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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 -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여태까지 나는 꽤나 팍팍한 삶을 살았었다. TV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 처럼 멋진 커리어우먼처럼 자신의 발전을 위해 혹은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바쁘게 일을 한것이 아니라 단지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했었다. 나는 하루 10시간씩, 주당 60시간을 일했었다. 이렇다 보니 나는 직장인이 된 이후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는날은 오직 다음주에도 일을 할 수 있게 하기위한 준비기간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내가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은 2시간 남짓 소요되는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책을 읽는게 전부였다. 물론 그 두가지를 상당히 좋아하긴 하지만. 그 두가지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은행구좌에 잔고액수가 늘어나는 재미로 내 하루 하루를 팔아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느낌을 가지지 않았다. 모두들 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다니고,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시간중 많은 부분을 직장에다 쏟아 붓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틈틈이 영어 회화랄지 혹은 헬스나 수영으로 자기관리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나는 너무 게으른거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얼마전 나는 직장을 관두게 되었다. 이제 당장 내일 아침부터 10시까지 출근해서 8시까지 회사에서 근무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나니 나는 도대체 그 10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다잡지 않으면 그냥 물 흐르듯이 시간이 흘러가 버릴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상당히 걱정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뭐든지 열심히라는 구호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슬로 라이프. 초록의 산과 들이 있는 사진아래 적혀있는 문구는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이었다. 어쩌면 나는 직장생활을 계속 했더라면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서만 슬로우 라이프를 외치면 뭣 하겠는가 내가 그렇게 살 가망이 전혀 없는데. 하지만 이제 남아도는게 시간일테니 어쩌면 나도 마음을 바꾸고 좀 느긋하게 살 수 있을꺼란 생각이 들었다.
슬로우 라이프는 슬로우 푸드 운동등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시간에 쫒겨서 지금 왜 이러고 사는지, 혹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바쁘게 열심히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책은 말한다. 인생은 결승점까지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하는 경기가 아니라고. 한 시간. 하루 그리고 한달이 모여 일생이 되는 만큼 그 작은 단위의 시간까지도 모두 똑같은 삶이라고. 흔히 우리는 잘 살기 위해 오늘은 내일이나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담보의 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르게 말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두 자신의 인생에 속한 똑같은 삶이라고. 삶을 조금 느슨하게 둔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물론 자신이 앞만보고 정신없이 달리는 삶에 만족한다면 또 그렇게 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다. 슬로우 라이프는 그저 나무늘보처럼 세월아 네월아 하고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것 그리고 그것을 위한 삶을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다.
패스트 푸드는 음식을 먹는데 대한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시키기 위해 생겨났다. 먹는 문제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이 모두 우리의 삶을 일이 아닌 다른 시간에 투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한다. 식기 세척기와 청소기. 그리고 자가용은 조금 더 빨리 허접한 일들을 해치우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시간을 늘이기 위해 탄생했다. 하지만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며 거리를 걷는것이 그렇게 마냥 줄이기만 해야 할 정말 하잘것 없는 일들일까? 인간이 살아있는 한 계속해야 하는 일을 우리는 왜 그렇게 빨리 해치우지 못해서 늘 안달을 하는 것일까? 사실 나도 답은 모르겠다. 다만 가사일은 정말 쓸모없는 소모적인 일이고 걸어다니는 것은 그저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이 이 책 하나로 완전하게 바뀐것은 아니다. 다만 책에 적힌 문구처럼 또 다른 삶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는 정도이다.
요즘 나는 애쓰지 않아도 슬로우 라이프를 살고 있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잠도 내가 자고싶을때 원없이 잔다. 그동안. 나는 놀더라도 절대로 느슨해지지 말아야 해.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밥도 먹고 회사를 다닐때와 똑같이 살아야 하고 그래야 도퇴되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떤 식으로 살던 정답은 없다. 다만 자신에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길을 걸으면 그게 정답이 아닐까? 나는 눈코뜰새 없이 바쁜 사람들에게 그건 사는게 아니라며 이 책을 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어떻게 보면 슬로 라이프도 하나의 유행같은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말들이 없었는데 현대인들이 너무나 시간에 쫒기며 촉박한 삶을 사니까 생긴 것이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는것의 정답에 관한 많은 책이 쏟아지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것 같다. 교육에 의한 혹은 습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안에서 나온 말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살건간에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상은 저만치 앞서는데 자신만 뒤쳐져있다고 초조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쯤 참고삼아 읽어봐도 괜찮을 것이다.
세상을 살고, 보고, 느끼는 것. 그것에는 누구나 다 따를만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그 길들을 조금씩 체험해 보고 자기가 선택을 하면 그게 가장 좋은 삶이 아닐까 싶다. 그게 책에서 말하는 슬로우 라이프건 패스트 라이프건간에 말이다.