더 다루었어도 좋았으련만 사람들은 이내 이성을 찾고 남을 돕기 시작한다. 특히 레이의 아들 로비는 전형적인 난세영웅이 되어 지구를 지키는데 동참한다.

아무튼지간에 이 영화는 어떤 위험이 닥쳐도 아빠만 믿으면, 또는 아빠말만 잘 들으면 된다라는 진리를 전달하는데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쓴다. 다만 레이는 아이들 둘을 데리고 온갖 죽을 고생을 다 하는 반면. 그의 아내와 나머지 가족들은 그저 집안에서 가만히 기다린듯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할때는 그의 고생이 빛을 잃기는 했지만 (위험한 곳만 골라  다닌거 아닌가? 하는) 아무튼 레이는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특히나 딸 레이첼을 위해서라면 못할것이 없다. 그러나 레이의 캐릭터는 매우 진부하다. 재난영화. 그 중에서도 가족들을 중심으로 다룬 영화들이 으례 그렇듯 주인공 아버지는 평소에는 약간 무능하고 게으르며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는 한심스런 작자로 나오다가 위기가 닥치면 갑자기 완전무결하고도 용감무쌍한 아버지로 돌변. 가족들을 지켜낸다. 그것도 모든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너무 훤하게 잘 알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레이 역시 평소에는 아이들에 대해 쥐뿔도 모르다가 위기상황이 닥치자 너무나 훌륭한 아빠의 역활을 해 낸다. 왜 어메리칸 파파들은 평소에는 잘 하지 못하다가 엄청난 위기만 닥치면 슈퍼 파파로 돌변하여 그 진가를 보여주는 것일까?

결말은 매우 어이없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뭐 또 그럴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허나 이 결말의 황당함은 팀 버튼의 화성침공에서 외계인들이 픽픽 쓰러져가는 것과 비견될만하다.) 그나마 똘똘 뭉친 지구특공대가 지구를 지켜냈어요 보다는 좀 더 봐줄만 하지만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화면을 응시하며 더러는 깜짝깜짝 놀라기까지 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만큼 태평한 결말이다.

한가지 딴지를 걸자면. 주인공은 어찌 되었건간에 살아남는다는 공식을 너무 여러번 써먹은 나머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레이를 비롯한 그의 식솔들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을것이란걸 관객들이 충분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쟤는 죽었겠지?' 싶었던 레이의 아들 로비마저도 멀쩡하게 살아있는걸 보면 살짝 허탈감이 들기도. 그러나 어쩌겠는가. 주인공이 죽어 나자빠지는 영화는 내 평생 이온플럭스라는 애니메이션에서만 유일하게 목격한것을. 하긴 가만 생각해보면 그 비싼 출연료를 지불한 주인공들을 죽인다는 것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쉼없이 만들어내는 것 보다 더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사족 한마디. 처음 영화를 볼때부터 나레이션이 모건 프리먼일꺼라 확신을 했었는데 찾아보니 역시 모건 프리먼이었다. 어쩐지 보면서 쇼생크 탈출이 떠오르더라니... (쇼생크의 또다른 주인공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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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19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우주전쟁을 보았지요. 저렁 비슷한 생각을 하셨네요 ^-^ 참 표현력이..
재미있으시고, 기발하신 것 같아요. 좋습니다요~~

플라시보 2005-07-19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 흐..님도 우주전쟁을 보고 비스무리한 생각을 하셨군요. 톰 크루즈같은 아빠. 정말 멋지구리하지 않습니까? 그 외모에 그 보살핌에 그 침착함에... 흐흐. 물론 아빠보다는 애인으로 삼고 싶지만 아쉬운데로 저런 아빠라도 있으면...아하하하(영화 초반부에 하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도 너무 미남이라서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비로그인 2005-07-1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술적으로 결코 뛰어난 배우는 아니지만, 톰 크루즈는 작품을 선택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그와 함께 첫영화를 시작했던 하이틴 스타 중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찰리 쉰인데, 비견할 바가 못되지요. 무엇보다도 우주전쟁은, 스필버그가 힘을 빼고 담담하게 말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 흔한 명승지 고적 파괴 장면도, 지구영웅이 등장하는 장면도, 갈등의 기승전결도 없이 그저 우주침공 하나에 집중하였다는 것이 좋았어요.

마늘빵 2005-07-19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억지스러운 가족애를 내세우는거 같아서 별로 였어요. 전쟁측면에서도 원작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이 없이 반격도 안해보고 알아서 죽어버리는 외계인도 그렇구...

2005-07-19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9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7-19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07-1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흐... 저 역시 이 영화를 매우 재미나게 봤습니다. 제가 스필버그 팬이거든요. 다만 감상문이다 보니 좀 아쉬운점을 적었을 뿐이었습니다.^^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상황을 만들어내는 스필버그의 연출력은 대단했습니다. 또한 톰 크루즈의 연기도 무척 사실적이었구요. (분석하면 아빠 만만세였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은 관객들로 하여금 백프로 동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더군요) 저는 스필버그가 기술적인 힘과 동시에 스토리 텔링의 능력이 있기에 여태 장수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톰 크루즈란 배우도 분명 얼굴 하나믿고 살아남은 배우는 아님이 분명하구요.^^

아프락사스님. 살짝 그렇죠? 근데 가만보면 재난영화의 공식이 다 비슷합니다. 평소에는 겁나게 삐걱대던 가족 (내지는 소원한 가족)이 재난이 닥치자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가족이란게 평소에는 자기들끼리 뜯어먹을듯 하다가도 공동의 적이나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무섭게 뭉친다는 특성이 있긴 하니까 뭐 아주 용서 안될정도는 아니었어요^^ (결말은 저도 진짜 허탈했답니다. 흐흐. 물론 스필버그가 충분히 암시를 하긴 했지만요^^)

속삭이신분. 하하. 충분히 웃었습니다. 우주전쟁을 스타워즈 씨리즈 최종판인줄 아셨다니요^^ 하긴 제가 스필버그 감독이란 말을 안하긴 했지요. 단지 우주전쟁이라고만 했는데 그러고보니 마치 스타워즈의 한편 같이 느껴지는군요. 히히^^ (그나저나 극장간지 너무 오래 되셨군요. 담에는 함께 극장이라도? 헤헤)

戶庭無塵 님. 고쳤습니다. 늘 님의 이러한 지적덕분에 쪽팔림을 면하는거 아시죠? 흐흐. 고마워요^^

속삭이신분. 결론을 말씀 드리자면 전 보라는 쪽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감상문을 보면 좀 아리까리 하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필버그의 영화라 재미나며 톰 크루즈는 연기를 겁나게 잘하고 다코타 패닝도 아역 스타에서 롱런할 될성부른 모습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영화 자체가 절대 지루하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